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명분은 언제나 그럴싸하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자국의 이익’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파괴와 참살의 끝에 전리품이 허한 속을 채워준다. 피가 튀게 싸우는 이유다. 근대사 중에 아편전쟁은 ‘인간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나’를 생각하게 하는 전쟁이다. 경제수탈을 위해 아편무역을 합법화하려는 영국과 아편으로 위협받는 청대 왕조의 칼날이 선, 그나마 명분도 없는 전쟁이다. 그 와중에 희생을 당한 것은 당연히 청대 말의 중국민들이었다.
아편전쟁은 또 중독의 힘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보여준다. 총탄이 오가는 절박한 상황에서 상당수의 군인이 아편을 하고, 아편의 힘으로 전투를 치렀다고 한다. 마약의 힘으로 전쟁을 한다고 하면 지나가던 개도 웃을 일이다. 승률 0%의 전쟁이다. 오로지 경제수탈을 위해 상상할 수 없는 마약거래를 합법화하려는 영국인 또한 지지받지 못할 승자다. ‘태양이 지지 않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아편 장사를 했다는 사실은 역사의 부끄러운 일면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아편전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바뀌었다면 전쟁의 대상국이 1대1에서 불특정 다수로 바뀌었고 물리적인 아편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문화의 마약’으로 바뀌었다. 전쟁의 무기가 총성 대신 경제력으로 바뀌었다. 이른바 문화전쟁이다. 풍부해진 경제력으로 자국문화를 포장해 이를 전 세계에 거침없이 살포한다. 이미 상당수 국가는 생화학무기와 같은 타국 문화에 물들어 변색돼 있다.
‘당의정’과 같이 보이는 것은 달콤하고 오감을 자극한다. 하지만 당의가 벗겨지면 자국문화의 속살을 어김없이 드러낸다. 때로는 거부감을 일으킬 만한 것도 알게 모르게 익숙해진다. 천천히 하나의 문화로 세계를 지배하는 문화제국주의다. 이를 나쁘다고만 말할 수 없다. 어차피 전쟁은 명분보다 실리고 목적은 전리품이다.
문화를 전파하는 것은 오래 전부터의 세력확장이다. ‘수출’의 포장을 덧씌우면 주체자의 위치에서는 은혜를 베풀면서 돈을 챙기는 일거양득의 일이다. 또 중독성도 강해 한 번 쓰면 끝나는 것이 아닌 장기간 소비를 이끄는 마력도 있다. 문화수출 이전에 문화전쟁이라면 더 달콤한 당의를 입히는 세련된 노력, 강력한 중독성으로 포장한 신무기가 필요하다.
이경우기자@전자신문, kw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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