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칩카드 국제표준 전환 지연…글로벌 격차 심화 우려

 #A씨(33)는 지난 1월 인도 출장길에 신용카드를 쓰려다 당혹스런 경험을 했다. 서명만 하면 되는 한국에서와 달리 결제 단말기에 카드 비밀번호를 눌러야 했기 때문이다. 법인카드였기 때문에 번호를 알 수 없었고 국제전화를 걸어 묻는 등 소동을 벌인 끝에 현금을 인출해 결제하는 불편을 겪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국내에선 아직 쓰지 않는 IC칩카드 결제 단말기가 인도에선 이미 대중화된 것이었다.

 

 #벤처기업인 사이버넷은 수년 전부터 IC칩카드 단말기를 생산해 신규시장을 노렸지만 국내 시장은 열리지 않았다. 오히려 각고의 노력 끝에 일본을 시작으로 남미, 동남아 시장에서 100억원 이상의 계약이 터지며 수출 2∼3배 성장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일본 히타치-옴론에 납품하며 글로벌 보안인증과 레퍼런스를 확보한 뒤 일본 택시조합, 도쿄가스 등에 잇따라 결제 단말기를 공급했다. 이를 기반으로 최근 급성장하고 있는 남미, 유럽, 동남아 시장에서 수출 실적이 급증하고 있다. 하지만 내수 시장은 여전히 제자리여서 많은 업체들이 사업을 접었다.

 

 IT강국이라는 명성이 무색하게 지불결제 부문의 글로벌 표준 도입이 다른 나라에 비해 늦어지면서 지불결제 신뢰도와 후방산업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

 1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IC칩카드(스마트카드) 글로벌 표준인 EMV 인프라 전환비율은 호주(60%), 일본(30%), 홍콩(76%), 싱가포르(85.3%)는 물론 경제발전이 늦은 인도(77.9%), 말레이시아(98.7%), 필리핀(68.5%)보다도 크게 떨어지는 3%에 그치는 것으로 집계됐다.

 IC칩카드 발급량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평균인 17.2%에 비해 높은 45%로 카드 발급은 많이 되고 있지만 단말기 인프라는 평균 28%에 비해 크게 떨어지는 3%인데다 그나마도 제대로 쓰이지 않아 ‘헛똑똑이’ IC칩카드만 양산된 셈이다.

 이런 가운데 비자·마스타 등은 입국 외국인들이 IC칩카드를 쓰려 했으나 가맹점의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아 기존 카드(MS)를 사용한 경우 부정사용에 대한 책임을 국내 카드사나 가맹점이 지도록 하는 ‘책임전가제도’를 시행할 예정이어서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을 경우 동남아에서 성행한 위조, 부정카드 범죄자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업계는 또 국내 인프라가 뒤처지는 바람에 사이버넷, 리누딕스와 같은 단말기 제조사 등 관련 업계가 내수를 기반으로 한 해외진출 성장모델을 도입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밖에 금융기관, 기업이나 공공기관이 발행하는 IC칩카드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해 자원 낭비는 물론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 발굴이 제한되는 사회적 손실이 크다고 진단했다.

 금융감독원 측은 “오는 4월부터 신규 공급되는 단말기는 모두 IC칩카드용으로 설치하겠다고 VAN사들이 보고했다”며 “올해부터 △신용카드사 관리감독 강화 △가맹점 책임전가 검토 등 강력한 유인책을 펼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VAN사의 한 관계자는 “경쟁사들이 저가의 기존 단말기로 영업을 하기 때문에 고가의 IC칩카드 단말기를 공급하면 경쟁력이 떨어져 부담스럽다”며 “재고물량 소진, 단말기 인증 절차 등을 감안하면 금감원의 스케쥴을 따르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해 인프라 전환에 차질이 예상된다.

 김용석기자@전자신문, ys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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