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로벌 소프트웨어 업체의 중역으로 일해오면서 지난 15년 동안 미국·유럽·아시아 등 각 지역의 엔지니어·영업 인력들과 접할 기회가 많았다. 그들과 만나면서 분명하게 느낀 것은 한국인만큼 훌륭한 기술 및 영업 인력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특히 기술력은 전 세계 어느 지역의 엔지니어보다도 월등하며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책임감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하지만 세계적인 기술력이나 책임감에 비해서 국내의 소프트웨어 업체들의 개발 용역 비용이나 엔지니어의 급여 수준은 그에 미치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까움을 금할 수가 없다. 수많은 IT 인재를 육성, 배출하고 신기술 개발을 선도하는 대한민국에서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요인은 기업과 공공기관이 소프트웨어 프로젝트 예산을 지나치게 낮은 수준으로 책정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일례로 미국·일본이나 유럽 선진국의 경우 기업이 소프트웨어 프로젝트를 계획할 경우 한달 평균 일인당 용역 예산을 적어도 3만 달러에서 5만달러 정도로 책정하고 있는 것과 비교하여, IT 강국이라 불리는 국내 기업들의 현실은 1만달러 이하로 선진국에 비해 훨씬 낮은 수준이며 동남아 국가와 비슷한 수준을 보이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단순히 소프트웨어 업계의 연봉 문제로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데 그 심각성이 있다. 이로 인해 중소 소프트웨어 업체들은 직원들에게 적합한 대우와 기술 교육·영어 교육 등에 거의 투자할 수가 없게 되고 우수한 인재들의 유출을 부추기는 결과를 낳게 된다. 국내 기업보다 좋은 대우와 지속적인 기술 교육을 제안하는 다국적 소프트웨어 기업들이 접근한다면, 누군들 이를 마다하겠는가. 한편에서는 프리랜서로 전업하는 것이 더 낫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심심찮게 흘러나오고 있다. 이는 결국 소프트웨어 업체의 질을 악화시킬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소프트웨어 산업 자체가 도태될 수 있는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낮은 용역 비용과 함께 소프트웨어 업체들을 어렵게 하는 또 다른 요인으로 지적되는 것은 프로젝트 추가 비용에 관한 뿌리깊은 관행이다. 대기업들은 일반적으로 제안요청서 작성 이후에 발생하는 프로젝트 관련 요구 사항에 대해 추가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다. 심지어는 고객의 잘못이나 계획 변경으로 인해 기간이 지연돼도 그에 따른 추가 비용을 중소 개발 업체들이 고스란히 떠맡아 왔다. 또한 일부 기관들은 프로젝트의 적합성이나 성공 여부보다는 가격 위주로 프로젝트를 평가하고 있다. 이 때문에 프로젝트를 수주한 기업들도 프로젝트의 완성도보다는 비용 절감에 더 신경을 쓰고 가능한 한 짧은 시간 내에 적은 인력으로 사업을 마무리하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소프트웨어 없이 원활하게 시스템을 운영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따라서 소프트웨어 산업의 발전 없이는 국내 산업의 총체적인 발전을 기대하기 힘들다. 소프트웨어 산업의 진정한 발전을 위해 국가와 대기업이 모두 참여하는, 복합적이고 대대적인 변화와 투자가 필요하다. 모든 관련 기관이 나서서 프로젝트의 비용을 현실화하고 소프트웨어 산업의 중요성을 사회적으로 부각시켜 국내 소프트웨어 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줘야 한다. 그리고 소프트웨어 관련 기업들은 이러한 토대 위에서 새로운 기술 개발에 더욱 매진해서 세계적인 제품과 인력을 생산하는 데 주력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궁극적으로 사용 기업들에게 혜택을 제공할 것이며, 우리나라가 소프트웨어 강국으로 발전하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위재훈 제네시스텔레커뮤니케이션스코리아 지사장 jhwee@genesyslab.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