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칼럼]남북 학술협력 체계화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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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 등 학술 분야의 남북교류가 겨울 날씨만큼 꽁꽁 얼어 있다. 최근의 전체적 흐름을 보면 아직 많은 세월을 거쳐야 새봄이 올 듯하다. 북한의 핵실험과 그 이후의 대치 상황은 남북통일의 전초병으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 정보기술(IT)을 비롯한 과학기술 분야에서도 그 흐름이 막혀 있다.

 남북 과학기술 교류를 추진해 오면서도 남북의 연구자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공동으로 실험 데이터를 내놓는 정도의 진정한 교류는 지금까지 거의 없었다. 일부 IT 분야에서 공동 또는 위탁 방식에 따른 개발 결과물이 나온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기술지도나 지원 성격이 강한 협력이었다. 북한의 식량 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기 위해 씨감자나 옥수수, 농약 관련 기술 협력 등을 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남북 공동 연구나 개발은 아니지만 남북 교류의 대표적인 것이 학술 행사 개최다. 남북 과학자가 만나 학술 발표와 토론을 하는 학술토론회는 다양한 방식으로 추진돼 왔다. 지난해 4월 초 북한 평양에서, 또 금강산에서 한 적도 있지만 대부분 중국 등 제3국에서 남북 당사자 외에 다른 나라의 과학기술자가 함께 참여하는 국제행사로 개최해 왔다. 행사 주관을 재중동포나 조총련계 재일교포가 하고 북한 과학기술자를 초청하는 방식을 택해 북한이 상대적으로 나오기 쉬운 여건을 만든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추진한 학술 행사는 남북 교류에서 접촉점으로 상당한 역할을 수행해 왔다. 하지만 학술 행사 방식의 교류는 그 특성상 어느 정도 한계가 있다.

 학술 행사를 통한 교류에 대한 북한의 기본적인 시각은 남북 간의 직접 교류를 하지 않으면서 교류를 통한 학술 목적 외의 이득을 챙기고자 한다는 점이다. 학술 행사는 학술적 의미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 그러나 북한은 이 행사로 인한 북한 과학자의 남한 인사 접촉을 일단 위험 요인으로 보고 있어 북한 상부의 허가를 받기가 쉽지 않아 국제회의 명목으로 추진되고 결국 행사를 지속적으로 개최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학술 행사를 하는 남한의 목적은 통일 이후를 대비한 정보·기술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지식 정보의 제공과 함께 북한이 개혁·개방의 길로 가도록 하는 데 기여하고자 하는 것이다. 하지만 북한은 이런 학술 행사를 통해 철저한 통제 사회인 북한에서 가졌던 외부 과학기술 정보의 갈증을 해소하고자 하면서도 철저하게 제한적 수용을 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또 북한은 경제적 대가를 원한다. 북한이 기관별 독립채산 방식으로 몰아가는 상황에서 자체 예산 조달의 불가피한 현실이 더욱 그렇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학술 행사 자체로는 지급해야 할 대가가 없다. 후진국의 과학기술자에게 항공료와 체재비 등을 지원해 학술행사에 초청하는 그 이상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지원할 수 있는 법·제도적 장치도 구비돼 있지 않다.

 따라서 남북의 과학기술 분야 학술 교류를 활성화하려면 이를 지원하는 공공 성격의 전문기관의 선정과 육성 그리고 이를 통한 협력 지원이 요구된다. 북한과의 접촉점에 대한 정보 제공, 북한이 어느 정도의 여건을 갖춰 남북이 함께 교류할 수 있는 교류 테마의 선정 지원과 북한과의 합의 도출 중개, 행사의 규범이나 경험을 통한 컨설팅, 나아가 남북협력 관련 재정의 관리까지 담당하는 제도적 기반을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금껏 자연과학 및 기술 분야에서는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과총)가 남북의 학술교류 행사를 개최해 왔고, 인문사회과학 분야에서는 한국학술진흥재단이 남북 학술협력자금의 지원 등 여러 역할을 해 왔다. 이들 기관이 구심이 될 수 있도록 하는 체계적 지원이 필요하다. 남북 협력이 답보 상태에 있는 지금 시점이 우리 내부의 정보 공유가 더욱 중요하며 오히려 차근히 준비해야 할 때다. 이렇게 준비할 때 남북 학술 교류를 하나의 이벤트가 아닌 남북한 모두에 유익한 교류를 만들 수 있게 될 것이다.

◆최현규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동향정보분석팀장 hkchoi@kist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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