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기업]하나로텔레콤 박병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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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대 수석 입학과 법대 수석 졸업, 사법시험 최연소 합격, 국내 최대 로펌 김&장에서 잘나간 변호사, 그리고 지금은 CEO. 이쯤되면 좀 질린다. 사람이란 게 빈틈도 있고 약점도 있어야 정이 가기 마련인데 왠지 사람냄새가 안난다. 너무나 정교하게 만들어져 구경하기도 조심스러운 유리공예품 같을 듯 하다. 이 화려한 이력의 주인공은 박병무 하나로텔레콤 사장. 그런데 이 사람, 의외로(?) 투박한 뚝배기같다. 새벽까지 질펀하게 술을 먹고, 힘든 것 뻔히 알면서도 어려운 선택을 하는 바보스러움도 있다. 의리와 약속을 위해 눈앞의 이익을 포기하고 인생에서 큰 굴곡은 없어도 사람살이의 오묘하고도 깊은 맛을 안다. 수재·천재 소리를 들으면서도 사람냄새까지 나다니 이거 정말 질린다.

 

 ◇꽉막힌 범생이? 아니죠∼=그의 키는 170cm 중반대다. 중 3때 다 큰거라고 하니 학창시절 꽤나 덩치가 좋았던 셈. 그래서 학창시절 박 사장에게 눈독을 들이는 써클이 많았다. 그것도 주먹 좀 쓴다는 폭력써클. 대일고등학교에 맘모스와 빅스타라는 양대 써클이 있었는데 입학하자마자 여러번 가입 제의를 받았다. 물론 가입은 안했지만 그쪽 친구들과도 친하게 지냈다. 같이 어울리다보니 꼴찌 친구의 성적이 전교 3등으로 올라간 적이 있었는데 그 때 학교가 발칵 뒤집혔다. 소위 컨닝을 해줬다며 교장실에 불려간 것. 물론 누명을 벗었다.

 중 3때는 이런 사건도 있었다. 학생회장을 했던 박사장이 라이벌 학교의 폭력배로부터 곤봉으로 얻어맞은 일이 발생한 것. “우리 회장을 건드렸다”는 소문이 삽시간에 번지면서 두 학교간 패싸움까지 벌어졌다.

 “그때만 해도 내신이 중요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순수와 낭만이 있던 시절이기에 가능했다”며 회고한다. 공부는 잘해 늘 수재소리를 들었지만 어떤 친구와도 잘 어울리는 매력적인 학생이었다.

 

 ◇25년만에 흘린 아버지의 눈물=박사장은 80년 서울대학교에 수석입학한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만해도 서울대 수석입학은 전국 1등이라는 의미였기 때문에 언론의 집중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그런데 인터뷰가 화근이었다. 비결을 묻는 질문에서 ‘교과서 위주로 공부하고 잠은 충분히 잤다’는 모범답안 대신에 “국영수 과외한 것이 많이 도움이 됐다”고 말한 것. 이 발언이 일파만파로 커져 당시 한전 이사로 재직중이던 부친이 그해 일자리를 잃었다. 비리가 아니었으면 어떻게 과외를 시켰으며 자가용으로 아이를 태우고 다니는 것도 문제가 있다는 이유였다. 내막은 달랐다. 당시 박사장은 워낙 공부를 잘했기 때문에 초빙을 받아 주로 공짜 과외를 받았고 극성스런 다른 엄마들이 자가용으로 기다리며 박사장을 태우고 다녔던 것. 여기에 그치지않고 그해 과외가 전면 금지되는 조치까지 취해진다. 박사장의 발언하나가 엄청난 파장을 몰고온 셈이다. 박사장은 “그때 아버지의 눈물을 처음 봤다”며 “사법고시를 빨리 준비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라고 말했다.

