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퇴르연구소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는 것이 미생물 연구와 백신이다. 파스퇴르연구소는 광견병과 페스트 백신을 세계 최초로 개발한 것을 비롯해 지난 120년간 기초 의과학과 생물학 등 분야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수많은 연구 실적을 쌓아온 프랑스 최고 기초연구 기관이다.
역사와 전통의 파스퇴르연구소에 요즈음 또 다른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순수 기초연구 중심에서 벗어나 정보통신(IT)·광학 등 분야에서 첨단 응용기술과 연계한 컨버전스(융합) 기술 연구를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 파스퇴르연구소는 최근 몇 년 동안 IT·광학·생물리학(Biophysics)·응용기술 등 첨단기술을 기반으로 연구 플랫폼 시스템을 구축해왔다. 이는 새로운 개념을 가진 연구접근 방식이나 연구 결과를 도출해 궁극적으로는 연구를 질적으로 성장시키고 효율성을 높이는 효과를 가져 왔다.
IT와 광학·생물리학·응용수학 등 최신 성과들은 연구자들이 기존 연구에서의 물리적·공간적 한계를 극복하고 병원균 인체감염 경로 및 원리를 규명할 수 있게 해준다. 또 질병을 효율적이고 신속하게 알아내는 진단기법을 창출하며 질병 치료를 위한 타깃(작용점) 원리를 구명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이마고폴(Imagopole)’이라는 첨단 기술 플랫폼 조직이다. 파스퇴르연구소는 ‘이마고폴’을 이용해 초미세 구조 생물학·화학·면역학·세포생물학·전염성 질환 등 분야에서 세포와 분자단위 감염 메커니즘을 시각화하는 새 연구 기법을 도입했다. 연구소는 첨단 기술 플랫폼 구축을 위해 2001∼2005년 인건비를 제외하고 순수 구축 비용으로 약 900만유로(120억원)를 투자했고 계속 예산을 늘릴 계획이다.
‘이마고폴’은 분야별로 △거대분자학 기반 생물리학(Biophysics of Macromolecules) △전자현미경(Electron Microscopy) △분자 전자동결현미경(Molecular Cryomicroscopy) △유세포 분석(Flow Cytometry) △이미지 분석(Dynamic Imaging) 등의 플랫폼이 운영되고 있다. 연구소는 각각의 플랫폼을 통해 컴퓨터공학·이미지데이터 분석·자동화 소프트웨어·광학 등 최첨단 기술을 생명과학 연구에 적극 도입함으로써 연구 효율성은 물론 이를 적용한 새로운 연구기법 개발에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파스퇴르연구소는 2005년 프랑스 ‘올해의 엔지니어’에 선정됐고 유럽연합 NEST(New and Emerging Science and Technologies) 프로그램으로부터 연구지원을 받고 있기도 하다.
‘이마고폴’ 중 이미지 분석 플랫폼은 에이즈 연구에서 탁월한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이 플랫폼은 빛의 특성(부분적으로는 형광, 생물발광 특성)을 활용해 분자나 세포 구조를 밝혀낸다. 또 최첨단 컴퓨터공학, 광학기술 등이 융합된 다차원이미지(Multi-dimensional Imaging) 분석을 통해 시공간 차원에서 생물학적 발생현상을 계량화함으로써 세포 또는 조직 내 변화현상과 질병 감염과정을 신속하게 시각적으로 이해하도록 하는 신기법을 적용했다. 파스퇴르연구소는 HIV 연구 프로젝트와 살아있는 세포 내 감염 규명, 세포 내 유전자 발현동태 분석 등 다양한 연구와 연계해 19개 이미징 시스템을 운용 중이다. 또, 생물안전등급 2, 3 실험실(P2/P2+, P3)내 데이터 분석을 포함해 연평균 1만5000여 시간 동안 연구시스템을 가동하고 있다.
