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기관에 의한 가택수색이라 할지라도 법원의 수색영장이 없으면 불법이다.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침해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인 프라이버시의 희생이 더 많은 사회 구성원의 안녕에 도움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법원이 판단하면 수색영장을 내줘 가택수사를 합법화한다.
마찬가지로 개인 프라이버시의 존중을 위해서, 법원의 허락이 없는 한, 수사기관이라 하더라도 타인의 통화를 엿듣는 것은 불법이다. 그러나 간첩·테러범·유괴범 등의 통화일 가능성이 크다면 그들의 통화를 엿듣는 것은 국가·사회의 안녕을 위해서 꼭 필요한 일이므로 법원이 영장을 내줘 그 행위를 합법화한다. 이러한 경우에 한정해 엿듣는 행위를 감청이라 한다. 그 외의 모든 엿듣는 행위는 그 행위자가 수사기관이라 하더라도 도청이고 불법이다.
오래전부터 유선전화는 통신사에 감청 시설이 돼있고 공공의 안녕을 위해 합법적인 감청이 행해지고 있다. 한편 휴대전화는 감청 시설이 돼있지 않아서 국가정보원조차도 도청을 해오다가 이제야 감청을 하기 위해 법제화를 시도하고 있어 때 늦은 감이 없지 않다.
감청이 합법적이라고는 하지만 수색영장을 가지고 가택수사를 하는 것과는 다른 점이 있다. 가택수사의 경우는 당하는 사람이 그 사실을 알고 또 수색영장을 확인할 수도 있지만 감청을 당하는 사람은 감청 사실을 알 수도 없고, 더구나 감청과 도청은 구별되지 않는다. 그래서 권력기관이 통신사와 짜고 부정한 방법으로 감청을 빙자한 도청을 한다면 현재로는 그 권력기관과 통신사를 수사하는 것 외에는 그 사실을 알 방법이 없다. 또 권력에 휘둘린 법관이 내준 영장을 가지고 수사기관이 합법적이라며 감청을 한다고 했을 때 그것을 막을 방법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도청이건 감청이건 불가능하게 하는 ‘암호화’라는 방법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함부로 암호화를 하면 도청도 불가능하게 되지만 감청 역시 불가능하게 돼 개인의 프라이버시는 보장이 되더라도 공공의 안녕은 보장하지 못하게 돼 역시 문제가 있다. 따라서 공공의 통신망을 이용하는 경우 암호화된 장비 허가가 쉽지 않다.
암호사용을 활성화하는 한 가지 해결방법은 모든 암호화 장비의 마스터키를 정부에 주고 수사기관이 요청할 때 법원의 허가를 받아 그 암호화된 통화를 풀어볼 수도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다른 개인의 도청은 막을 수 있지만 권력기관의 감청을 가장한 도청은 막지 못한다. 이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은 ‘키 복구’라고, 법원 및 배심원의 역할을 할 단체인 ‘키 복구 기관’들이 수사기관의 요청에 동의할 때 풀어볼 수 있도록, 통화를 시작할 때마다 사용자끼리 암호화에 사용하는 키를 특정 방법으로 다시 암호화해 보내도록 하는 것이다.
기술적으로는 키 복구시스템은 이미 구현돼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러나 법원과 권력기관의 결탁을 막을 배심원의 역할을 할 키 복구 기관으로는 어떤 단체를 몇 개나 택해야 할지, 또 단체별로 얼마만큼의 지분을 줄지 그리고 전체 지분의 몇 퍼센트가 모여야 키 복구가 가능하게 할지 등의 문제는 ‘사회적인 합의’로 풀어야만 한다. 또 키 복구를 따르지 않고 개별적으로 암호화를 할 때에는 어떠한 법적 제재를 가할 것인지 역시 논의돼야 할 사항이다.
유무선 전화만이 문제가 아니다. 인터넷전화(VoIP)는 이메일과 마찬가지로 도청이 유무선 전화보다 더 쉽고, 따라서 개인의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해 암호화 요구는 더욱 강해질 것이다. 그러나 그냥 대책 없이 암호화를 허용한다면 공공의 안녕을 위한 감청도 불가능해질 것이므로 키 복구를 해야 할 것이다.
하루라도 빨리 키 복구 제도를 공론화해 사회적인 합의를 이루어 개인의 프라이버시와 공공의 안녕의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이필중 포스텍 전자전기공학과 교수 pjl@postech.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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