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연
우리나라를 IT강국의 주역으로 만들어왔던 휴대폰업체들이 세계 시장에서 위기를 맞았다. 노키아·모토로라·소니에릭슨 등 경쟁자가 대량 생산·저가 공세에 이어 우리 업체가 집중해왔던 기술주도형 프리미엄 시장까지 침범하면서 입지가 흔들리고 있는 것. 삼성전자의 경우, 20%대 중반까지 올랐던 수익률이 한 자릿수로 떨어졌고, 시장점유율조차 유지하기가 버거워졌다. LG전자는 적자의 고배를 마셨다. 팬택과 VK는 각각 기업구조 개선작업과 법정관리 중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의 휴대폰 사업을 관장하던 수장이 최근 바뀐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말은 새 수장들의 마음을 무겁게 하고 있다.
대대적으로 전략을 수정하라는 지적이 안팎에서 터져나온다. ‘값싸고 예쁘면 된다’ ‘1000만화소 폰카, 환상이다’ ‘초저가폰으로 중국과 인도에 가야 한다’ 등 대안과 분석도 제각각이다. 하지만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은 우리 업체는 노키아와 모토로라가 아니라는 것이다. 노키아는 각 국의 중소 협력업체와 연간 3억5000만대를 현지 생산, 공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 반미감정을 가진 유럽과 중동, 아프리카 지역민에게 모토로라의 대타 역할도 해왔다. 모토로라는‘레이저’를 10분의 1 가격으로 전 세계에 뿌릴 수 있는 브랜드와 유통망을 갖췄다.
반면에 우리는 그동안 1000만화소에 이르는 초고화질 카메라폰과 두께를 5.9㎜로 줄인 초박형 제품을 개발했다. 와이브로를 국제표준으로 제안했고 4G 표준화그룹에서 선도적 역할을 맡아왔다. 위피(WIPI)를 기반으로 컬러링·1㎜·T월드 같은 최첨단 무선인터넷 서비스도 만들어냈다. 세계 최소형의 LCD와 반도체,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무선인터넷 콘텐츠와 솔루션 등 유관 기술 개발까지 이뤄져 후방 산업도 튼튼해졌다. 우리 휴대폰 업체가 각 국이 개발한 저가 제품을 사들여 단순히 유통만하게 된다면 이 열매는 다른 나라 기업과 국민이 갖게 될 것이다.
최근 방한한 HP 본사 임원은 “한국시장에서의 PDA폰을 개발하고 서비스했던 경험은 (HP가) 3G시장에서 애플의 ‘아이폰’에 대항할 수 있는 비전과 무기를 갖게 했다”고 말했다. 테스트베드로서의 한국의 역할을 강조한 것이다.
‘프리미엄 IT 코리아’의 위상을 유지해 기술을 주도하면서도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는 묘안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정지연기자·퍼스널팀@전자신문, jyj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