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가 창출되지 않아 공급이 활성화하지 못해 생명력이 없는 상태입니다.”
지난 2004년 10월 국가과학기술위원회(위원장 대통령)를 중심으로 재정경제부·과학기술부·산업자원부가 추진한 ‘기술가치평가제도를 활용한 기술금융 활성화 방안’의 현주소에 대한 중소기업 관계자의 냉혹한 결론이다. 당시 정부는 5000억원을 지원하고 민간 금융권으로부터 5000억원을 조달해 1조원 상당의 ‘기술금융모태펀드’를 만든 뒤 될 성 부른 정보기술(IT)·생명공학기술(BT)·나노기술(NT)·융합기술 벤처기업들에게 안정적인 투자를 보장할 계획이었다. 이는 기술력을 갖춘 벤처기업들에게 자금이 원활하게 흘러들어가도록 하겠다는 ‘산업구조 선진화 의지’가 투영된 것. 이를 위해 과기부가 기술성과 활용성을 평가하고, 산자부가 기술 사업화를 촉진하고 창업지원을 위한 초기 기술금융을 맡으며, 재경부가 민간 금융권에 관련 제도를 보급하는 협력 틀까지 만들었으나 산업현장에서 좀처럼 활성화되지 못하는 실정이다. 유비쿼터스 컴퓨팅 환경에서 지능형 기계과 기계가 소통(M2M)하며 사람을 위하고 보호하는 미래 사회를 앞당길 IT 벤처기업, 그 기업들이 자유롭게 기술을 연구하고 시장활동에 나설 수 있도록 산업구조를 고도화할 때다.
산·학·관에 두루 정통한 한 관계자는 “진정한 모험자본(벤처캐피털·VC)이 아니기 때문”이라며 “정부가 투자를 유도하고 일으키는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미국 실리콘밸리 등에서는 휴렛팩커드(HP)와 같은 기업을 통해 벤처캐피털이 크게 성공하는 사례를 낳았지만 우리는 정부가 의도적으로 육성한 게 서로 다른 점”이라며 “모험적 장기 투자가 이루어질 기반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오명 건국대 총장도 지난 2004년 국가과학기술위원회 부위원장(과학기술 부총리)으로서 “미국식 벤처캐피털을 도입하자”고 제안했다. 오 총장의 제안은 정부의 기술금융 활성화 방안과도 맥을 같이했다.
2004년에 시작된 이 같은 흐름은 2007년에 들어 ‘IT를 활용한 금융 효율성 및 기술가치 평가 정확성 제고’의 필요성으로 연결되고 있다. 기존 한국형 벤처투자방식으로는 발견해낼 수 없는 알토란 기술과 기업 가치를 제대로 평가해 필요한 만큼의 자금이 투입될 길을 트자는 것이다.
특히 기술벤처기업의 연구개발·기획·영업·마케팅 활동을 투명하게 자본시장에 실시간 공개하는 정보체계도 구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실시간으로 공개된 정보가 해당 기업의 가치를 평가하는 새로운 재료로 연결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대형 금융사고를 막기 위한 조기경보시스템 등 금융감독체계의 정보화, 기술 경영이 결합된 기술경영(MOT) 학위제와 같은 전문인력 양성도 정부가 해야 할 핵심 정책과제다.
산자부는 기술이전 촉진법에 따라 ‘기술가치평가사’와 ‘기술거래사’를 국가 자격으로 운용한다. 과기부도 이공계 우대 특별법에 따라 ‘연구기획평가사’를 국가 자격으로 만들 태세다. 이를 통해 이공계 출신에게 지적재산권과 상경계열 교육을 하고, 상경계열 출신에게 공학일반론을 가르치는 등 될 성 부른 기술벤처기업을 객관적으로 발굴할 전문 인력을 양성할 계획이다. 물론 “기능이 비슷하다면 과감하게 합치거나 새로운 자격제도를 만들지 않고 대체할 수단도 얼마든지 고려해볼 수 있을 것”이라는 게 관련 제도 자문위원 A씨의 시각이다.
