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휴대폰, EPR 맞추려 재고까지 파쇄

폐휴대폰 올해 1600만대 나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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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남 천안시 한 휴대폰 재활용업체. 파쇄기에서는 한 때 잘나가던 휴대폰들이 폐품 처리돼 주루룩 쏟아져 들어갔다. 최신 모델도 몇몇 눈에 띄었다. 20달러가 넘는 퀄컴 MSM6000칩세트도 PCB와 함께 파쇄기에 들어가 가루로 변했다. 금은 등 금속은 골라 제련소로 보내고 배터리에서는 코발트를 빼내 별도로 처리한다. 이 회사 이모 사장(50)은 “휴대폰 한대를 1000원 주고 사오지만 금속 등을 팔면 300원 정도만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환경단체의 보전을 받아 유지하고 있다”면서 “수거 물량이 적어 EPR에서 규정한 16.5%의 재활용 의무 비율을 맞추기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눈덩이처럼 불어난 중고 및 폐휴대폰이 환경을 위협하는 산업쓰레기로 등장한 것도 모자라 불법과 탈법의 주범이 되고 있다.자원을 재활용하고 외화를 거둬들이겠다며 수출한 중고폰이 되려 역수입돼 유통되는가 하면, 멀쩡한 휴대폰도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의 의무 재활용 비율을 맞추기 위해 파쇄 된다. 이 모두 투명한 수거·처리 체계가 갖춰지지 않은데다 합리적인 재활용 법제가 뒷받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올해 3G 이동통신시장이 본격 열리면서 매년 1000만대 이상 발생하는 폐 휴대폰이 올해에만 1600만대 이상으로 급격히 늘어날 것으로 예상돼 대책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문닫는 중고 휴대폰 수거업체=한때 잘나가던 중고폰 수거, 수출업체들이 지난해부터 속속 문을 닫았다. 환경오염을 막고 자원을 재활용할 수 있다는 취지에 유망 사업으로 생각하고 뛰어들었지만 수출할 중고폰을 구하지 못해 결국 손을 털었다. 번호이동으로 멀쩡한 중고폰은 넘쳐났지만 이통사들이 보상금을 1만원대로 줄인 탓에 소비자는 중고폰을 내놓지 않았다. 덕분에 수거량은 급락했고, 반면에 장롱폰은 급증했다. 더욱이 2005년부터는 EPR가 도입되면서 그나마 수거된 휴대폰들은 재활용 의무 비율을 맞추기 위해 속속 파쇄기로 향했다. 대당 5달러가 넘는 로열티에 20달러가 넘는 MSM6000칩을 탑재한 최신 휴대폰들도 줄줄이 가루가 됐다. 3G 교체수요가 본격화되면 2G 최신 휴대폰들도 같은 신세를 면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중고폰 유통, 현행 법에서 보호 안 돼=더 큰 문제는 그 가운데도 중고폰을 사용하고자 하는 수요는 꾸준히 늘고 있다는 점이다. 대부분 외국인이거나 신용불량자, 소외계층이다. ‘공짜폰’의 혜택이 은행과 신용거래가 가능한 사람들에 국한된 반면에 이들은 중고폰을 사서 그때그때 필요한 만큼 선불전화(PPS) 형태로 충전해 쓴다. 100만∼200만명으로 추산된다. 문제는 우리 법 체계에서는 중고폰을 제대로 유통하기가 어렵게 돼 있다. 일단 수거가 어렵고 재활용을 위해 수리하는 과정에서 케이스 등 부품 교체나, 기능 업그레이드, 일련번호 교체 등을 하게 되면 상표법 분쟁이나 전파법, 프로그램보호법 등을 위반할 위험이 많다. 중고폰을 재활용하는 과정을 이들 법 체계에 반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조업체와 재활용업체가 수년간 법적 분쟁을 해 온 것도, 해외로 수출한 중고폰이 현지에서 수리돼 역수입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자원재활용 위한 법, 제도 보완해야=중고폰 문제는 각 주체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히면서 좀처럼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정통부와 이통사들은 생산자인 제조사에 바통을 넘기고, 환경부와 제조사들은 고객 접점에 있는 이통사가 나서지 않으면 수거가 어렵다고 볼멘소리다. 제조사들은 또 EPR에 의해 휴대폰 등 폐전자제품을 처리하는 과정에 드는 비용이 아까워 위탁업체들의 수익을 보전해주거나 별도의 분담금도 못내겠다며 한걸음 물러서 있다. 수거의 책임은 외면한 채 AS 단가를 올리고 과도한 보조금을 투입해 자원의 재활용 보다는 새것을 사도록 유도하는 현재의 행태를 지속한다면 우리나라는 거대한 산업쓰레기 매립지로 변할 것이라는 게 환경단체들의 우려다.

전병헌 의원은 “산업 발전과 환경 보호, 소비자 선택권 확대 등을 목적으로 수거와 재활용, 재사용의 근거를 만들고 각 주체도 조금씩 양보해 참여할 수 있도록 법제화를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정지연기자@전자신문, jyj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