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유해물` 깊은 편견에 발목

 국회까지 통과한 게임산업진흥법 시행령 개정안이 ‘공회전’을 거듭하면서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는데도 주무부처인 문화관광부가 전혀 손을 쓰지 못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청소년위원회와 게임물등급제도개선연대가 개정령 내용 중에서 △청소년 온라인 게임이 두 시간 이상 늘어난 점 △실험용 게임(클로즈드 베타 버전)의 참가자 수 축소 등을 문제삼으며 개정령 시행에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흔히 국회에서 여야 논란으로 방치돼 있는 법률안은 부지기수지만, 국회를 통과하고도 유관 정부 기관 및 시민단체 등과의 마찰로 시행이 미뤄지고 있는 경우는 극히 이례적이다.

 게임산업진흥법은 지난해 10월 진통 끝에 시행에 들어갔지만 한 달도 안 돼 개정안이 발의됐고, 그 개정안에 따른 시행령이 만들어져 지난 20일 본격 발효를 앞두고 있었다.

 이번 법 시행 지연은 ‘게임=청소년 유해물’이라는 인식이 얼마나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박혀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임과 동시에, 주무 부처의 안일한 대응으로 관련 업계가 얼마나 혼동에 빠질 수 있나를 보여주는 사례로 남을 전망이다.

 ◇‘청소년 보호’ 내세운 지나친 발상=청소년 관련 기관은 온라인게임에 대한 청소년 접속을 자정부터 다음날 오전 9시까지 차단하자는 주장을 펴고 있다. 하지만 이는 사적생활 영역까지 정부가 규제를 가하는 이른바 사회주의적 통제 발상이 아니라면 전혀 불가능한 일이다. 더구나 전문가들은 “엄연히 자본주의 하에서 보장된 기업의 영업권을 제한하는 초법적 규정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또 시행 반대론자들은 실험용게임물의 참가자를 시행령 기준 1만2000명에서 5000명으로 줄이라는 논지를 거듭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문화부 측은 이에 대해 “실험용게임물 그 자체가 실험(베타) 수준인만큼, 보다 많은 사람이 참여해 문제점을 찾고 서비스를 개선하는 데 개정 취지가 있다”고 반박했다.

 ◇문화부도 시행 지연 책임=팽팽한 논리적 줄다리기로 시행령 발효가 늦춰진 것에 대해 문화부도 일정 부분 책임을 면할 길 없다.

 문화부 측은 “2월까지 부처 협의 과정에서 전혀 문제가 없었던 새로운 문제들을 끄집어내 자기 주장을 펴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벌써 수 차례 공청회와 부처 협의를 통해 논의됐던 시행령이 법정 시한을 맞추지 못한 것은 분명히 안일한 대응이 원인이 됐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주무부처인 문화부가 갖가지 변수에 대해 준비하고, 사전 조율에 애썼다면 막판 시행일 지연이라는 결과는 초래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진흥법’이면서 ‘진흥법’이 아닌 법=게임산업진흥법은 이미 법 제정 과정에서부터 ‘누더기’ 논란을 빚어왔다. 이곳저곳 이해단체의 요구가 더해지면서 법 명칭에는 ‘진흥’이 달려 있지만, 실제 법 내용은 ‘규제’ 조항 일변도로 기울어 있다. ‘바다이야기’ 사태로 인해 ‘산업진흥’이라는 법 목적은 완전히 꼬리를 감추고, 이른바 ‘하지 말아야 할 것’으로만 채워진 법이 만들어진 것이다.

 여기에 시행령 시행 지연까지 겹쳤으니, 법 시행 이후 온전히 법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지 의문 부호가 달리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한 게임업체 대표는 “게임업계의 기를 살려주지도, 새로운 길을 터주지도 못하는 ‘진흥법’에 대해 벌써 기대를 잃은 지 오래”라고 말했다.

  이진호기자@전자신문, jho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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