그는 특히 “특정 산업 분야를 선택해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기존 정책은 나름의 장점이 있었으나 적지 않은 실패 사례를 낳으면서 자본시장의 불신까지 불렀다”면서 “IT를 기반으로 삼아 산업구조를 개혁하되 자율·공정 경쟁을 촉진하는 큰 틀(정책)을 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고-21세기 한국산업 르네상스, 창조적 IT전략으로
2000년대 초 ‘닷컴버블’의 붕괴를 겪으면서 IT산업 성장세는 다소 둔화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 IT를 동력으로 하는 경제성장과 산업구조 고도화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과거에는 이동통신이나 인터넷 서비스 잠재수요가 충분했기 때문에 수요를 충족하는 기술을 시장에 내놓는, 비교적 손쉬운 방법으로 사업에 성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기술이 수요를 찾아가야 하는 상황이다.
미국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구빌 교수는 “기술혁신이 시장에서 성공할 확률이 10%도 안 된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애플의 디자인담당 부사장인 아이브는 “컴퓨터산업은 창조성 면에서 파산한 것이나 다름없다”고까지 말했다. 이제 기술만으로 성공하기 어렵고 기술과 ‘그 무엇’이 결합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얘기다. 최근 많은 경영자들이 ‘그 무엇’이라는 게 ‘창조성’이나 ‘문화’라고 생각하고 있다.
남들이 한계에 도달했다고 생각할 때, ‘창조적 파괴’를 통해 무언가 새로운 발전방향을 모색하는 자에게 기회가 온다. 90년대 말 검색시장이 거대 포털들에 의해 정리되었다고 여겨질 때, 구글 창업자들은 오히려 기회라고 생각했다. 탁월한 검색기능과 함께 기존 사업모델로부터 과감하게 탈피한 개방적 플랫폼으로 시장을 장악했던 것이다. 애플의 최고경영자 스티브 잡스 도 기존 가전 개념의 MP3 플레이어에서 벗어나 ‘아이포드’에 정보기기 개념을 도입, 소비자 마음에 다가서는 전략으로 성공을 거뒀다.
이 같은 변화들은 이제 IT산업이 ‘창조적 파괴’를 통해 새로운 모습으로 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경제학자 슘페터가 도입한 ‘창조적 파괴’는 기존 기술과 경영방식이 이윤을 창출하지 못하는 한계 상황에 이르면 혁신적 기업가가 나타나 낡은 것을 파괴·도태시키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변혁을 일으켜 다시 이윤이 창출되고 경제가 발전한다는 이론이다.
IT산업에서 시작한 21세기 창조적 파괴가 모든 산업 분야의 창조적 파괴를 촉진할 것이다. IT가 모든 산업 발전을 이끄는 기반 기술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IT가 자동차 주요 부품의 성능을 향상시키는 역할에만 머무르지 않고 자동차 자체를 운전자의 대화 상대로 만들고 있다. 유통업 개념도 바뀐다. 생산된 물건을 소비자에게 판매하던 데서 벗어나 IT를 이용해 소비자와 생산자를 이웃이나 친척처럼 묶어주는 플랫폼과 같은 개념으로 발전할 태세다. 자유무역협정(FTA) 환경에서 어려움을 겪을 농수산업의 경우에도 이 같은 개념 전환을 통해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다.
상상력, 창의력, 문화를 디지털 기술로 구현하는 능력을 가진 자들이 21세기 산업 전반의 혁신과 선진화를 이끌 것이다. 그동안 축적한 IT 역량과 경험을 고려할 때 우리가 바로 그 중심에 설 잠재적 능력자다.
창조적 IT전략으로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고, 21세기 한국산업의 르네상스 시대를 열자.
손상영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연구위원 sonnsye@kisd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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