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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한국인에게 로봇의 동의어는 차세대 성장동력이다. 지난 몇 년 간 우리는 돈벌이가 되는 로봇을 만들려고 앞만 보고 달려 왔다. 그러다 보니 로봇기술이 인류와 지구에 미칠 영향에는 아주 무관심해졌다. 가끔은 멈춰서 로봇혁명의 파고가 어디로 향하는지 먼 곳도 살펴봐야 한다.

 

 하와이대학은 세계 미래학 연구의 중심지다. 이 대학의 짐 데이터 교수(74)는 지난 60년대 미래학이란 학문영역을 처음으로 정립한 미래학계의 대부로 꼽힌다. 그는 저명한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와 미래협회 설립을 주도했고 수많은 제자가 정부관료·기업 컨설턴트·학자로 활약하고 있다. 항상 시대를 앞서는 아이디어로 가득 찬 짐 데이터 교수는 나노·바이오 산업의 도래를 일찌감치 예상했고 이미 80년대 초반에 로봇도 자신의 권리를 요구하는 시기가 올 것이라며 로봇 권리장전을 연구하기도 했다. 하와이대학의 짐 데이터 교수 겸 미래학 연구소장을 찾아가 로봇기술의 미래와 우리 정부가 추진하는 로봇윤리헌장에 대한 의견을 들어봤다. 

 “얼마 전 베트남 여성이 한국에 시집와서 학대를 당한다는 뉴스를 봤어요. 한국은 단일민족의 전통 때문에 인구가 줄고 일손이 모자라도 미국처럼 해외노동력의 대량유입은 불가능할 겁니다. 로봇은 한국사회가 인구감소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하고도 최종적인 해결책입니다.”

 짐 데이터 교수는 21세기 한국사회에서 로봇기술이 갖게 될 의미를 명쾌하게 설명했다. 그동안 경제학자는 인구증가를 경제성장과 시장창출에 중요한 동력으로 간주해왔다. 인구가 줄면 생산력이 떨어지고 경제성장도 둔화된다. 하지만 자원고갈과 공해문제를 고려할 때 앞으로는 인류의 생존을 위해 인구감소가 훨씬 바람직한 상황이다. 일손이 줄어도 삶의 질을 유지하려면 사회·경제시스템 전반의 로봇자동화가 꼭 필요하다고 짐 데이터 교수는 지적한다.

 “한국의 젊은 여성은 점점 출산과 육아를 기피하고 있는데 이 같은 추세는 앞으로도 막기 어려울 겁니다. 고등교육을 받은 선진국 여성에게 출산·육아는 어떤 고상한 의미를 부여해도 큰 희생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한국정부가 인구감소를 로봇기술로 극복하는 성장모델을 만든다면 다른 국가에도 큰 축복입니다. 21세기 인류의 생존에 가장 큰 위험요소는 공해·전쟁이 아니라 인구폭탄이란 사실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그는 로봇기술이 단기적 성장동력만이 아니라 21세기 인류의 중요한 생존도구라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한국정부가 야심 차게 진행하는 로봇윤리헌장 제정작업에도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정부기관이 주도하는 세계 최초의 로봇윤리헌장은 한국인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역사적 의미가 큽니다. 따라서 한국정부가 너무 서두르지 말고 충분한 사회적 토론과 전문가의 참여과정을 거쳤으면 합니다”고 말했다. 산자부 일정상 연말까지 로봇윤리헌장을 꼭 발표해야 한다고 귀띔했더니 그러지 않기를 바란다면서 웃음을 터뜨렸다. 

 ◇로봇윤리는 인간윤리의 연장선=짐 데이터 교수는 잠시 뒤 로봇과 인간의 윤리가 다르지 않다면서 자신의 로봇윤리관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흑인·여성·아이는 사람 축에 끼지도 못한 시절이 있었죠. 지금은 보편적 인권의 가치를 누구나 인정합니다. 동물 학대가 윤리적 문제로 간주된 것은 극히 최근입니다. 이제는 로봇도 윤리적 대상으로 나름대로 권리를 인정해줄 날이 올 것입니다.”

