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킨더 싱 캐시디. 헤드헌터라면 누구나 탐내는 구글 아시아 태평양 부사장이다. 얼마 전 서울에서 열린 세계여성 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그는 “여성이 남성보다 적응력이 빠르다”면서 “빠르게 변하는 IT업계에서 여성이 훨씬 유리한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감성이 뛰어난 여성이 남성보다 성공할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이다. 확실히 여성 특유의 섬세함과 감수성, 상상력은 정보화시대와 잘 어울린다. 몇년 전 포천지가 미국 400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굴뚝산업 여성 CEO와 임원은 각각 1%와 6%에 불과했지만 IT산업은 6.8%와 45%나 됐다고 한다.
국내 IT산업에서도 여성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있다. 직장인의 꽃이라는 ‘별’을 다는 여성들이 최근 몇년 새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대기업과 공기업의 여성임원 비율은 3%대 인데 반해 IT기업은 이의 두 배인 5∼10% 정도이다. 3F(Female·Fiction·Feeling)가 21세기를 이끈다는 말이 허언은 아닌 것이다. 그러나 아직 우리 사회에서 여성이 성공하려면 남성보다 훨씬 많은 장애를 넘어야 한다. 게임의 룰이 비교적 공정하다는 IT업계도 예외는 아니다. 도처에 유리천장이 존재하고 있다. 밀고 당겨주는 네트워킹도 남성보다 약하다.
본지가 창간 25주년을 맞아 ‘파워엘리트 550인’을 분석한 결과에서도 네트워킹 허브 역할을 하는 ‘파워 100인’에 여성은 한 명도 없었다. IT업계에 내로라하는 여걸들이 많음에도 여성 후배들의 멘토 역할을 할 영향력 있는 여성은 아직 부족한 것이다. 물론 네트워킹이 세(勢)를 과시하거나 패거리 문화로 빠져서는 곤란하다. 좋은 사람을 서로 연결해주고, 이 좋은 사람들이 사회에 유익한 일을 할 때 비로소 네트워킹은 의미가 있을 것이다.
며칠 전 우연히 IT기업 여성임원 모임에 동석한 적이 있다. 매달 세 번째(Third) 화요일(Tuesday)에 만나기(Meeting)때문에 TTM이라고 이름 붙힌 이 모임에는 국내외 컴퓨팅기업과 벤처업계에서 일하는 10여 명의 임원이 회원으로 있다. 직장이야기, 아이들 이야기에 이어 신정아 이야기로 목소리를 높이던 이들은 자연스럽게 네트워킹과 유리천장 이야기를 화제로 올렸다. 한 참석자는 “선배격인 우리가 이렇게 서로 친하게 지내면 언젠가 후배 여성에게 도움이 되고 멘토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여성들도 적극적으로 네트워킹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대다수 40대 후반인 이들은 ‘별’을 달기까지 수많은 유리천장과 유리벽을 뚫고 와야 했다고 말했다. 직장 내 남성과의 경쟁은 차라리 이들에게 쉬웠다. 아이들이 아프거나 학교에 들어갈 때 등 아이들 문제가 가장 큰 고민거리다. 아이들 때문에 “그만 둘까” 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IT업계에 중간층 여성인력이 거의 없는 것은 대부분이 이 고비를 못 넘었기 때문이다. 월드포럼에 참석한 한 미국계 다국적기업 임원은 “막내가 암에 걸렸을 때 온 회사가 아이 간호를 도운 덕에 오늘날의 내가 있었다”고 한 적이 있는데, 이들은 선진국의 그런 문화가 그저 부러울 뿐이다. “정말 치열하게 살아왔다”는 말을 10여 차례도 넘게 언급한 다국적 컴퓨팅 기업에 다니는 한 참석자는 남자 상사에게 유리천장 이야기를 꺼냈더니 “그런 게 있느냐”며 모른 척 하더라고 씁쓸해 했다.
가정과 일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하지 않은 이들 ‘알파우먼’들은 후배 여성들에 대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결국 유리천장을 뚫는 건 일에 대한 열정과 능력”이라고. “스스로를 유리벽에 가두고 도전을 멈추는 나약한 여성이 돼서는 안 된다”고도 했다. 어느 시인은 그랬다. 아름다운 것을 만나면 황홀한 웃음이 나온다고. 남존여비가 여전한 우리 사회에서 갖은 유리천장과 유리벽을 뚫고 온 이들은 충분히 아름답다. 그날 기자의 얼굴에도 황홀한 웃음이 넘쳤다.
ejba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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