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레미 리프킨의 최근 베스트셀러는 ‘접근의 시대’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그는 접근의 개념을 소유의 대척점에 설정한다. 산업자본주의 시대에는 부의 목표이자 결과가 한정된 재화나 서비스의 배타적 소유였다. 탈산업정보사회에서는 ‘가진다’는 개념이 달라진다. 가지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리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나의 소유인지 아닌지는 다음 문제다. 별장을 가지고 있는 것보다 별장을 가진 친한 친구를 가지는 편이 낫다는 농담은 가지는 것과 누리는 것의 차이를 잘 지적해 준다. 콘도미니엄의 가격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도 같은 이치다. 같은 곳에 매번 다시 여행을 가야할 이유가 있는가. 만약 같은 비용으로 더 다양한 곳을 가 볼 기회가 있다면 말이다.
접근이 중요한 이유는 경험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집에 책이 100만권 있으면 뭐하겠는가. 읽는 행위로써 체화하지 않는다면 무용지물이다. 그러나 어쨌든 책을 많이 가지고 있다 보면 읽을 기회도 많아지게 마련이다. 인터넷의 등장은 접근의 용이성을 혁명적으로 증가시켰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제한된 지식과 정보 유통망을 극적으로 팽창시킴으로써 대중의 ‘접근권’을 높인 것이다. 그러다 보니 접근권을 사고파는 것이 새로운 사업이 됐다. 소유권과 함께 접근권이 중요한 상품이 된 이유는 상품 성격이 물질적 재화에서 경험적 재화로 바뀐 점에서 찾을 수 있는데, 정보와 커뮤니케이션이 바로 그것이다. 가구당 통신비가 급증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뛰어난 사회변동에 뛰어난 통찰력을 제시해 온 리프킨도 간과한 점이 있다. 소유에서 경험으로 무게중심 이동이 접근의 가치만 증대시키는 것은 아니다. 더 심대한 변화는 정보와 상징에 대한 접근기술 발전이 사람들의 ‘이동성(모빌러티)’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로 인해 기존의 사회적 경계(바운더리)가 빠르게 무너지고 재설정된다는 점이다. 모바일 전화나 인터넷 등이 중요한 이유는 언제 어디서나 통신을 유지할 수 있다는 편리함에도 있지만, 공간·시간적 장애를 넘어 통신의 기능을 확장함으로써 이동 가능성의 질과 폭을 획기적으로 신장시킨 점에 더 큰 의의가 있다.
다시 말해 다니면서도 전화할 수 있어서 편리하게 된 점보다도 모바일 통신 덕분에 더 많이 다닐 수 있게 되고 있는 점이 중요하다. 역사적으로 이동성 증가는 사회 구성 방식과 경계를 변화시키는 중요한 요인이었다. 부족에서 민족으로 그리고 전근대사회에서 근대사회로 이행은 이동성 증가와 긴밀히 연결돼 있다. 더 멀리 움직일 수 있게 됨에 따라 부족의 경계가 소멸했듯이 정보화와 세계화가 촉진하는 글로벌리즘은 민족의 경계를 약화시키고 있다.
50년대에 사회학자 대니얼 러너는 터키의 작은 시골 부락민을 인터뷰한 바 있다. 이곳을 떠나 다른 곳에 가서 살아야 한다면 어디로 가겠는가 물었을 때 많은 응답자가 답변을 못하거나 망설이는 모습을 보였다. 극단적으로는 차라리 죽어버리겠다는 응답자도 있었다.
사람에게 세계란 자신이 이동할 수 있는 범위와 관계가 깊다. 꼭 이동하지 않더라도 이동의 가능성과 능력을 인지하는 범위에서 사람들은 세계의 규모를 상상하고 받아들인다. ‘상상의 공동체’로 베네딕트 앤더슨이 민족의 형성을 규명하고자 했을 때, 그 핵심은 이동과 소통의 경계를 그 정도 단위에서 그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21세기 벽두에 아직 우리가 붙들고 있는 사회적 범주와 경계는 우리가 실제로 구사하는 소통 기술보다 낡은 것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부단한 이동성 증가는 결국 민족국가 시대에 설정됐던 모든 경계들(예컨대 가족·고향·계급 등)을 소멸시키고 새로운 경계로 우리를 안내할 것이다.
◆김신동 한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kimsd@hallym.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