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내 취업을 원하는 국내 엔지니어들이 주로 발급받는 전문직 취업 비자(H-1B)가 미국 IT업계에서도 ‘뜨거운 감자’로 부상했다. 숙련된 외국인 취업을 늘려야 한다는 IT업계 주장과 자국 기술 인력을 보호해야 한다는 반대파 논리가 팽팽히 맞서고 있는 것. 이 때문에 내년 미국 대선을 앞두고 IT업계가 이민법 개정을 포함한 대외국인 정책 논란의 중심에 서는 진풍경도 연출될 조짐이다. 외국인 취업은 미국 지적 자원의 원동력인가, 자국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족쇄인가.
◇미 IT업계 “H-1B비자 두 배로 늘려라”=마이크로소프트(MS)·구글·인텔 등을 중심으로 IT업계는 H-1B비자를 현재의 두 배 수준인 11만5000명으로 늘려 달라면서 기술직 인력난을 호소해왔다.
한 때 20만건에 육박했던 H-1B비자는 9·11테러 이후 2003년 10월부터 6만5000명으로 줄어들었다. 유력 IT업체 CEO포럼인 TCC(Technology CEO Council)는 지난 6월 대선 후보자를 겨냥한 ‘위대한 나라를 위한 전략 제안’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하고 “글로벌화라는 시대 흐름에 맞춰 가장 좋은 인력이 미국에서 일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줘야 한다”고 제안했다.
실리콘밸리닷컴 보도에 따르면, 지난 4월 마감한 2007년 H-1B비자 지원자 수는 정원의 두 배에 가까운 12만4096명에 달했다. 시스코의 경우, H-1B비자 지원자 수는 2004년 481명에서 2005년 1027명, 2006년 2283명으로 매년 늘고 있는 추세다.
MS 측은 “현재 MS의 고위 기술직만 3000개에 달한다”면서 “미국 내에서 배출되는 기술자로만 이 수요를 충족시킬 수 없다”고 덧붙였다. 구글의 파블로 샤베즈 정책담당자는 “입사 합격자 중 70명 이상이 H-1비자 발급을 거부당했다”면서 H-1B비자 발급 확대를 주장했다.
◇“인력 부족 터무니없고 일자리만 뺐는다”=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다. 인포메이션위크는 IT업계 취업을 준비 중인 미국인 고학력자의 실패 사례를 일일이 보도, H-1B비자 소지자가 미국 기술 인력 일자리를 뺐고 있다고 결론지었다.
한 미국인 취업준비생은 “인력이 부족하다면, 왜 취업이 안되느냐, 또 연봉은 오르지 않느냐”고 반문하면서 “IT기업이 원하는 것은 기술자가 아니라, 단지 값싼 외국인 노동력일 뿐”이라고 비난했다. 듀크대 비벡 와드와 공학부 교수는 “H-1B비자는 모두가 지는 게임(lose-lose game)”이라면서 “H-1B비자 소지자는 일자리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고용주한테 착취당하는 한편, 미국 기술 인력은 인도와 중국 인력에 일자리를 빼앗겨 결과적으로 이공계를 기피하는 현상마저 일고 있다”고 말했다.
인포메이션위크는 일반인의 인식과는 달리, H-1B비자 발급 수는 각종 면제조항으로 10만명이 넘는다고 주장했다.
◇국회 세 대결 양상=양측 공방의 결과도 팽팽하다. 베르니 산드라, 척 그래슬리 등 미 상원의원 두 명은 미국 시민권자를 정리해고하고, 이 일자리를 H-1B비자 수급자로 대체하는 것을 엄격하게 규제하는 새 이민법 개정안을 제안했다. 또 다른 상원의원은 IT업계의 강력한 로비를 등에 업고 H-1B비자 쿼터의 상한선 확대를 골자로 한 이민법 개혁안을 추진했으나, 이달 초 의회에서 최종 부결됐다. 이 때문에 MS가 캐나다 밴쿠버에 SW 개발센터를 개설키로 발표하는 등 H-1B비자 쿼터 제한에 대한 반발 기류가 나타나고 있다.
류현정기자@전자신문, dreamshot@etnews.co.kr
▲ H-1B비자=전문 기술을 가진 외국인이 미국 내 미국 기업에서 일하기 위해 발급받는 취업 비자의 일종. 3년 단기 체류할 수 있으며 3년 재연장이 가능하다. H-1B비자의 연간 발급 쿼터 상한선은 6만5000명으로 제한하고 있으며 석사 이상 학위 소유 엔지니어 발급 상한도 연간 2만건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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