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벽두, 세계 최대 컴퓨터업체 IBM의 하드웨어 담당 임원들에게 전달한 ‘내부 메모’가 조직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기존 제품별 영업 조직을 전면 해체하고 고객 위주로 조직의 진용을 재편한다는 내용이었다. 매출 비중 하락, 하드웨어의 일용품화로 위협받던 하드웨어 조직에 15년 만에 구조개편의 ‘칼’을 댄 것이다. IBM은 정확한 수치는 밝히지 않았지만 인력의 구조조정도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서버는 없다, 고객만 있다”=이번 조직 개편은 이제 더 이상 제품별 영업 조직 구분은 무의미하다는 선언에서 나왔다. IBM은 그동안 유지해왔던 메인프레임(z시리즈), 유닉스 서버(p시리즈), 통합 서버(i시리즈), x86 서버(x시리즈) 등 제품별 영업부를 이번에 전격 해체했다. 대신 △대기업과 대규모 프로젝트를 다루는 엔터프라이즈 시스템부 △중소형 기업을 맡는 비즈니스시스템부 △통신·유통·헬스케어 등 특수 산업을 취급하는 인더스트리시스템부 △IBM 프로세서 판매를 주관하는 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부 등 철저히 고객 성격별로 영업부를 재편했다. 또 300명의 영업 매니저로 구성된 통합 판매팀도 만들어져 신설 조직을 지원하도록 했다. STG 조직 변경 수장 격인 톰 자로시 부사장은 “하드웨어 조직의 축이 제품에서 협력사와 고객으로 이동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며 “그동안 내부 업무를 맡아왔던 구성원 대부분은 고객을 직접 상대하며 ‘딜’을 수주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고 설명했다.
◇15년 만의 변신 ‘왜?’=갈수록 평준화하는 하드웨어 제품의 ‘탈출구’로 IBM은 고객을 선택했다. 기존 제품별 영업부서의 폐해도 많았다. IBM은 제품 종류가 많아 부서 간 불필요한 내부 경쟁이 잦았다. 같은 고객을 두고 서로 제품을 공급하겠다고 충돌하는 상황이 많았던 것. 반면에 채널이나 고객 처지에서는 복잡한 조직 때문에 프로젝트 담당자를 찾는 데도 오래 걸렸다. 또 다른 이유는 갈수록 악화되는 하드웨어 부문의 매출구조를 혁신하는 데 있다. 컨설팅·IT서비스 등이 중심이 된 글로벌서비스(GS) 부문과 소프트웨어 부문이 매년 신장세를 거듭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하드웨어 부문은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2006년 하드웨어 부문 매출은 224억9900만달러로 전년 대비 7.6%가 하락했다. 지난 3분기에도 이 같은 기조는 이어져 전년 동기 대비 11.0%나 하락하는 등의 부진을 겪었다. 이 때문에 IBM 내부에선 하드웨어 부문 조직개편은 ‘선택’이 아닌 ‘필수’의 문제로 인식돼 왔다.
◇경쟁사에 미칠 영향은=IBM에서 하드웨어 조직이 갖는 상징성이 큰만큼 이번 조직 개편은 서버와 스토리지 시장을 둘러싼 HP·선마이크로시스템스와의 경쟁관계에도 파장을 불러일으킬 전망이다. 특히 최종 고객(end user) 중에서도 중소기업 시장에서의 경쟁이 한층 가열될 것으로 보이며 협력사 확보에서도 업체 간 부딪히는 일이 잦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밥 듀르데빅 애넥스 애널리스트는 “샘 팔미사노 IBM 회장이 주창했으나 실제로는 구호에 그쳤던 ‘자세 낮추기’가 이번엔 실현될지 지켜볼 일”이라고 말했다.
최정훈·류현정기자@전자신문, jh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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