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통신기술이 발달하고 생활의 많은 부분에 이용되면서 우리 미래의 모습을 예측하기가 점점 더 어렵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문제는 기술 발달의 속도가 너무 빨라서 따라가기 어려운 것이 아니다. 기술의 발달이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 것인지를 가늠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는 데에 진정한 어려움이 있다.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새로운 혁신이 이뤄져 우리 삶에 큰 변화를 가져오곤 하는 때가 많다. 우리가 상상만 했던 많은 일이 현실로 이뤄지지만 우리의 상상이 워낙 다양하다 보니 그중에 어떤 가능성이 실현될지는 알기 힘들다. 어찌 보면 미래 예측에 필요한 정보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미래 정보가 넘쳐서 선택하기 어려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복잡계적 사고는 이처럼 미래 예측이 곤란한 데 충분한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복잡계는 일견 어수선하고 질서가 없어 보이는 가운데 단순한 원리가 내포돼 있다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이 단순한 원리는 우리가 이제껏 알아온 직선적 가정, 즉 과거와 현재의 연장선에서 미래가 펼쳐질 것이라는 생각을 부정한다.
복잡계의 단순한 원리는 비선형적 상호작용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동안 잠재돼 있다가 어느 순간 갑작스럽게 등장하곤 하는 것이 비선형적 변화다. 상호작용은 각각의 변수가 독자적으로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않고 한데 얽혀서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이러한 상호작용 중에서 복잡계에 특징적인 것이 결과가 다시 원인이 되는 되먹임이다. 어느 한 방향으로 지나치게 많이 변하면 반대 방향으로 방향을 바꿔주는 음의 되먹임은 세상을 안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지만 한 방향으로 쏠리면 그 방향으로 더욱 몰고 가는 양의 되먹임은 세상을 복잡하고 불안정하게 만든다.
요즘 기술 융합이나 서비스 융합 경향을 놓고 논의가 많아지고 있다. 각자 발전하던 기술이나 서비스가 합쳐져서 새로운 기술과 서비스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이다. 방송과 통신이 융합된 결과 DMB폰을 이용해서 어디에서나 방송을 보는, 이전에는 생각지 못했던 일들이 현실화되고 있다. 유비쿼터스 기술의 발달은 시간과 장소의 개념을 바꿔 언제 어디에서나 네트워크에 연결해서 정보의 통신만이 아닌, 물질적 제어도 가능하게 하고 있다.
앞으로는 IT와 BT가 결합해서 우리의 두뇌가 컴퓨터와 직접 소통하게 되고 우리의 눈과 모니터를 직접 연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결국 융합으로써 기술 발전의 궤적은 더 복잡해지겠지만 기술을 이용하는 사람의 처지에서는 보다 자연스럽고 단순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과연 이러한 변화는 어디까지 이어질 것이며 우리는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 복잡계적 관점에서는 흥미롭게도 기술이 우리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라는 주장에 반대되는 방향의 전망이 나오고 있다. 비선형적 상호작용과 양의 되먹임에 의해 복잡해진 IT 세상에서는 기술이 의도하는 대로 발전하지 못하고 기술을 이용하는 사람과의 상호작용에 의해서 어떤 기술이 실용화될 것인지 결정된다고 한다. 흔히 예로 많이 드는 컴퓨터 키보드의 쿼티 자판이나 VHS 비디오처럼 기술적으로 우월하다고 반드시 기술경쟁에서 이기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흔히 이런 현상을 ‘초기조건에 대한 민감성’이라고 표현하고 그 결과 한 방향으로의 변화가 정해지면 그 방향으로 계속 밀고 가는 ‘경로 의존’이 기술발전의 일반적 특성이라고 한다.
현재 제시되고 있는 미래의 여러 가능한 시나리오 역시 마찬가지다. 이 중 기술적으로 불가능하거나 경제적으로 비효율적이라서 실현되지 못할 사례도 있겠지만 실제로 어떤 가능성이 실현될 것인지는 인간의 선택 문제가 아닐까 싶다. 이때 소수 정책결정자의 선택도 중요하겠지만 결정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것은 다수의 일반 이용자다. 복잡계적 관점에서 보면 기술은 자체적인 논리에 따라 발전해가기보다는 이용자 및 사회제도를 포함하는 다양한 환경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진화해가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인간의 상상력과 선택이 기술 발전에서 중요하다는 것을 복잡계 과학은 우리에게 일깨워준다.
한준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joonhan@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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