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프린스턴대학 폴 크루그먼 교수는 이미 1994년에 죽기 살기로 밤낮없이 일하는 반복적 노동에 의한 아시아식 신화창조는 더 이상 없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요즘 젊은이는 죽기 살기로 일하지 않는다. 그렇게 일을 하지도 않고 강요할 수도 없다. 주 5일 근무에 15일의 법정휴가가 보장돼야 한다. 젊은 남자 직원들은 가끔 예비군 훈련도 간다. 그러다 보니 한 달 평균 19일을 일한다.
경영자는 한 달치 봉급과 비용들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고부가 기술과 고부가 서비스 사업을 창출해야 한다. 하늘에서 그 비용이 떨어지지 않는다. 뛰어야 산다. 부지런히 뛰며 정보를 습득해야 하며 독특한 기술도 개발해야 한다. 남다른 방법으로 고객도 감동시켜야 한다. 그래야 고객에게서 선택의 기회가 주어진다.
매일매일 반복되는 경쟁의 연속이다. 기업의 책임자는 그래서 밤낮이 없다. 차라리 전쟁이다. 그만큼 치열하다. 기술을 쫓다 보면 마케팅이 부족하고 마케팅을 채우다 보면 전략이 부족하다. 이런저런 모든 필요한 것을 다 갖출 수 없으니 벤처 경영인은 1인 다역이다. 시간과 싸우고 체력과 싸운다. 한마디로 고달프다. 그래야 살아남는다.
모두가 치열하게 움직인다. 리더는 힘들어도 내색하지 않는다. 휴일을 여유 있게 기다리는 사람들은 행운이다. 몰두하다 보니 휴일 계획을 별다르게 세워놓았을 리 없다.
벌써 3월 중순이다. 올해 들어 70일이 흘렀다. 올해 일할 수 있는 남은 날은 200일이다. 200일 안에 올해의 모든 성적표가 만들어진다. 정부기관, 산하기관들이 ‘스톱’ 상태인데도 말이다.
정보통신 시장이 말이 아니다. 아무런 계획도 세울 수 없고 예측을 하지도 못한다. 정보통신부 기능을 합치는 방송통신위원회가 제대로 기능을 못하고 있으니 개점 휴업 상태다. 통신사업자나 유료방송 사업자들의 요금체계나 약관에 대해서 위원회에 신고를 하려 해도 받아줄 조직도, 사람도 없다. 당연히 승인을 해 줄 곳도 없다.
우리나라 통신시장의 규모는 약 44조원, 방송시장은 9조원 정도라 한다. 방송 통신 시장을 합치면 약 53조원, 1주일에 약 1조원 시장이다. 벌써 10주 이상을 누가 오느냐, 가느냐, 어떻게 될 것 같으냐 등등 추측과 실속 없는 예측으로 흘려보냈다. IT 투자의 선봉에 섰던 삼성전자 역시 특검의 여파로 투자가 지연되고 있다.
당연히 시장에 활기가 없다. 경제가 좀 나아지겠다는 기대는 인사청문회의 지연이라는 암초에 부딪히면서 벌써부터 올해는 힘들겠다는 불길한 전망으로 바뀌고 있다.
올해 7000억원 규모로 예상되는 정보보호 산업도 표류하긴 마찬가지다. 외형적 규모는 작지만 산업기밀 유출 방지와 국민 개인사생활보호 차원에서 중점 정책 분야로 다뤄져온 정보보호 분야는 개인정보와 전자정부 분야는 행정안전부로, 정보보호산업은 지식경제부, 침해사고 및 대응 분야는 방송통신위원회의 세 갈래로 나눠졌지만 아직까지 3부처가 세부적인 정책 방향이나 부처 간 역할을 놓고 조율에 착수했다는 얘기는 없다.
방송통신위원회는 관련 조직과 인력 배치는 물론이고 사무실 이전 작업 조차 계획만 있을 뿐 정리가 되지 않았다. 이렇다 보니 사람이 자리 잡고 부서 내 업무 협의를 거쳐 타 부처 간 업무와 역할에 관한 세부적인 의견을 조율하는 데 상당한 기간이 소요될 것으므로 올해는 희망이 없다는 말이 설득력이 있다.
산업계의 걱정이 태산 같다. 때마침 이명박 대통령이 공무원들에게 ‘머슴’처럼 달라지라고 했다. 무작정 더 열심히 일하라는 뜻이 아니라 군림하는 자세를 바꾸라는 말이다. 더 일찍 더 열심히 챙긴다고 해서 보고서를 위한 보고서 만들어내는 일을 위해 산업계를 괴롭히는 일은 없기를 기대해본다.
산하기관의 임원들이 청와대 비서관을 초청하는 데 더 신경쓰고 산업계 현장을 직접 둘러보는 일에 인색하지 않는 ‘진정한 머슴’이 되길 기대한다.
유력자가 초청하는 조찬 간담회라면 새벽같이 참석하면서도 업계 애로사항을 들어달라는 요청에는 이런저런 이유로 시간 변경과 급기야 없었던 걸로 해버리는 일은 제발 없기를 기대한다. 올해 일할 날이 200일밖에 남지 않았다.
문재철 STG시큐리티 대표 jmun@stgsecurit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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