 짐 데이터 교수는 낙태·안락사·환경문제와 같은 윤리적 맥락에서 로봇윤리를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뱃속의 태아를 함부로 지울 것인가. 회복 가망이 없는 환자에게서 호흡기를 뗄 것인가. 울창한 밀림을 베어내고 도로를 놓아도 되나. 감성과 자아를 갖춘 로봇을 함부로 해체해도 될까. 로봇의 권리 확대를 두고 ‘기계가 무슨 권리냐’는 식으로 사람들의 반발이 심하지 않겠느냐고 질문했다. 그는 “어떤 집단이든지 권리를 갖는 대상을 확대하면 기득권층의 저항이 따른다”면서 “인간과 동물, 자연환경에도 윤리적 가치를 부여하는 문명의 추세에서 로봇만 예외일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짐 데이터 교수는 미래의 로봇이 반드시 인간과 동등한 권리를 요구하지는 않겠지만 법조·의료계에서 점점 중요한 의사결정을 맡으면서 자연스럽게 위상을 높여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또 아시모프의 로봇 3원칙이 너무 축약됐고 불충분하다면서 상세한 로봇윤리체계의 필요성을 지적했다.

 “미 국방부가 로봇 3원칙을 입력한 군사용 로봇을 전장에 투입했는데 어떤 상황이 일어났을까요. 명령을 따르자니 사람(적군)을 죽이기도 싫고 결국 자신을 지키려고 도망갔답니다. 농담이지만 윤리적 딜레마지요. 로봇 3원칙은 실제로 로봇제품에 적용되기에는 의외로 모자란 점이 많습니다.”

 ◇로봇은 인류의 자손=그는 인공지능과 바이오 공학의 결합에 따라 생명의 정의를 새롭게 바꿔야 할 때가 왔다고 주장했다. 자기복제가 가능한 로봇(디지털 생명체)이 등장하게 되면 살아 있는 생명의 범주에 집어 넣어야 한다는 것.

 짐 데이터 교수는 현재 인간은 다윈의 생물학적 진화를 끝내고 기계적 자기 복제를 시도하는 진화의 4단계로 들어갔다고 설명했다. “나는 지구의 진화를 4단계로 분류합니다. 1단계는 45억년 전 지구에서 지각과 바다 등이 형성됐고 2단계는 단세포 원시생명체가 나타난 시기로 봅니다. 3단계는 양성생식으로 동식물의 폭발적인 진화가 일어난 시기입니다. 진화의 4단계가 되면 생명체로서 인간의 진화는 끝이 납니다. 로봇과 인공생명체가 인류를 대신해서 역사를 이끄는 주역이 되는 것이지요.” 세상을 바꾸는 진정한 힘은 테크놀로지라고 믿는 짐 데이터 교수의 독특한 세계관이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로봇이 인간의 모든 지식을 전수받아도 생명체로 간주하기는 무리가 아니냐고 질문했다. 그는 먼 별에 우주탐사를 갈 때 인간이 직접 가지 않고 로봇탐사선을 보내는 사례를 들면서 자기복제가 가능한 로봇이 은하계 전체에 인류 문명을 퍼뜨리는 시나리오를 설명했다. 또 가능하다면 인공지능SW의 형태로 자아를 영원히 남기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 “좀 황당하게 들리나요. 대중이 쉽게 이해하면 그건 미래가 아니고 현재의 일입니다. 미래는 언제나 말도 안 되는 터무니없는 아이디어에서 나왔습니다.” 짐 데이터 교수는 대부분의 기술 진보는 사람이 더욱 인간적인 삶을 구현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서 환경주의자·인본주의자도 로봇기술이 가져올 긍정적 변화에 관심을 더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짐 데이터 교수는 고령에도 매일 티셔츠와 청바지 차림으로 30년이 넘은 고물 오토바이를 타고 출퇴근한다. 현세대의 무분별한 소비와 성장지상주의, 이에 따른 자원고갈과 환경파괴로 미래세대에 빚을 남겨서는 안 된다는 자신의 철학을 직접 실천하는 것이다. 짐 데이터 교수는 인터뷰를 끝내면서 한류를 비롯한 우리 사회의 변화상에도 높은 관심을 나타내며 미래학 분야에서 한국의 역할을 강조했다. “인류의 미래는 적잖은 위험에 노출돼 있습니다. 나는 역동적인 한국사회가 미국·일본을 모방하지 말고 독자적인 성장모델을 만들어 21세기 인류에 희망을 주기 바랍니다.” 미래학의 거두가 꿈꾸는 로봇세상은 이윤추구의 도구로만 로봇기술을 바라보는 속세의 시각과는 정말이지 큰 차이가 있었다.

호놀룰루(미국)=배일한기자@전자신문, bail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