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M·HP·마쓰시타·소니….’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이 유수기업들의 공통점 가운데 하나가 종합백화점식 사업구조다. 온갖 분야를 망라해 칩에서 소프트웨어·하드웨어, 심지어 콘텐츠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풀 라인업’ 체제다. 이미 오래 전부터 기업용(B2B) 시장에서 아성을 굳혀온 이들 기업은 한때 하드웨어와 단품 판매로 상징되는 전형적인 제조업 모델을 고수한 탓에 위기를 겪기도 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토털솔루션을 지향하며 새로운 B2B 사업모델로 서둘러 변신하면서 세계 전자제조업 시장에 또 다른 지평을 넓혀가고 있다.
◇글로벌기업, 운명을 건 변신=컴퓨터 시장에서 무결점과 최고 품질의 상징이었던 IBM은 지난 1980년대 들어 위기에 봉착했다. PC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고객과 시장의 요구를 외면했던 것이 근본적인 원인. 구원투수로 등장한 루 거스너 CEO는 IBM의 운명을 되돌린 ‘챈틸리 회의’에서 B2B사업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했다. ‘단품·제조’ 중심의 사업모델을 솔루션과 유통, 고객 위주로 대수술을 단행한 것이다. 본격적인 변신을 시도한 지난 1994년만 해도 하드웨어 매출은 323억달러로 전체의 절반을 넘어서는 수준이었다. 전형적인 제조업 모델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지난 10여년간 사업구조를 B2B·솔루션형으로 과감하게 개혁한 덕분에 하드웨어 매출 비중은 점차 감소한 대신, IT서비스·소프트웨어·파이낸싱·신규투자 등 이른바 토털솔루션 사업은 급성장했다. 사업구조 혁신을 통해 더욱 눈에 띈 변화는 이익구조의 변화다. 지난 1994년 가장 높은 이익을 냈던 하드웨어 사업은 2005년 들어 3위로 떨어진 반면에 소프트웨어와 IT서비스가 각각 137억달러와 124억달러로 효자 사업으로 떠오른 것이다.
◇홈네트워크 분야에서 두드러져=세계적인 종합가전 업체로 유명한 일본 마쓰시타. 근래 우리나라에서도 디지털홈 환경이 확산되면서 가정용 B2B 시장이 서서히 생겨나고 있지만 마쓰시타는 이미 오래 전부터 홈 솔루션 시장을 겨냥해 치밀하게 준비해왔다.
일본에서는 갈수록 평생 살 수 있는 단독주택을 선호하는 쪽으로 주거문화가 바뀌고 있는 추세다. 지난 2005년만 해도 일본 홈 솔루션 시장규모는 7조5000억엔, 오는 2020년이면 8조5000억엔 수준으로 꾸준히 성장할 전망이다. 이 같은 시장흐름에 착안, 마쓰시타는 다양한 리모델링 형태에 따른 홈 솔루션 사업 역량을 키워왔다.
◇시장선점의 효과 ‘톡톡’= 특히 홈 솔루션 판매·설치·서비스를 위한 유통 채널은 유형별로 벌써 전국 1만1000개점 수준에 이른다. 국내 가전업체 매장이 대부분 단품 판매 위주라면 마쓰시타는 이미 홈 솔루션 유통모델로 변신하고 있다. 삶의 질을 더욱 강조할 미래에 대비, 마쓰시타는 환경친화·에너지효율·유비쿼터스 기술을 총 동원해 오는 2010년 상품화를 목표로 ‘EU하우스’ 홈솔루션을 개발 중이다.
이미 B2B 시장의 잠재력을 확인한 글로벌기업들은 시장공략책을 세워 놓았다.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삼성전자와 LG전자가 B2B 시장 진입에 합류한 것은 국내 B2B 시장 활성화를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이다.
삼성전자 홈네트워크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한 관계자는 “장기적 안목으로 봤을 때 B2B 시장은 일찍 뛰어들면 들수록 더 큰 열매를 얻을 수 있는 시장”이라고 말했다.
서한기자@전자신문, hs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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