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구나 한번 태어나 죽을 때까지 제각기 삶을 살아가면서 수많은 경험을 하게 된다. 어떤 변화에 직면해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따라 각양각색으로 달라진 삶의 모습을 그려가게 된다. 돌이켜보면 내가 20대 젊은 시절일 때는 변화가 두려운 적이 없었다. 혈기 왕성하게 변화를 즐기고 오히려 틀에 박힌 것을 싫어하며 새로운 것을 쫓아다녔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일을 찾고 새로운 트렌드를 찾는 것에 늘 굶주려 있었다.
불혹의 나이에 막 들어선 지금, 나는 요새 보기 드물다는 세 아이의 아빠이자 한 여자의 남편으로 살아가고 있다. 세 아이가 태어났던 황홀했던 순간들은 부모만이 누릴 수 있는 극치의 희열일 것이다. 막 태어났을 때는 너무나 여리기만 했던 생명이 이제는 하루 종일 뛰어놀아도 지치지 않는 발랄한 개구쟁이로 쑥쑥 커가고 있다. 하루하루가 다를 정도로 빠르게 성장하며 변화해가는 아이들의 삶은 나를 가장 행복하게 해주는 막강한 힘이다.
수많은 직업의 세계 중에서도 컴퓨터와 IT 분야의 일은 한마디로 끊임없는 변화의 연속이었다. 거센 풍랑이 이는 바다 한가운데에서 헤엄치는 것처럼 강렬하고 드라마틱한 정보기술(IT)의 변화는 나를 비롯해 이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느낄 것이다. 그래서 늘 안심할 수 없는 분야기도 하다.
예를 들어 요리나 도예 같은 다른 일의 경우 새롭게 배워야 할 것도 있겠지만 어느 정도 기술과 노하우가 쌓이면 배워놓은 것으로 버틸 수가 있다. 하지만 컴퓨터와 IT는 전혀 그렇지 않다. 도스(DOS)와 무선호출기, 시티폰은 등장할 당시에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만 지금은 이미 구시대의 유물로만 기억되고 있을 뿐이다. 이처럼 다른 산업에서 100년간의 변화가 IT 분야에서는 채 10년도 되지 않아 다 일어난다. 286·386·486으로 이어진 구형 컴퓨터도 이미 멸종된 것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15년쯤 전 486 PC가 처음 시판됐을 때 본체 판매가만 1000만원을 웃돌았던 기억이 얼핏 떠오른다. 지금은 단돈 1만원이라도 받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해마다 PC 운용체계와 CPU도 새롭게 바뀌는데 대중화된 지 10여년도 되지 않은 인터넷의 변화는 정말 광속을 방불케 한다. 인터넷 분야에서 일하던 사람이 반년쯤 일을 쉬면서 업계에서 일어난 변화와 트렌드를 꼼꼼히 챙기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십중팔구는 처음부터 일을 다시 배워야 한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무서운 속도의 변화 탓에 자칫 순간의 판단이 잘못될 경우 회사나 개인이 몰락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거꾸로 한번 잘 내린 판단으로 하루아침에 대박이 나는 경우도 자주 보게 된다. 동영상 사용자제작콘텐츠(UCC) 포털로 서비스 1년 만에 1조5000억원에 구글에 팔린 유튜브가 바로 그런 사례 가운데 하나다. 불과 몇년 전만 해도 동영상 UCC가 인터넷 분야 최대의 화두가 될지 아무도 예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새롬기술의 다이얼패드 인터넷 무료전화 역시 2003년께 세계적으로 엄청난 기세를 올리며 주가가 연일 폭등했지만 불과 몇년 만에 서비스는 중단되고 사람들에게서 잊히고 있다.
`인생은 하나의 실험이다. 실험이 많아질수록 당신은 더 좋은 사람이 된다`는 미국의 시인이자 사상가인 랠프 월도 에머슨의 말에 수긍이 가지만 끝없이 이어지는 변화는 때로는 사람을 지치게도 만든다.
IT 분야에 몸담아 오면서 겪은 숱한 변화가 이제는 조금씩 두려워질 때가 있다. 과연 언제까지 이 변화에 맞춰가야 하는가. 나이 탓에 흰 머리가 조금씩 늘어가는 변화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이야 예쁘고 장하지만 이들이 앞으로 입시와 취업 지옥에서 겪을 변화를 생각하면 벌써부터 마음이 안쓰럽다. 40대 가장인 내가 앞으로 언제까지 가족을 부양할 수 있을지 그 미래와 변화도 걱정스럽다. 그러고 보니, 20대에는 즐겁고 신났던 변화의 물결이 40대인 지금에 와서는 무섭고 두려워진 셈이다. 앞으로 50, 60대가 되면 이런 변화들이 더욱 힘에 부치게 될까.
가장으로서, 부모로서, 남편으로서, 직장인으로서, IT 업계의 일원으로서 살면서 숱한 변화를 겪었고 앞으로도 많은 변화가 앞에 놓여 있다. 변화를 겪을수록 내성은 떨어지는 아이러니한 현상이 인생의 묘미일지도 모른다. 한번 사는 인생, 미지의 길일지언정 즐겁고 신나게 달려가 보자.
◆김종래 파파DVD 대표 jongrae@papadvd.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