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나를 가다]1부-달리는 코끼리, 인도②제조업이 영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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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7일. 인도 서쪽 끝 뭄바이(봄베이)에서 남동쪽으로 120km에 위치한 푸네로 향했다. 인도 서부중부 마하라슈트라주에 속한 푸네는 포스코의 공장과 포드·폭스바겐·크라이슬러 자동차, LG전자 공장이 소재한 손꼽히는 공업도시 중 하나다. 또 1년 내내 안정된 고원성 기후와 아름다운 경치 때문에 ‘데칸의 여왕’으로 불린다고 한다. 세시간 남짓 달려 이곳으로 간 이유는 때마침 이곳에서 열린다는 제조설비전시회 ‘메가테크 2007’에 출품한 인도기업들의 제품을 통해 인도 제조업의 현주소를 보기 위해서였다.

 시골학교 운동장만한 공터에 가건물을 세워놓고 진행된 전시회에 참가한 기업은 대략 300여 곳. 인도에서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은 전시회이기는 했지만 제조업의 수준을 가늠해 보기에는 충분했다. 공작기계와 자동화기기 등을 다루는 이 전시회에 참가한 인도 기업은 대부분 외국산 기계설비의 단순 수입판매를 하고 있었다. 가장 큰 부스를 차려놓은 ‘간디 오토메이션’의 산제이 바이드야 매니저는 “이탈리아에서 자동화물 운반 장비를 수입해 판매하고 있다”며 “시장의 성장속도는 빠르지만 인도 기업들은 아직 기술이 부족해 직접 개발하는 데까지는 발전하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이곳에서 현지에 진출한 한국기업들을 통해 사정을 알아봤다. 한국업체로는 유일하게 전시회에 참가한 자동화기기 부품업체 오토닉스는 현지 중소제조기업에 대해 ‘아직 수공업 수준’이라고 전했다. 6개월째 인도시장 개척을 위해 고군분투중이라는 임성진 차장은 “인도는 소비재 시장에 비해 자본재 시장의 성장이 느리다. 인건비가 싸기 때문에 생산설비 자동화율이 그만큼 낮은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인도 현지의 자동화 부품제조 업체가 뭄바이 인근에만 수천 개나 있지만 대부분 손으로 물건을 만드는 수준”이라고 중소 제조기업의 수준을 설명했다.

 인도에서 제조업 경쟁력의 발목을 잡는 요인은 바로 열악한 인프라다. 인도 곳곳에 동서남북을 십자로 잇는 고속도로가 건설됐지만 도시 진입로의 병목이 끔찍한 수준이다. 푸네에 들어서는 길 역시 곳곳이 공사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전력사정도 안좋다. 최근 집권여당이 지방 소외계층에 전기를 더 나눠주는 바람에 공단에 나눠줄 전력사정이 더 안좋아졌다고 한다. 자체 발전시설을 갖추고 전원을 복수로 확보한다고 하지만 생산 수율에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푸네 현지에 진출해 휴대폰 충전기, CD라이터 등을 생산, 인도 진출 한국기업에 납품하는 디지콘 오상식 사장을 만났다. 푸네 한인교류회 총무로 푸네 현지 제조업 환경에 밝은 오 사장은 “전력사정이 안 좋아 여름에는 하루에 3∼4차례씩 공장이 선다. 당연히 수율이나 제품 질이 중국에 비해 떨어지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인도 정부는 도로와 전력 등 제조업 인프라를 구축하겠다는 의지가 강하지만 세수확보가 어려워 속도는 늦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낮은 품질도 인도 제조업의 고질적인 한계다. 인도기업과 거래하는 한국기업들은 부품 불량에 골치를 썩는다고 말한다. 주요 부품을 수입해야 해 가격경쟁력도 덩달아 떨어지는 게 현실이다. 중국기업이 중국현지에서 생산해 인도로 수입하는 제품과 비교해 가격경쟁력이 떨어진다고 한다. 세법이나 규제도 아직은 복잡하다. 보통의 경우 관세는 37%에 달한다. 현지 협력업체를 대상으로 납품처를 뚫기도 어렵고 판매대금도 10% 정도는 떼이기 일쑤라고 한다. 노동법도 강해 해고가 어렵기 때문에 많은 현지 진출 기업은 직접 고용이 아닌 인력 대행업체와 계약해 노동자를 구해야 한다.

 그럼에도 인도 진출기업들은 수요가 약속된 새로운 기회의 땅이라고 입을 모은다. 매년 늘어나는 내수규모와 제조업 투자가 이를 증명해주고 있다. IT분야에만 돈이 몰리던 것은 옛 얘기다. 글로벌 기업과 협력이 늘어나며 제조업체의 품질 수준도 올라가고 있다.

 델리 인근 노이다 공단에서 몰딩회사 ‘K스리’를 운영하는 이크발 싱 사장의 말에서도 이러한 상황은 감지된다. 그는 인근 필립스 등에 몰딩 제품을 납품 중인 업체다.

 “다국적 기업이 요구하는 제품의 질을 만족시키기 위해 직원 훈련 등에 애를 쓰고 있다. 최근 글로벌 스탠더드를 맞추는 성과를 내면서 조금씩 납품처를 늘리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푸네 소재 사출업체 스타리온의 박정수 부장도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그래도 (한국과 달리) 이곳에는 수요가 있습니다. 로컬 기업의 수준이 낮기 때문에 틈새 시장이 있죠. 수요는 계속 늘어날 겁니다. 인도 기업들도 최근 투자를 많이들 하고 있어요. 지금 투자하지 않으면 후회할 겁니다.”

