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은 자유롭다. 드넓은 대지와 바다가 그 자체로는 공허일 뿐 인간의 발길이 닿음으로써 비로소 인간에게 자유로움을 주는 존재이듯 인터넷의 자유로움은 디지털 언어로 표준화된, 인간이 만들어 낸 정보의 막힘 없는 소통에서 비롯된다.
인터넷의 대지와 바다를 종횡무진하는 정보에는 유익하고 기쁨과 감동을 주는 것만 있는 게 아니다. 음란하거나 사악한 것, 익명의 그늘에 숨어 난폭한 언어로 상대방을 공격하는 나쁜 정보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하지만 인터넷은 좋든 나쁘든 정보의 내용이 무차별적이다.
사람들이 인터넷에서 좋은 정보만을 찾는 것은 물론 아니다. 잘할 줄을 몰라서 그렇지 누구든 공짜로 최신 영화를 내려받고 싶어한다. 늦은 밤 ‘야동’ 사이트를 검색하거나 온라인 도박을 즐기는 사람도 놀랄 만큼 많다. 하지만 인터넷 그 자체는 어떤 사용자에 대해서도 무차별적이다.
극단적 자유주의자 혹은 사이버 공간의 무정부주의자가 아니라면 어느 누구도 이 같은 ‘무차별성’이 완벽히 보장돼야 한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오프라인 현실에서와 마찬가지로 사이버 세상에서도 온갖 허접한 일들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인터넷에서만큼은 그런 일이 용인돼서는 안 된다고 쉽게 생각한다. 오프라인의 현실과는 달리 인터넷이 만들어 내는 사이버 세상은 손쉽게 통제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 어설픈 믿음에서 갖가지 금기와 규제가 쏟아져 나온다.
그러나 문제는 누가 무엇을 어디까지 어떻게 통제하는지 그리고 왜 통제해야 하는지에 대해 우리 사회가 아직 철학적, 규범적, 기술적 합의와 대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거버넌스의 문제다.
인터넷에서는 오프라인의 언어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 매일같이 벌어진다. 어느 포털사가 운영하는 인터넷 카페에서는 운영자에 의해 회원 자격을 박탈당한 회원들이 운영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일이 벌어졌다. 수많은 회원을 거느린 대형 카페 운영자가 회원들 몰래 카페를 다른 사람에게 팔아치우는 일도 벌어졌다. 카페에 게시된 수많은 게시물의 소유권과 처분권이 누구에게 있으며 카페 운영자와 회원 간의 권리 의무 관계는 어떻게 되는지 ‘카페의 정치경제학’은 아직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법원은 포털에서 편집 혹은 검색에 의해 유통되는 언론사의 기사 중에서 오보나 명예훼손 소지가 큰 기사를 걸러내야 할 주의 의무가 포털에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포털이 그런 ‘주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는 언론사의 기사를 검열해야 하는 난처한 상황에 빠지고 만다는 딜레마를 풀어낼 지혜를 우리 사회는 아직 갖고 있지 않다.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유명 가수의 노래를 삽입(임베드)해 놓고 자신의 하루 생활을 멋들어지게 정리한 블로그 일기장은 저작권 침해물인가 아닌가. 대가의 누드 명화들 틈에 몇 장의 음화를 섞어놓은 게시물은 성인물인가 아닌가.
유체물의 배타적 점유권을 다른 사람에게 이전함으로써 가치를 생산하는 아날로그 경제와는 달리 디지털 정보를 복제하고 공유함으로써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온라인 경제를 뒷받침하는 규범과 질서는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다. 인터넷에서 어느 정도의 자유(표현의 자유, 거래의 자유, 환락의 자유, 사생활의 자유, 정보의 자유)가 보장돼야 하는지 우리 사회는 아직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인터넷 세상에는 언제 자신이 범법자가 될지 알 수 없게 하는 연옥과도 같은 곳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새 정부 출범과 함께 조직 개편을 거쳐 인터넷을 다루는 정부부처가 여럿 생겨났다. 이들은 앞으로 많은 정책을 만들어 낼 것이다. 규제도 하고 진흥도 할 것이다. 규제가 항상 선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모든 규제가 나쁜 것만도 아니다. 몸에 맞는 옷인지가 중요할 뿐이다. 새 정부가 인터넷 세상에 어울리는, 입어 보니 편하고 멋들어진 느낌을 갖게 만드는 옷을 만들어주기를 바랄 뿐이다.
한종호 NHN 정책담당 이사 plusle@nhn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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