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단의 순간들]김양신 제이씨엔터테인먼트 사장(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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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에도 직접 참여하게 된 필자가 지난 2000년 워크숍에서 직원들에게 강의를 하고 있다.

(3)게임회사 CEO로 거듭나기

 지난 98년, 그러니까 온라인게임 개발로 업종을 전환한 후 꼭 1년이 지난 때였다. PC통신 회사와의 계약도 완료하고 게임이 서비스돼야 할 날짜가 다가왔다. 그런데도 곧 완성된다고 몇 번이고 시연을 미뤄오던 게임은 완성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더 이상 서비스 시작을 미룰 수 없었고, 미룬다면 PC통신회사와의 계약을 깨야 할 처지였다.

 그때까지 필자의 역할은 개발이 가능하도록 하는 주변 관리와 지원 역할에 머무르고 있었다. 자금과 인력, 시장연구 그리고 마케팅 고민에 이르기까지 필자가 알고 있는 CEO의 역할은 충분히 하고 있다고 안심하고 있었다. 가능하면 개발자들이 스스로 자신하는 게임을 만들 수 있도록 하자는 생각이었고, 나이 마흔이 될 때까지 게임이라고 즐겨 본 것은 잠시 일본에서 일할 때 유행하던 ‘갤러그’가 전부였다. 그러니 간섭하려고 해도 알지 못하는 부분이 많았고, 그러지 않아야겠다는 판단이 우선했다. 단순히 시장의 흐름만을 감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더이상 기다릴 수 없는 상황이라고 판단을 갖게 됐다. 직원들이 밤새워 일하기 시작한 지 벌써 2∼3개월이 지나고 있었고, 모두들 정신적 육체적으로 지쳐있었다. 직원들을 모두 불러 의논했다. “여러분이 할 수 없다고 하면 지금이라도 회사를 문닫을 수 있다. 그 다음은 나 혼자 처리하면 된다. 그러니 정말 우리가 해낼 수 있는 일을 하는지 아닌지 스스로 판단해보자”는 내용이었다. 그 논의가 필자에게는 꺼내기조차 두려운 것이었지만 우리 모두가 막다른 상황에 놓여있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사장님, 1개월만 더 기다려주십시오. 우리도 여기서 포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직원들로부터 돌아온 답이었다. 그러나 이 답을 듣는다고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1개월 또 1개월이 이미 여러번 반복된 후였기 때문이다.

 마지막 카드를 던졌다. “게임은 모르지만 IT 개발 프로젝트를 해본 경험이 있고, CD-ROM 타이틀을 만들 때도 프로젝트 진행에 참여해 보았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내가 직접 개발 프로세스에 참여해 같이 프로젝트를 진행해보자”는 결정이었다. 물론 이에 따른 모든 책임은 대표인 필자가 지는 조건이었다.

 이것이 필자가 게임개발에 직접 참여하는 개발 전문 CEO가 된 배경이다. 프로세스 하나하나를 전체 흐름에서 물어보고 또 물어보고 미심쩍은 연결고리 부분은 직접 체크하고, 손이 모자라면 직접 기획서도 만들고 밸런스 시트도 만들고, 할수 있는 부분엔 무엇이든 참여했다. 직원들도 필자를 가르치느라 힘들었던 시기였을 것이다. 이로부터 꼭 1년만에 처녀작 ‘워바이블’이 서비스되기 시작했다. 이 게임으로 월 매출 1000만원이 통장으로 들어오던 날, 우리는 온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었다.

 아침에 눈만 뜨면 PC 앞에 붙어서 전날 서비스 상황이 어땠는지, 이용자들은 게시판에 무엇을 올리는지, 서비스는 이상이 없었는지 등 챙길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24시간 게임 서비스와 관련된 온갖 일들을 직접 챙겨야 했다. 고단한 필자를 보다 못한 남편이 월 1억원 매출이 되면 자신이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제이씨엔터테인먼트에 입사해서 도와주겠다는 장난같은 내기를 걸기도 했다. 결국 그 내기는 현실이 됐다.

 지금도 후배 기업인이 “작은 기업의 사장은 어떤 능력을 가져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필자에게 해오면, 한결같이 필자는 “어떤 기업이라도 사장은 결국 그 기업의 핵심적인 업무을 스스로 파악하고 조율할 수 있는 능력이 없으면 안 된다”고 답한다. 직원들이 채우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 어떤 방식을 동원해서라도 기꺼이 채울 수 있어야만 마지막 승부를 걸 수 있는 것이다.

 yskim@joycit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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