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택과 팬택앤큐리텔에 대한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 시작이 또 연기됐다. 지난달 30일과 이달 5일 그리고 10일에 이어 네 번째다. 물론 당장 갚아야 할 채무도 순연됐지만 신규 자금 지원이 하루가 급한 팬택 임직원들로서는 애가 마른다.
실제 두 회사는 작년 12월 중순 워크아웃을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는 소식이 밖으로 알려지면서부터 여러 어려움을 겪고 있다. 납품한 부품 대금을 받지 못할까 우려하는 협력업체들이 현금 결제를 요구하며 부품 공급을 중단했다가 팬택 임직원들의 설득으로 재개하는 등 몇 차례 소동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워크아웃이 자꾸 늦어지면서 그 여파는 시장에서 가시화됐다. 자금력이 달리면서 이통사들의 주문량에 맞춰 원할하게 제품을 공급하지 못했고 신제품 출시도 늦어졌다. 마케팅 여력도 여의치 않았다. 이 때문에 월 25∼30만대 규모였던 내수 공급량은 절반으로 줄었고, 20%에 달했던 내수 점유율은 지난달에는 8%대까지 뚝 떨어졌다. 덕분에 외국 회사인 모토로라가 반사익을 거뒀다. 모토로라는 지난달에만도 24만여대의 제품을 내수시장에 공급해 팬택을 제치고 삼성·LG에 이어 3위의 자리를 굳혔다.
문제는 워크아웃 개시의 연기 사유가 그동안 워크아웃을 주도적으로 끌어왔던 은행들에 있다는 점이다. 고객에게 고지하지 않고 팬택의 기업어음(CP)을 구매한 우리은행이 관련 규정을 내세워 금융당국이 허락해야만 워크아웃에 참여할 수 있다고 버티고 있다. 주채권기관인 산업은행은 이 같은 사정을 미리 알고서도 다른 방법을 찾아보지 않고 밀어붙이면서 우리은행을 궁지에 빠뜨렸다며 양자간 감정싸움까지 벌어졌다.
생계가 걸린 개인채권자도 아니고, 담보가 없고 부실을 감수할 여력이 극히 적은 새마을금고나 신용협동조합 등 서민금융기관도 아니다. ‘채권은행자율협의회’를 구성해 팬택의 워크아웃 요청을 받아들인 것도 은행들이었고, 실사를 실시해 청산가치보다 존속가치가 높다는 결론을 이끌어내 채무조정안까지 만들어낸 것도 은행들이다. 그러나 최종 결론을 앞두고 각론에서 분열하거나 구실을 대는 모습은 ‘살리자’고 결의한 팬택과 팬택앤큐리텔을 더 ‘죽이는’ 길밖에 되지 않는다.
요즘 팬택 임직원들 사이에서는 “백약이 무효가 될까 두렵다”라는 안타까운 탄식이 터져 나온다.
정지연기자·퍼스널팀@전자신문, jy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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