 델리에서 만난 신문범 LG전자 인도법인장의 말이 떠올랐다.

 “인도 시장을 중국의 10년 전과 비슷하다고 보고 있는데 시장 규모는 4분의1 정도 규모입니다. 인도가 중국과 같은 속도와 수준으로 성장한다고 했을 때 10년 뒤 시장은 10배로 성장할 겁니다. 그 수요는 어마어마한 것이죠. 이미 하나 둘씩 성공 사례가 생겨나는만큼 지금 터를 닦아 놓지 않으면 안됩니다.”

 

◆늘어나는 제조업 투자

 전세계가 IT산업에 주목하는 사이 인도는 다음 단계를 위해 부단히 움직이고 있다. 제조업이다. 1차산업에서 곧장 3차산업으로 이어진 독특한 성장을 경험한 인도에 제조업이 뿌리내릴 수 있을까. 아직까지는 수출주도형 공업화로 성장을 견인한 동아시아 국가에 비해 제조업의 역할이 취약한 것이 현실이다. 중국과 비교하면 차이는 극명하다. 인도 제조업 생산액의 GDP 비중은 16%에 그치는 반면 중국은 36%에 달한다.

 인도는 제조업 성장률 목표를 9% 이상으로 잡고 기계장비제조업, 화학산업, 자동차산업 등을 중심으로 제조업 성장전략에 시동을 걸고 있다.

 릴라이언스 인더스트리의 슈리 차이니 회장은 “우리는 세계의 백 오피스(Back Office)에 머물 수 없다. GDP성장률 8∼10%를 목표로 한다면 제조업이 두 자리 수로 성장해야만 한다”고 인도 경제의 과제를 역설한 바 있다.

 그 결과 최근 들어 제조업 투자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성장하는 소비시장, 국내 생산·수출기업을 우대하는 관세정책 등이 직접적 원인이 됐다. 인도 리서치 업체인 프로젝트투데이에 따르면 푸네·라이가르 등 마하라슈트라주의 한 해 제조업 총투자액은 2660억 루피(6조1100억원)로 운송기계·자동차·화학·섬유의 순으로 대규모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 운송기계 분야에는 750억 루피(1조720억원), 자동차 분야에는 567억 루피(1조3000억원)가 투자돼 지난해에 비해 각각 290%, 200% 늘어난 빠른 성장을 보였다. 전자제품 분야에서도 비디오콘, 산수이와 같은 로컬 브랜드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글로벌 사모펀드의 투자를 분석한 TSJ미디어 자료에 따르면 전체 투자액중 제조업 투자 비중도 상당수준으로 늘었다. IT에만 돈이 몰리던 때와는 다른 국면이다. 지난해 이뤄진 펀드의 산업별 투자건수는 IT 분야가 32%로 여전히 많았지만 제조업도 14%로 2위를 차지했다. 의료·생명과학, 금융·보험, 식료품, 부동산보다 많은 투자를 받은 것이다. 특히 투자액으로 봤을 때는 IT분야의 16%에 거의 근접하는 15%를 차지해 각각 14%, 11%를 차지한 의료·생명과학, 금융·보험에 앞선 2위에 올랐다.

 

◆인터뷰-메가테크 전시회 총괄 사미르 케드카르 포커스트 이벤트 이사

 메가테크 2007 전시회를 총괄한 ‘포커스트 이벤트’의 사미르 케드카르 이사(37)는 “인도 제조업의 강점은 세계에서 가장 낮은 임금과 우수한 인력”이라며 “중국과 같은 세계 제조업의 중심지가 될 수 있다”고 자신했다.

 지난 50년간 시멘트·설탕·종이 등의 산업이 꾸준히 발전해 왔고 엔지니어링 기술을 기반으로 새로운 발전을 닦아나갈 것이라는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인도에서도 마하라슈트라주의 활발한 제조업 투자유치와 자동화 분야의 성장을 지켜보면 인도의 발전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인도는 빠르게 달라지고 있습니다.”

 중국, 일본, 한국과의 경쟁력 격차는 인정했다. “극복하려면 10년은 족히 걸릴 것”이라고 했다.

 “전력, 도로와 같은 인프라가 부족한 것은 사실입니다. 지난해까지도 푸네 공단에 하루 3시간 이상씩 전기가 나가는 게 현실이죠. 하지만 10년이 지나면 중국와 경쟁할 수 있는 제조업을 육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미르 디렉터는 따라서 지금이 투자의 적기라고 강조했다. 그는 그 근거로 전엔 관심을 보이지 않던 외국의 투자자본이 제조업에도 손을 뻗치는 것을 예로 들었다.

 “인도가 깨어나는 지금이 바로 투자의 적기입니다. 중국에 가던 투자가 방향을 돌려 이곳으로 오고 있죠. 길·빌딩·전력 모든 것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지금 씨를 뿌려야 2∼3년내 결실을 맺을 수 있습니다. 2∼3년 뒤 발을 들이면 늦습니다.”

푸네(인도)= 김용석기자@전자신문, ys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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