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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봇혁명의 미래를 알고 싶다면 과거의 유사한 사례를 곰곰이 생각해봐야 한다. 사람이란 비슷한 착각과 실수를 곧잘 반복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 국민이 과거 정보통신혁명을 거치며 체득했던 경험과 교훈은 차기정부의 지능형 로봇정책에도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지금이 1987년의 연말이라 가정해보자. 당신의 책상에는 성탄절 선물로 부모님께 받은 근사한 XT컴퓨터가 놓여 있다. 밤새워 MS DOS를 익힌 덕분에 파일을 불러내고 지우는 방법은 쉽게 터득했다. 컴퓨터로 문서를 저장하고 타자연습을 비롯, 몇 가지 게임도 했다. 그러다 컴퓨터 전원을 끈다. 20년 전 당신이 이해하던 컴퓨터 세상은 이처럼 단순했다. 정보화시대를 대비해 컴퓨터 구조와 프로그래밍 언어를 공부하면서도 PC가 앞으로 일상생활에서 무엇을 할지 이해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경제적 관점에서 볼 때 값비싼 컴퓨터를 고작 타자기나 오락기로만 쓴다는 사실은 자원의 낭비로 비판할 여지가 충분했다.

 “뚜뚜뚜 (01410) 삐∼∼∼삐” 돈값을 못 하던 개인용 컴퓨터는 이듬해 엄청난 도약의 시기를 맞는다. 88올림픽을 전후해 PC통신이 대중화에 들어간 것이다. 경쾌한 다이얼업 모뎀의 접속음과 함께 펼쳐지는 푸른색 통신세상은 새로운 문화혁명이었다. 이제 멍청한 전자계산기는 새로운 차원의 통신도구로서 변모하게 됐다. 사람들과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고 정보를 공유하는 행위는 기대 이상의 정서적 만족감과 재미를 줬다. 당신은 사이버공간을 통해서 익명의 사람과 밤새 ‘채팅’을 하고 ‘댓글’을 달면서 정보통신혁명의 미래를 어렴풋이 이해하기 시작한다. 이제 PC는 사람들의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도구로 확고히 자리를 잡게 됐다. 몇 년 뒤 한층 업그레이드된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전자상거래와 검색엔진·메신저·아바타·UCC 등의 폭발적 변화가 확산됐다.

 1987년 겨울에 바라봤던 컴퓨터 세상은 2007년 한국사회가 꿈꾸는 로봇세상과 많은 공통점이 있다. 둘 다 미래예측이 틀렸고 큰 폭의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관점을 바꿔야 시장이 열린다=새로운 기술이 처음 발명한 사람의 의도대로 사용되는 사례는 드물다. 에디슨은 축음기를 발명했지만 대중이 음악을 듣는 도구로 쓰는 현실을 좀처럼 이해하지 못했다. 개인용 컴퓨터가 IT혁명의 주역으로 자리를 굳힌 계기는 대중이 전자계산기가 아닌 통신도구로서 새로운 가치에 눈을 떴기 때문이다.

 지능형 로봇도 이제는 관점을 바꿔서 새로운 시장수요를 창출하는 전략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오랫동안 로봇이란 힘들고 위험한 일을 대신하는 자동기계로 이해했다. 전통적인 로봇컨셉트는 공장에 투입되는 산업용 로봇과 국방·의료·보안 등 전문서비스 로봇에서는 여전히 유효하다. 하지만 일반 소비자가 원하는 지능형 로봇의 킬러앱을 찾는다면 청소·설거지보다 다른 가치에 더 주목해야 한다. 청소와 같은 허드렛일의 자동화수요가 예상보다 돈이 안 된다는 사실은 청소로봇시장에서 이미 증명됐다. 또 일상생활의 극단적 자동화는 미래사회의 메인스트림은 아닐 것으로 추정된다. 편안한 일상에 질린 나머지 암벽을 오르고 익스트림 스포츠까지 즐기는 현대인을 보면 이해가 갈 것이다.

 지능형 로봇이 가정과 사무실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려면 과거 PC가 전자계산기에서 통신매체로 포지셔닝을 바꾼 사례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기동성과 작업능력을 갖춘 로봇이 일상에 꼭 필요한 통신도구의 개념으로 보급된다면 그 산업적·사회적 파급효과는 초창기 휴대폰에 못지않을 것이다. 이 같은 로봇혁명의 가능성이 정권교체기 부처 간 이기주의 때문에 사장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기계든 통신매체든 돈만 잘 벌면 훌륭한 로봇이 아닌가.

