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DMB 국제표준 유력’이란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지상파DMB와 ATSC 방식의 HDTV로 상징되는 국내 디지털방송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또 국내 지상파DMB와 위성DMB 이용자가 지난해 10월 말 900만명을 넘어섬으로써 우리나라는 휴대이동방송 분야 선도국으로 자리 매김하고 있다.
최근에는 ATSC의 새로운 방송 표준 기술개발에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참여해 두각을 보이고 있다. 디지털방송 기술 선도국에 들어선 지금, 신규로 투자 기술을 결정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의 행보가 바로 미래 방송의 방향이 되기 때문이다.
새로운 비상을 위해 일본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일본은 디스플레이와 고부가가치의 HDTV 방송카메라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자랑하고 있다.
NHK를 중심으로 1960년대부터 HDTV 기술개발을 시작해 80년대 아날로그 방식의 HDTV인 MUSE를 개발했다. 비록 이 기술이 상용화에 성공하지는 못했으나 미국과 유럽의 디지털 HDTV 개발의 도화선이 됐다. 1995년부터 NHK는 3차원 방송과 슈퍼 하이비전 기술개발에 착수했다. 초고선명TV(UDTV)로도 불리는 슈퍼 하이비전은 HDTV보다 16배 향상된 화질과 22.2채널 오디오를 제공, 영화관보다 좋은 화질과 음질을 경험할 수 있다. 이처럼 원천기술에 장기적으로 한 투자가 오늘의 일본 방송 산업계를 만든 것이다.
일본은 올 12월에 위성으로 3차원 디지털방송을 하루 두 차례 15분씩 실험방송한다. 또 슈퍼 하이비전 기술을 이용한 시제품을 개발해 각종 전시회에서 감탄을 자아내고 있다.
나도 슈퍼 하이비전의 영상과 오디오로 뉴욕 타임스퀘어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을 경험했다. 이 기술이 상용화되려면 적어도 15년은 더 기다려야 할 전망이다. 그러나 이미 국립 규슈박물관에서는 각종 명화를 슈퍼 하이비전으로 보여주며 국민에게 자부심을 심어주고 있다.
지난 9월 한국을 방문한 NHK 연구소장을 역임한 에나미 일본 국립 정보 커뮤니케이션 기술연구소(NICT) 박사는 MUSE 개발팀이 해체될 위기에 처해 제안된 기술 테마가 슈퍼 하이비전이라고 했다. 상용화 기술에 초점을 맞춘 우리의 연구개발 환경에서 이러한 연구 분위기는 부러울 뿐이다. 다행히 정보통신부는 새해 원천기술 개발에 중점을 둘 것이라고 한다.
우리는 후발주자로서 효율적인 투자를 고려해야만 한다. 지상파DMB는 그야말로 효율적 투자로 비교적 짧은 기간에 이룬 성과다. 지상파DMB의 성숙을 위해 2010년을 목표로 지상파DMB를 통한 3D 방송 기술개발이 ETRI에서 진행되고 있다. 아직 시작하지 못한 UDTV 분야에서는 일본이 해결하지 못한 실용화의 최대 관건인 3∼8 급의 영상을 효율적으로 압축하는 기술과 전송 기술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산업체에서는 UDTV용 디스플레이 개발을 동시에 진행해야만 한다. 그리고 국제표준 기술개발을 위해 일본과 공동연구를 통한 상생도 필요하다.
앨빈 토플러는 그의 저서 ‘부의 미래’에서 분야별 발전 속도의 차이에 따른 비동시화 효과로 부를 창출하는 잠재력이 제한된다고 했다. 지상파DMB가 기술적으로는 성공했으나 방송사 수익모델의 취약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모처럼 원천기술 개발의 시위를 당긴 현시점에서 국책연구소의 차세대 디지털방송 기반 기술개발, 산업체의 디스플레이 개발, 방송사의 서비스 계획을 동시에 진행해 미래 디지털방송 시대를 주도해야 할 때다.
갓 담근 김치보다 묵은 김치의 맛이 훨씬 깊이가 있다. 기술도 마찬가지다. 기초부터 오랜 기간 숙성돼야 비로소 그 진가를 발휘하는 성숙된 창조물이 나오는 것이다. 성과가 나오기까지 진득하게 격려하고 기다릴 필요가 있다.
한동석 정보통신연구진흥원 디지털TV방송사업단장 dshan@iita.re.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