IT와 첨단 광학기술을 적용한 전자현미경 플랫폼은 세포생물학·바이러스학·미생물학·기생충학 등 연구분야에서 초미세 구조형태학 연구와 면역조직학적 분석 등을 시각화하는 데 쓰인다. 이 플랫폼은 생명과학 연구를 산업화, 상용화하는 마지막 단계에서 주로 사용된다.
조윤아기자@전자신문, forange@
◆파스퇴르연구소는...
파스퇴르연구소는 프랑스 미생물학자 루이 파스퇴르 박사가 세계 최초의 백신인 광견병 백신 개발에 성공한 후 세계 각지에서 조성된 국제기금으로 1887년 파리에 설립됐다.
초기에는 감염성 질환에 대한 백신 개발 연구가 주를 이루다 AIDS의 주 감염원이 HIV바이러스임을 세계 최초로 규명하는 등 점차 생화학·분자생물학·유전학 등 생명과학 전반으로 연구를 확대해 왔다. 1907년 알퐁스 라베랑을 시작으로 일리야 메치니코프(1908년), 프랑수아 자코브(1965년)에 이르기까지 8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기도 했다. 최근 10년간 논문인용 세계 순위에서 면역학 1위를 비롯, 생물학 및 생화학(12위), 임상의학(41위), 분자생물학 및 유전학(77위), 융합기술(34위)분야에서 앞서고 있다.
파스퇴르연구소는 기초연구 성과의 응용 개발을 이용한 산업화에도 심혈을 기울여 2002년에만 라이선싱 수익이 7396만달러에 이르는 등 단일 분야 연구기관으로는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2006년을 기준으로 전체 인력은 2550명이며 예산은 2억2300만유로(약 2900억원)이다. 연구조직은 10개 연구분과 산하 146개 연구팀과 16개 플랫폼으로 구성돼 있다.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 26개국에 30개 연구소와 협력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인터뷰-앨리스 도트리 파스퇴르연구소 소장
2005년 10월 취임한 앨리스 도트리 소장은 파스퇴르연구소 최초 여성 소장이다. 세포생물학자로서 특히 면역체계와 세포 내 박테리아 연구에서 탁월한 업적을 평가받고 있는 그는 신약 개발의 효율성과 경제성을 높일 수 있는 대안으로 생명공학(BT)에 정보통신(IT) 기술을 접목시키는 데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있다.
도트리 소장은 “매년 제약업계의 R&D 비용 증가에도 불구하고 신약허가 제품 수가 오히려 감소하는 까닭은 신약 하나를 만드는 데 평균 14년간 8000억원이라는 어마어마한 시간과 재원이 소요되기 때문”이라며 “최근 각광받는 바이오인포매틱스 분야는 이러한 고민에서 출발한 것으로 생명공학 분야에 컴퓨터 시뮬레이션 SW나 3차원 이미지 분석 처리, 데이터 자동검색 분류 같은 IT를 적용함으로써 신약 개발 기간을 크게 단축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을 포함한 세계적인 IT업체에서 바이오칩·DNA칩·유비쿼터스 헬스케어, 사이버 임상시험 시스템 개발, 신약후보 물질 발굴을 위한 시뮬레이션 시스템 개발 등에 상당한 투자를 하고 있고 다양한 바이오테크 기업과의 제휴와 협력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매우 긍정적인 모습”이라고 덧붙였다.
도트리 소장은 한국에 대해선 “정부 주도로 기초과학 연구 역량은 세계적 수준으로 성장했고 정보통신 분야는 이미 세계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고 평가하며 “이제는 이러한 역량을 결합시켜 차세대 진단기법이나 신약 개발, 새로운 방법론 개발 등 응용화, 산업화에 초점을 둬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도트리 소장은 특히 지난 2004년 설립한 한국파스퇴르연구소에 큰 기대를 나타내며 “한국의 우수한 IT·나노·화학 분야 역량과 파스퇴르가 보유한 생명공학 및 기초 의과학에서의 역량을 결합해, 기초연구 성과를 신약 개발로 발전시키는 아시아의 핵심적인 중개연구 중심기지로 육성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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