서재 책꽂이에는 낡은 전집이 꽂혀 있다.
30년 가까이 된 책이라 표지는 너덜너덜하고 책을 펼치면 오래된 책 냄새를 풍기며 누렇게 바랜 종이가 나타난다.
이사 때마다 아내와 아이들은 버리자고 성화지만, 내 고집으로 인해 이 오래된 전집은 언제나 우리 집 서재의 가장 눈에 잘 띄는 명당 자리를 놓치는 법이 없다.
이 책은 아버지가 대학 입학 후 내 생일 즈음해서 선물해준 삼국지 전집이다. 지금도 한 권을 꺼내 손에 들면, 밤 늦게 귀가하신 아버지가 ‘사내라면 인생을 사는 데 꼭 읽어봐야 할 책’이라는 메시지와 함께 내 책상에 올려놓고 간 것을 보고 느꼈던 뭉클함이 그대로 느껴진다.
무뚝뚝하기만 한 아버지였지만 아들이 대학 진학 후 장래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하는 것에 안쓰러운 마음을 그렇게 표현했던 것 같다. 그래서 책을 그다지 즐기지 않던 나였지만 삼국지를 읽기 시작했다.
펼치면 지루하기만 한 다른 책과 달리 삼국지는 밤을 새며 읽어 내려갈 수 있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전쟁 얘기가 흥미진진해 읽었지만 다시 읽을 때마다 새로운 내용이 보이기 시작했다. 덕분에 처음 읽은 이래로 여덟 번 넘게 읽게 됐다.
어떻게 살아야 하고 무엇을 해야 할지 내 장래를 어렴풋이나마 고민하던 때에 나는 특히 그 방대한 스토리와 인물들에 강하게 사로잡혔고 유비나 조조처럼 개성 있고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가 되리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읽을 때마다 인상 깊은 부분에 꼼꼼히 밑줄을 긋고 느낌에 대한 짤막한 메모도 적어 넣었다.
지금도 나는 시간이 될 때마다 다시금 한 번씩 펼쳐 보면서 여러 가지 삶의 지혜와 교훈을 얻고 있다. 회사가 위기상황에 처했을 때 삼국지의 일화들을 떠올리며 현명하게 해결하는 데에 간접적으로 크고 작은 도움을 얻기도 했다.
요즘은 내가 회사 직원뿐만 아니라 주위 젊은이들에게 삼국지를 꼭 읽어보라고 권유한다. 평생을 함께 갈 벗을 하나 소개해주는 마음으로 말이다.
jplee@cit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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