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수원사업장 소재 디지털연구소 33층 프린트 기구개발실. 어림잡아 수백종은 됨직한 프린터 부품들이 책상 위에 가지런히 정돈돼 있다. 서너명의 연구원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다. 희망은 산고 끝에 탄생한다고 했던가. 바로 이곳이 올해 세계 프린트 시장에서 삼성전자가 또 한번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한 산실이다.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삼성전자의 프린터 사업은 미래 수종 사업 가운데 하나로 여겨질 만큼 대표적인 효자품목이다. 아직은 반도체나 정보통신에 비해 규모가 작지만 매출과 이익률 모두 괄목할만한 실적을 내며 세계 시장에서 급상승하고 있다.
올해 전세계 시장에서 가장 주목을 받았던 제품은 지난 8월 출시한 초소형 컬러레이저 프린터(모델명 CLP-300).
“우리는 컬러 레이저 프린터 대중화에 가장 큰 걸림돌이 바로 ‘크기’라고 봤습니다. 덩치가 크고 가격 또한 비싸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갖기에는 부담스러웠던 거죠. 바로 이 점에 착안해 책상 위에 놓을 수 있는 정도의 작은 컬러 레이저 프린터를 개발하면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당시 개발 프로젝트를 사실상 이끌었던 조해석 수석연구원의 설명이다. 이 발상은 시장에서 그대로 주효했다. 우리나라에 선보인지 한달만에 4000대나 팔려나가며 호응을 끌었던 CLP-300은 지난 3분기 국내 레이저 프린터 시장에서 삼성전자를 확고부동한 1위에 올려 놓았다. 또 지난 10월에는 ‘2006 PC 월드 라틴아메리카 어워드’에서 홈 프린터 부문 최우수 제품에 선정되기도 했다. 컬러 레이저 프린터가 최우수 가정용 프린터로 뽑히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그러나 CLP-300의 핵심 경쟁력인 ‘작은 크기’를 구현하는 일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완제품의 크기를 작게 하자고 부품 조차 줄일 수 있겠습니까? 전혀 새로운 차원의 기술이 필요한거죠. 예를 들면 프린트 현상에 필요한 기존 롤러 부품의 원주가 20파이였는데 이를 12파이로 줄이게 되면 회전수가 20∼30만 회전에서 60∼70만 회전으로 늘어나게 됩니다. 훨씬 더 높은 내구성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심우정 수석연구원은 “부품의 정밀도 등 많은 변수를 고려해서 크기를 반으로 줄여야 하기 때문에 두배가 아닌 네배, 여덟배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당시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CLP-300을 개발했던 핵심 연구원들은 한때 ‘가정적’이 아닌, ‘가정의 적(?)’으로 몰릴 뻔 했다는 후일담도 털어놓는다.
작년 12월부터 지난 6월까지 집에 들어간 날이 2∼3일 정도밖에 되지 않았던 이들이 상당수다. 디지털프린팅사업부 김용근 상무는 “아마 그때 당시에는 대부분의 직원들이 주당 100시간 이상은 사무실에서 일을 했던 것 같다”면서 “심지어 팀 전원이 2개조로 편성돼 24시간 쉬지 않고 개발에 몰두하던 때”라고 회상했다.
책임자 격인 임원부터 수석연구원까지 솔선수범해서 일에 매달리니 직원들 또한 따라가지 않을 수 없었다는 기억이다.
“제품 출시를 앞둔 지난 4월 12파이짜리 롤러를 개발하는데 워낙 작았던 탓인지 아무리 해도 화상이 만족스럽게 나오지 않아 곤경에 빠진 적이 있습니다. 언뜻 떠오른 생각에 롤러 재질을 바꿔보니 의외로 문제가 쉽게 해결되군요.”
이들은 웃으며 당시의 기억을 떠올린다.
서한기자@전자신문, hs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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