 

 ◇안정보다는 모험과 도전=변호사로 탄탄대로를 걷던 박사장은 새로운 도전을 한다. 로커스홀딩스의 CEO로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된 것. 김&장에 12년간 근무하면서 M&A 전문가로 명성을 떨쳤으니 뭐가 부족했으랴. 하지만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박 사장 자신도 모험심이 있는 줄 몰랐단다. “제가 아침잠이 많고 게을러서 쉽고 편한 걸 좋아하는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의미있는 도전을 즐기더라”고 말한다. 그래서 여행도 잘 가보지 않은 아프리카, 알래스카, 아마존, 히말라야 같은 오지를 선호한다. 김&장에서 로커스홀딩스에 갔을 때, 뉴브리지캐피탈로 옮겼을 때, 하나로텔레콤을 맡았을 때 항상 사람들은 뜯어말렸다. 왜 힘든 길을 가냐고. 실제 로커스홀딩스를 맡은지 1년이 지났을때 너무 힘들어 그만둘까도 생각했다. 초기 6개월동안 월급을 주기위해 빚까지 내야했고 연대보증까지 섰다. 이러다 망하는구나 생각도 들었다. 개인 수입도 줄었지만 새로운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야하는 일은 더 힘들었다. 대기업에서 좋은 제안까지 왔다. 그러나 “법조인 후배들이 네가 찾아간 길을 지켜보고 있다”는 선배의 말을 듣고 다시 마음을 잡았다. 일주일에 서너번은 저녁부터 새벽까지 술잔을 기울이면서 영화판 사람들과 호흡하고 적응해나갔다. 양조장을 하신 할아버지와 술에는 관대한 아버지 덕분에 일찍부터 술을 배운 게 꽤나 도움이 됐다. “인간관계에서 공부 잘하는 결점을 술먹는 능력으로 커버했다”며 웃는 박사장은 “생김새가 별로 스마트하지 않은 것도 도움이 됐다”고 소탈하게 웃는다.

 ◇8년차 CEO…행복한 조직 경영하고파=박 사장은 2000년부터 경영인으로 살아왔다. 갈 때마다 굵직굵직한 모멘텀은 만들어놨다. 하나로텔레콤도 마찬가지다. 2년 전 어려울 때 왔지만 분기 흑자전환에 하나TV 성공적인 안착 등 성과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본인은 아직은 경영자로서 미흡하다며 겸손해한다. 다만, 시야가 넓어진 것은 인생에도 큰 도움이라고 말한다. 경영자와 법조인의 가장 큰 차이가 뭐냐고 묻자 종합 예술인과 전문 예술인이라는 답변이 돌아온다. 다른 장점을 가진 사람들을 결합시켜 최상의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게 경영이란다. 변호사는 사람과의 관계가 일면적이지만 경영자는 전면적이라는 것이다. “솔직히 정신 건강에는 변호사가 더 나은 것 같다”는 박 사장은 “너무 오래 떠나있어 다시 돌아가기도 힘들다”고 말한다. 하지만 돌아갈 수 있어도 꽤 오랫동안은 다시 변호사로 살 것 같지는 않다. 경영자로서 더 큰 세상을 봤기 때문이다. 대주주 지분 매각 이후의 거취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았다. 하지만 언젠가는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면서도 소속원들의 행복지수가 높은 조직을 운영해보고 싶다는 꿈이 있다. 그게 CEO든 뭐든, 규모가 크든 작든 관계 없다. 8년차 경영자 박병무의 새 꿈이 무럭무럭 크고 있다.

  조인혜기자@전자신문, ihcho@

박병무 사장은…

 1961년 경북 경산에서 태어나 남대문중학교, 대일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법대, 연세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82년 대학 3학년때 당시 사법고시를 최연소로 합격을 해 화제를 뿌렸다. 88년부터 12년동안 김&장 법률사무소에서 M&A 전문가로 명성을 날렸다. 2000년부터는 플레너스엔터테인먼트(구 로커스홀딩스) CEO로 경영자의 길을 걷기 시작해 하나로텔레콤에 이르기까지 경영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판단력과 추진력이 돋보이면서도 인화를 중시하고 소탐대실하지 않는 스타일이라는 평가다. 부인과의 사이에 1남1녀를 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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