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찰청 외사과는 12일 자신이 다니던 업체가 개발한 프로그램을 빼낸 뒤 이를 이용해 다른 회사를 차려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등)로 이모(49)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이에 앞서 지난 7월에도 국내 시스템반도체기업의 전직 임원과 대학교수 등이 공모해 첨단 시스템반도체 제조기술을 중국으로 유출하려다 검찰과 국가정보원에 의해 적발된 바 있다. 시스템반도체분야는 사실상 기술이 회사 경쟁력의 전부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중소기업 수준인 국내 시스템반도체업계가 대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보안관리시스템이 허술한 때문으로 분석된다.
경찰에 따르면 이씨는 H전자 연구소장으로 재직하던 작년 11월부터 올해 2월까지 이 회사의 보일러용 마이콤 제어프로그램 소스코드 517개(연구비 24억원 투입)를 34차례에 걸쳐 외장형 하드디스크에 복사해 빼낸 혐의를 받고 있다. 이씨는 올해 3월 H전자를 퇴사하고 같은 업종인 S엔지니어링을 차린 뒤 빼돌린 프로그램을 정품보다 10∼20% 싼 가격에 H전자의 기존 거래처에 팔아 1억5000여만원의 매출을 올린 것으로 조사됐다.
이번 기술유출의 피해업체인 H전자 CEO는 “우리회사는 삼성전자 반도체만을 활용해 마이컴을 제작해 왔는데, 우리 기술을 도용해 차린 S엔지니어링은 국내외 다른 회사에 프로그램을 제공하며 마이컴을 제작한 것으로 안다”며 “장기적으로는 어렵게 개발된 프로그램이 해외로 유출될 수 있는 개연성도 있었다”고 말했다.
시스템반도체업계 한 관계자는 “기술을 도용해 해외로 빼 돌리는 것도 아니고, 사업체를 차려 같은 거래처에 제품을 납품했다는 것은 기술유출행위에 대한 문제의식이 전혀 없음을 방증한다”며 “시스템반도체산업계는 기술력으로 먹고 사는 곳인만큼 산업보안에 대한 인식을 한층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이콤은 공기청정기, 정수기, 냉난방기기 등 각종 전자제품을 작동시키는 정보처리장치 역할을 하는 시스템반도체(비메모리)로, H전자는 소스코드 한 개를 개발하는 데 1년 이상의 기간과 7000만∼8000만원을 투자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심규호기자@전자신문, khs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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