 ◇소비자의 숨겨진 욕망을 찾아라=초창기 PC통신이 인기를 끈 배경에서 온라인 정보의 유용성은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통신망에 접속해 잡담 수준의 채팅을 하면서도 새로운 집단에 소속됐다는 느낌에 매혹됐다. 그 만족감을 위해서 몇 만원의 전화요금도 그리 아깝지 않았다. 휴대폰이 처음 보급됐을 때 초등학생에서 노인까지 필요한 국민상품이 되리라고는 누구도 상상치 못했다. 여기서 한걸음 나아가 영상통화폰이 올해 선풍적 인기를 끈 것도 의외였다. 상식적으로 비싼 요금을 내면서 영상폰으로 상대방 얼굴을 꼭 봐야 할 이유는 드물다. 하지만 KTF는 ‘쇼를 하라, 쇼∼’라는 광고카피를 통해서 듣고 말하던 전화서비스를 보고 즐기는 UCC상품으로 바꿔놓았다. 휴대폰은 고립되기 싫어하는 사람의 심리를 꿰뚫었고 영상폰은 소비자에게 잠재된 표현과 과시욕구를 일깨웠다. 즉 새로운 히트상품은 소비자도 전혀 인식하지 못했던 숨겨진 욕망을 자극할 때 나온다.

 이 같은 시각을 로봇 분야에 접목시켜 보자. 지난 4년간 국내에서 개발된 지능형 로봇제품은 솔직히 초등학생의 평이한 상상력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소비자의 감성이나 욕망을 자극할 무엇이 부족했고 로봇화되지 않은 기존 제품보다 가격 대비 성능이 썩 뛰어나지도 못했다. 그렇다면 지능형 로봇업계가 공략해야 할 소비자의 숨겨진 욕망은 어디에 있을까. 사람이란 먹고 사는 문제가 대충 해결되면 다음 단계로 사회적 반응과 자아실현에 더 많은 가치를 두게 된다. 로봇이 허드렛일을 대신하는 데만 포커스를 맞추면 가치창출에 한계가 있다는 뜻이다. 세탁기·청소기는 편리한 가전제품이지만 수익률이 낮은데다 국가경제의 성장엔진이 될 가능성은 전무하다. 지금 지능형 로봇산업의 돌파구는 막대한 R&D자금의 극히 일부라도 로봇이 아닌 인간에게 초점을 맞춰야 열릴 수 있다.

 ◇문화적 가치를 부여하라=요즘 시장에서 성공하는 제품은 나름대로 훌륭한 이미지와 스토리를 가져야 한다. 평범한 쌀도 청정지역에서 맑은 햇볕 속에 자랐다고 광고를 해야 팔리는 세상이다. 매연을 내뿜던 디젤엔진차량도 친환경이라는 이미지를 덧씌워 운전자를 현혹한다. 초창기 PC가 순조롭게 보급된 배경은 꼭 필요치 않아도 지금 컴퓨터를 배워야 정보화시대에 살아 남는다는 빌 게이츠의 스토리에 소비자가 공감했기 때문이다.

 로봇도 새로운 소비재 상품으로 시장에서 자리를 굳히려면 기능성 외에 다른 대체제와 차별화된 스토리가 요구된다. 또 로봇에 대한 나쁜 인상은 지우고 새로운 긍정적인 이미지를 스스로 창출해야 한다. 로봇이 단순히 삶을 편하게 해준다는 이야기는 산업화시대를 넘어 탈정보화시대를 사는 한국인에게 큰 감동을 주지 못한다. 가사노동의 경감은 이미 각종 가전제품의 보급을 통해서 현실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로봇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와 스토리의 빈곤은 기업활동은 물론이고 정부의 로봇정책에도 직접적 부담이 될 수 있다. 로봇세상의 꿈이 고작 하루종일 방바닥에서 뒹구는 비만아동에게 로봇이 과자를 갖다주는 모습이 돼서는 곤란하다. 가정부 대신 가사로봇을 선택한 고객이 사회공동체의 실업문제를 외면하는 무개념 집단 또는 불필요한 자동화에 에너지를 낭비하는 반환경주의자로 몰린다면 누가 로봇을 사겠는가. 앞으로 차세대 로봇산업이 순조롭게 성장하려면 로봇이 환경을 보호하고 노약자와 환자를 돕고 고객의 자아실현에 도움이 되도록 큰 그림을 다시 그려야 한다. 차기정부가 로봇정책을 세우면서 이 같은 과제를 함께 고려한다면 가시적인 경제성과를 예상보다 일찍 확인하게 될 것이다.

 배일한기자@전자신문, bail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