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전자금융거래법, 기업 인식전환 급하다

 다음달 본격 시행에 들어가는 전자금융거래법의 ‘출금 동의(고객 서면 동의에 의한 자금이체)’ 조항이 태풍의 눈으로 등장했다. 전자금융기업에 대한 허가·등록 등을 위해 6개월간 유예됐던 전자금융거래법이 다음달 본격 시행에 들어가면서 ‘고객의 서면 동의 없이’ 이뤄지던 기존의 계좌이체 관행에 제동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 제도가 본격 시행되면 그동안 콜센터를 통한 전화 녹취나 팩스 송수신 등 신분 확인 절차를 통해 고객계좌에서 자동으로 자금을 인출해왔던 기업의 관행이 불법으로 처벌받게 된다. 금융기관 공용의 공인인증서를 사용하거나 고객이 직접 대리점이나 영업점을 방문해 서명을 할 경우에만 적법한 계좌이체가 가능해진다. 현재 공인인증서 보급이 일반화되지 않은 상황임을 감안할 때 여파가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전자금융거래법에 규정된 출금동의 절차에 현재 가장 큰 불만을 나타내는 쪽은 대규모 고객이나 회원을 보유하고 있는 사업자다. 만약 이들 기업이 고객의 직접 서명을 받지 않은 채 자금결제 방식을 전환하게 되면 금융당국의 제재를 받는 것은 물론이고 최악의 경우 고객에게서 서비스 요금이나 상품 대금을 계좌이체 방식으로 수령하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이에 대해 기업들은 출금동의를 받기 위해 일일이 고객을 찾아가거나 고객이 영업점을 방문토록 하는 게 비용이 많이 들고 현실적으로 힘들다며 노골적인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전자금융거래법이 정착되려면 어느 정도는 기업이나 소비자의 비용 부담과 불편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각종 금융사기가 기승을 부리고 해킹·피싱 등 지능 범죄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전자금융거래의 안전성을 높이려는 법·제도적인 차원의 노력을 더는 늦출 수 없는 과제다. 이 때문에 그동안 안이하게 이 문제에 대처해 왔던 기업의 인식 전환이 급하다. 대부분 기업은 금융당국의 제재 조치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데도 아직 고객들에게 제도 변경 사실을 고지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다른 기업의 눈치만 보고 있다는 것이다. 이래서는 전자금융거래법의 정착이 요원하다. 물론 일부 기업 중에는 전자금융거래법의 본격 시행에 대비해 오출금 등 발생을 막기 위해 시스템을 보강하고 있다고 하지만 이 같은 소극적 대책으로는 부족하다.

 기업과 금융기관이 지금부터라도 고객에게 제도 변경을 적극 홍보하고 상대적으로 비용이 덜 들어가는 공인인증서 이용을 확산하려는 노력을 펼쳐야 한다. 현재로선 공인인증서의 도입이 서면 동의에 들어가는 비용을 줄일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대안으로 보인다.

 금융 당국도 기업에만 책임을 전가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일벌백계식의 단속이 일시적인 효과를 볼 수는 있겠지만 한꺼번에 다 바꿀 수는 없다. 업계의 동의를 최대한 끌어내는 노력도 병행해서 이뤄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업이 새로운 제도 도입에 자율적으로 협조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해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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