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많이 본 탓일 게다. 다른 것은 몰라도 체중감량에 대한 전문가들의 조언은 ‘음모’일지 모른다. 그들은 건강을 잃지 않고 살을 빼려면 반드시 운동과 음식조절을 병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곧이곧대로 수행해 살빼기에 성공한 이가 많은가. 아마도 주위에서 거의 볼 수 없을 것이다.
물론 병행요법으로 감량에 성공한 사례를 본 적이 있다. 그는 식사조절을 하면서 매일 밤 남산 길을 6㎞씩 달려 단기간에 20㎏을 줄였다. 하지만 이것은 극단적인 예일 뿐이다. 범인(凡人)들은 비장한 결의 속에 식사량을 줄이고 걷고 달려보지만 중도에 포기하게 돼 무력감에 빠지게 마련이다.
음모는 바로 이쯤에서 함정을 파놓고 기다린다. ‘내 말대로 하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을 텐데, 당신은 유난히 의지가 약한 모양이로군. 그러면 전문가의 조력을 받을 밖에. 돈은 좀 들겠지. 하지만 달리 방도가 없을 테니 순순히 받아들이지. 골라 보게. 비만클리닉 등록 외에도 지방연소주사·지방흡입술·초음파지방분쇄·위장축소술·위장우회수술 등이 있네. 출산 3주만에 11㎏을 뺀 안젤리나 졸리는 아프리카산 식욕억제제 덕분이었으니 참고하고.’
음모는 애시당초 초인적 의지가 없이는 불가능한 병행요법을 제시해 패배자들을 양산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체중감량과 관련한 업종들의 호황이야말로 음모의 실존을 반증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작년 여름 나는 내게 최적화된 감량법을 찾아 나섰다. ‘고지혈증 의심’을 치유하기 위함이었다. 먼저 전문가 조언과 달리 지속 불가능한 운동요법은 배제하고 상대적으로 용이한 다이어트에 집중키로 했다. 문제는 어떻게 요요현상을 잡느냐인데, 분석결과 뇌의 시상하부가 관장하는 신체시스템, 즉 생체항상성(生體恒常性, homeostasis)이 관건이었다. 이 시스템은 신체가 안팎의 변화를 받게 될 경우 스스로 ‘생리적 안정상태’를 유지하려고 한다.
시스템의 공략포인트는 의식과는 무관한 자동제어 기능이라는 것과 시스템 센서가 음식의 질보다는 양에 더욱 민감하다는 점이었다. 그렇다면, 시스템이 생리적으로 안정된 상태로 오판할 정도로 저열량 음식을 양껏 먹으며 고스톱식 시간차공격법으로 체중감량을 시도하면 어떨까.
나는 내 몸을 속이기로 했다. 작전개시와 함께 작심삼일과 군대특식의 방법부터 동원했다. 내가 아무리 인내심이 부족해도 최소 사흘은 버틸 수 있을 터. 이 기간 하루 세 끼 식사를 하되 양을 절반으로 줄였다. 하루 섭취량은 1500kcal로 제한하고 기름진 음식과 탄수화물은 피했다. 오래 씹어 뇌로 하여금 많이 먹은 것으로 오인케 만들고, 간식과 야식은 금했다. 술자리도 미뤘다.
그 결과 2㎏이나 줄었다. 나흘째 되던 날 시스템이 반격에 나서기 직전 전격적으로 곰탕과 자장면을 특식으로 제공했다. 그래도 1㎏은 감소한 상태였다.
이때 시각화 전략이 사용됐다. 1㎏짜리 여성용 아령을 들고 다녔다. 처음에는 가벼웠던 것이 점점 무겁게 느껴졌다. 그리고는 절실히 후회했다. 그동안 내가 아령을 몸에 달고 다녔구나. 이후로도 무리하지 않고 기분내킬 때마다 작심삼일과 특식제공을 반복했다. 두 달이 지나자 족히 3㎏은 안정적으로 빠져 있었다.
인간은 얻지 못한 것보다는 갖고 있던 것을 잃게 될 때의 고통을 더 크게 느낀다. 이른바 손실혐오(loss aversion) 이론이다. 이후 체중감소분이 추가될 때마다 1.5㎏짜리 생수페트병들을 들어보며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애써 줄인 체중을 시스템에게 빼앗긴다는 것이 아깝지 않으냐.
이러구러 1년여, 10㎏가 줄었다. 신체시스템과의 치열한 공방은 있었으나 다이어트는 심적 강박없이 게임하듯 진행됐다. 그 새 식습관도 개선됐고 건강도 한결 좋아졌다. 생체항상성의 센서는 기준치를 10㎏ 낮춰 안정적으로 작동중이다.
나는 다시 6개월 일정으로 5㎏ 감량에 도전하려고 전략을 가다듬고 있다. 체중감량은 의지가 아니라 심리학의 문제며, 자가심리 처방으로도 청년기의 체중까지는 복귀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항상은 아니겠지만 종종 진실은 저 너머 있다고 믿는다.
주태산 <맥스무비 사장> joots@maxmovi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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