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IT이슈 진단]DRM, 약인가…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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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악파일에 디지털저작권관리(DRM) 기능을 차라리 없애고 온라인음악 시장을 개방하자.”

최근 스티브 잡스 애플 CEO의 이 폭탄 발언으로 전 세계 음악 시장이 시끄럽다. 음악산업에서 차지하는 디지털음악 매출 비중은 날이 갈수록 커지는데 불법복제 음악파일로부터 저작권을 보호해온 DRM 기술을 내버리자고 했으니 놀랄 수밖에. 게다가 다른 업체도 아니고 미국 디지털음악 유통 시장의 85%를 차지하는 ‘아이튠스(iTunes)’의 주인 애플이 앞장서 DRM 포기를 촉구한 것은 더더욱 의외였다.

스티브 잡스는 지난 6일 애플 홈페이지에 올린 ‘음악에 대한 견해(Thoughts on Music)’라는 제목의 기고문에서 “DRM은 불법복제로부터 음악산업을 보호하는 데 실패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며 이른바 ‘빅4’로 불리는 유니버설뮤직·워너뮤직·EMI·소니BMG의 주요 음반업체에 DRM 정책을 폐지하라고 제안했다.

 #소비자 권리와 저작권의 충돌? 기술과 인터넷자유의 충돌?

과연 DRM을 없애는 것이 능사일까. 여기에는 음원 제공업체와 온라인 서비스 업체의 입장이 극명하게 갈린다. 소비자 권리를 대변하고 나선 애플 등 온라인 서비스 업체들은 DRM 폐지로 소비자가 특정 사이트에서만 디지털음악을 구입하고 들어야 하는 제약이 풀리게 되면 시장이 더욱 확대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잡스는 “애플 아이팟에 저장된 음악의 3%만이 아이튠스에서 구입한 음악이며 나머지 97%는 불법복제됐거나 DRM이 없는 파일”이라며 음반업계가 CD에 DRM을 걸지 않고 팔고 있듯이 디지털음악에도 DRM을 없애 상호호환성을 높이면 합법적인 구매가 늘어날 것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야후뮤직도 지난해 여름부터 DRM이 없는 MP3파일을 판매해본 결과, 이들 음원이 DRM MP3파일보다 훨씬 높은 매출을 올렸다면서 DRM 폐지 주장에 동조했다.

 하지만 음반업계는 사정이 다르다. CD나 DVD는 하드웨어 형태로 제작돼 합법적인 저작물과 해적판을 구분하기 쉽지만, 온라인에서 유통되는 무형의 디지털음악은 DRM이 없으면 불법복제물을 가려내기 녹록지 않다. 무단복제가 판을 치는 디지털음악시장에서 DRM은 저작권을 보호하는 최소한의 방어책인 셈이다.

 빅4 음반업체 중 하나인 워너뮤직의 에드가 브론프먼 사장은 지난 14일 열린 ‘3GSM 월드콩그레스2007’에서 “지식재산권에 보호장치가 없어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할 수 없으며 호환성과 DRM은 엄연히 구별되야 한다”고 말해 잡스와 대립각을 세웠다.

 영국 정부도 1400명의 네티즌이 총리실 온라인 청원 사이트에 제출한 ‘디지털저작권관리시스템(DRM) 금지 온라인 탄원서’를 기각하며 DRM이 디지털 콘텐츠 보호를 위해 필요하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시장이 기술을 좌우한다

잡스의 발언이 최근 애플에게 쏟아지는 디지털음악 독과점 비판의 화살을 음반업체로 돌리려는 계산에서 나왔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독일·프랑스·노르웨이 등 유럽지역 소비자단체들은 애플이 페어플레이 기술을 사용해 아이튠스 음악을 아이팟에서만 듣게 하는 불공정 행위를 하고 있다며 DRM 규격 공개를 촉구했기 때문.

그러나 잡스의 진의가 무엇이든 간에 디지털음악은 이미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지난 1월 세계 최대 음악 비즈니스 전시회 ‘미뎀(MIDEM) 2007’에서는 음악시장이 7년 연속 내리막길을 걷는 반면 2006년 디지털음원 시장은 20억달러로 전년 대비 두 배 이상 성장했다는 결과가 발표됐다.

디지털음악은 불황에 접어든 음반업체들의 유일한 탈출구다. 그렇다면 이제는 각자의 DRM을 유지하는 대신 소비자에게 불편을 감수할 만한 인센티브를 제공하든지 DRM이라는 울타리를 없애고 음반업계가 디지털음악 시장의 파이를 키우기 위해 손을 잡든지 그도 저도 아니면 저작권을 효과적으로 보호하면서 소비자의 선택권도 넓힐 수 있는 제3의 대안을 선택할 순서다. DRM이 음반업체들에 무기라면 ‘저작권 보호’와 ‘소비자 권리’라는 두 가지 명분을 품은 양날의 검과 같다. ‘DRM 폐지’라는 화두는 스티브 잡스가 던졌지만 시장이 과연 두 명분 중 무엇을 앞세울 것인가는 물밑에서 이합집산을 거듭하며 주판알을 튕기고 있는 업체들의 셈이 끝난 후 시장논리를 좇아 결정될 것이다.

◆EMI의 반란

 DRM에 대한 찬반 양론이 뜨겁게 달아오르던 것과 때를 맞춰 한편에서는 DRM을 없앤 음악파일을 유통하려는 은밀한 움직임이 포착됐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애플·야후·마이크로소프트(MS)·리얼네트웍스·아마존닷컴 등 거대 온라인 유통업체들과 세계 3위 음반업체인 EMI가 물밑협상을 전개했던 것.

노라 존스의 디지털음반을 DRM없이 판매해 흥행에 성공했던 EMI는 차별화된 DRM 정책을 내세워 소비자를 끌어옴으로써 워너뮤직 등 업계 1, 2위 업체들을 따라잡겠다는 계산이었다. MS 역시 공식적으로는 스티브 잡스의 DRM 폐지 발언을 “무책임하다”며 성토했지만, 애플 아이튠스의 독과점 지위를 무너뜨리기 위해서라면 ‘적과의 동침’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거래는 성사되는 듯 하다가 결국 EMI와 유통업체 간 선불금 협상이 틀어지면서 원점으로 돌아갔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DRM이란

 디지털저작권관리(DRM:Digital Right Management) 기술은 일종의 암호화 코드로 MP3 음악파일 등 디지털 콘텐츠에 암호화된 고유 사용권한을 부여해 불법복제를 차단하는 역할을 한다. 애플이 ‘페어플레이’라는 DRM 기술을 ‘아이튠스’에 적용했으며 마이크로소프트 ‘준(june)’, SK텔레콤 ‘멜론(melon)’을 포함한 국내외 온라인음악 사이트들이 각자 독자 DRM을 채택하고 있다. 소비자가 원하는 음악파일을 구입하기 위해서는 각각의 DRM을 지원하는 전용SW를 일일히 PC에 내려받아야 한다. 또 DRM이 다르면 휴대폰에 저장한 음악을 PC나 MP3플레이어로 옮겨 들을 수도 없다.

조윤아기자@전자신문, foran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