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절망 속의 희망
첫 사업은 아모퍼스로 시작했으나 재료가 단지 금속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필자는 미래 유망산업에 대해 고민했고, 세라믹 유전체 재료를 이용한 고주파 부품과 전자기기의 보호용 소자 사업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사실 필자는 아모퍼스 사업을 확장하는 중에도 세라믹 소재 제품들을 개발하고 있었다. 세계적으로 이동통신 기지국이 설치되면서 중계기 시장이 열리던 때라 우리도 이 분야 개발자를 영입하고 벤처캐피털 투자도 유치했다. 그러던 어느날 청천벽력과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고주파 부품을 담당하던 핵심인력 대부분이 회사를 떠난 것이다. 그것도 우리와 비슷한 사업분야에 새롭게 회사를 만들어 그동안 우리가 쌓아왔던 기술과 영업기밀까지 송두리째 가져갔다. 회사는 심각한 타격을 입었고 필자는 믿었던 사람들에 대한 인간적인 배신감에 허탈감과 분노를 누를 수가 없었다.
기술유출이나 영업비밀에 대한 법적인 책임을 물을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필자 또한 사업을 하며 남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고 좌절을 준 일이 없었겠는가. 그리고 생각했다. 욕심이 아니라 감사함으로 사업에 임해야 한다는 것을.
필자는 다시 일어서기 위해 남아있던 분야인 전자부품의 보호용 소자인 칩 배리스터 사업에 전념하기로 했다. 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고객을 찾기가 힘들었다. 휴대폰 산업이 성장하기 이전이라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은 것이다. 여기저기 수소문 끝에 국내 S사의 GSM사업부에서 많은 수량의 칩 배리스터를 사용중이고 대부분을 미국 A사가 독점납품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우리 팀은 바로 샘플을 준비해 회사를 찾아가 설득을 했고, 그 결과 일부 납품이 가능하게 됐다. 최선을 다해 제품을 개발, 납품했지만 시장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우리에겐 대량생산의 경험이 없었고 제품에 대한 실장 경험도 없었기 때문이다. 양산 전에 불량이 발생했고 그 불량을 개선하면 다른 불량이 꼬리를 물었다.
필자는 직원들을 모아놓고 품질과 납기문제 등 당면 현안에 대한 대책회의를 주재했다. 불현듯 직원들의 솔직한 생각을 들어보고 싶어 직원 모두 눈을 감게 하고 질문했다. 우리 배리스터가 세계 1등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면 손을 들어보라고 했다. 사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필자조차도 확신하기 어려웠다. 잠시 침묵이 흘렀고 뒷자리 어디쯤에선가 천천히 손이 하나 올라왔다. 배리스터 개발을 담당하고 있는 어린 연구원이었다. 필자는 그로 인해 배리스터 사업 성공의 희망을 봤다. 우리가 넘어야 할 산은 고객도, 경쟁자도 아닌 바로 우리 자신이었다. 우리는 최선을 다했으며 불량의 빈도도 점차 줄어들었고 물량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갔다
본격적인 시장진입 첫 해에 우리는 칩 배리스터분야에서 놀라운 성장을 이뤄냈다.
이후 아모텍은 세계적인 강자인 미국 A사를 제치고 국내시장을 석권하기 시작해 독일 B사, 일본 C사 등과 경쟁하며 입지를 강화했다. 국내에서의 성장을 발판으로 세계시장으로 진출해 칩 배리스터 분야에서만큼은 명실상부한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게 됐다. 물론 휴대폰 산업의 성장가도, 국내 시장의 활성화 및 아시아가 세계시장의 생산기지로 자리잡는 등 산업 전반의 우호적인 환경도 있었지만, 그보다 우리 직원들의 ‘하면 된다’는 열정과 노력이 성공의 밑거름이었다고 생각한다. ‘오늘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내일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오늘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내일은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시편126:5∼6)’라고 했던가. 나는 이 성경구절처럼 절망 속에서 희망을 낚았다.
pkkim@amote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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