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단의 순간들]곽수일 서울대 명예교수(3)

Photo Image
이현재 교수와의 인연은 각별하다. 이 교수님은 지난해 8월 내 정년 기념행사에서도 인사말씀을 해 주셨다

(3)이현재 교수와의 인연

 내 생에서 두 번째 계기는 1961년 이화여대 영어영문학과 학생이던 지금의 아내를 만난 것이다.  당시 나는 상과대학 3학년에 재학중으로 친구 하나가 친한 여자 친구 집에 놀러 가자고 해서 같이 간 적이 있다. 그 여자 친구가 보여준 앨범을 뒤적이다가 해변가에서 찍은 사진을 보게 됐다. ‘이 여자가 제일 예쁘다’고 했더니 즉석에서 소개해 주겠다고 언질을 받았다.

 우리는 며칠 후 종로 5가에 있는 빵집에서 만났고, 유학시절에는 편지로 연락을 하며 사귀었다. 오늘까지 집사람으로 같이 지내니, 그 기간도 45년이 넘나 보다.

 내 아내는 내가 교수로 발전하는 데 여러 모로 기여했다. 상과대학이라는 자유분방한 대학에서 생활하면서 유행도 분석하고 미래 추세도 예측하다 보니, 아무래도 자유주의적인 색채를 띠고 있다. 그러나 교수라는 직업 특성상, 가끔은 보수적 색깔을 띨 필요가 있다. 이 때마다 나의 자유 기질이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바로 아내다.

 단적인 예로 아내 반대 때문에 해 보지 못한 것들이 여럿 있다. 한 번은 미스코리아 심사위원으로 위촉됐는데, 아내 반대로 위원직을 하지 못했다. IBM에서 신문 광고모델로 컴퓨터를 들고 있는 사진 한 장만 찍자던 제안도 좌절됐다. 세번째는 예술의 전당에서 명사를 초청해 오케스트라를 연주하게 하는 프로그램에 초대된 적도 있고, SBS에서 명사 요리시간에 출연을 요청한 적도 있지만 번번이 거절해야 했다. 돌이켜보면 보수적인 아내 덕에 기업체 사장이나 진흙탕 속인 정치에 뛰어들지 않고 상아탑에서 고고하게 지낸 것 같아 고마울 따름이다.

 이같은 아내 성향은 장인어른의 영향을 많이 받은 때문인 듯 하다. 장인어른은 서울대 철학과 교수로서, 철학자로서 한 평생을 고고하게 사신 분이다. 약혼을 앞두고 처가집에 가면, 엄연히 서울대에서 같은 동료인 나에게 “자네는 경영학을 공부한다는데, 도대체 무엇을 공부하나”라고 묻곤 하셨다. 아마 철학의 관점에서 경영학이라는 학문이 본인의 기준에 합당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부아가 오르는데도 참은 이유는 내 뒤에 늘 앉아 계시던 장모님 덕분이다. 장인이 사윗감의 약을 올리고 있으니, 장모님이 뒤에서 장인어른의 발언을 원천봉쇄하기 위해 노력하셨던 것이다.

 이렇게 완고한 장인어른을 설득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분이 이현재 교수이시다. 이 교수님은 우리 결혼을 성사시키기 위해 양가를 찾아다니시고, 약혼식에는 중매자로 사회까지 맡아 주셨다. 이 교수님은 훗날 우리 아이들 혼사 주례까지 해 주셨으니, 이 교수님과의 인연은 내 삶에서 빼놓을 수 없다.

 이 교수님은 나에게 스승이자, 부모님같은 분이다. 누구를 만나든, 어디를 가든 큰 소리로 얘기하는 타입이지만, 이 교수님만 앞에 계시면 학생같이 행동하게 된다.

skwak@snu.ac.kr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