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노기술이라는 단어가 일상생활에 쓰인 지 벌써 몇 년이 지나 일반적인 말이 됐으나 아직 이를 활용한 제품은 많지 않다.
그렇다면 나노기술은 거품인가. 그렇지 않다. 그것은 첨단 기술과 산업을 이해하지 못한 결과다. 나노기술을 적용해 제품이 생산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기존 산업에 응용해 그동안 해결하지 못한 기술적 한계를 극복하고 부가가치를 높인다.
연구 분야에서도 나노기술은 광범위한 영역의 밑거름이 되고 있다.
기업체·연구소·대학 등에서 나노기술을 연구하려면 많게는 수천억원의 시설 투자가 필요하다. 클린룸과 첨단 장비, 이를 운영할 전문인력이 필요한데 모든 산·학·연이 이를 갖추기는 곤란하기 때문에 한곳에 모아 공동 활용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우리나라는 현재 5개의 나노 인프라를 구축중이며 각각 그 나름의 목적에 따라 지역적으로도 잘 안배돼 있다. 전문 분야도 △실리콘반도체일괄공정(종합팹센터) △화합물반도체일괄공정(특화팹센터) △나노소재재료(포항나노기술집적센터) △나노박막장비(광주나노기술집적센터) △나노패터닝장비(전주나노기술집적센터)로 구분돼 있다.
일부에서는 나노기술인프라가 너무 많고 중복투자된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나노기술의 중요성과 파급 효과를 생각하면 현재의 5개 인프라는 오히려 부족하다. 작년 나노기술 분야 예산은 2800억원이었는데 그 가운데 928억원이 인프라 구축에 쓰였다. 실상은 2010년까지 5개 센터를 동시에 구축하기 때문에 많아 보이는 것일 뿐이다.
하지만 나노 인프라는 많은 숙제를 갖고 있다. 설립 취지가 고가 장비를 공동 활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개방성과 공공성을 확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구체적으로 보면 외부 이용자가 언제든지 이용할 수 있어야 하고 장비는 산·학·연의 많은 이용자가 요구하는 것으로 구비해야 한다. 기업체에는 저렴한 이용료로 서비스할 뿐 아니라 단순한 장비 임대가 아닌 연구개발(R&D) 지원에서 애로기술 컨설팅까지 해 줄 수 있어야 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에 골고루 혜택이 돌아가야 하고 연구소와 대학의 요구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면서도 중복되지 않는 분야에 특화해 R&D를 선도해야 한다. 무엇보다 정부 지원 없이 재정적으로 자립해야 한다. 이렇듯 나노 인프라는 7가지 이상의 다양한 조건을 동시에 만족하는 해답을 찾아야 하는데 쉬운 일이 아니다.
상기의 여러 숙제 중 몇 가지는 서로 상충된다. 특정 영역에 한해 서비스하되 저렴한 이용료로 많은 이용자에게 서비스해 자립한다는 게 그것이다. 선도적 특정 영역과 중소기업 이용 확대는 도저히 교집합을 찾기 어렵다. 저렴한 이용료와 자립화 또한 정면으로 배치된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한 발 물러설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한 가지를 찾는다면 그것은 재정자립이다. 정부가 운영비 중에서 전기·수도·가스 등 공공 성격 비용만 지원하더라도 공공성을 확보하며 저렴하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외국에서도 총 운영비의 30% 정도는 주정부 등이 지원하며 일본은 100% 지원하기도 한다. 우리나라도 가속기연구소와 같은 첨단 대형시설은 운영비를 대부분 지원받고 있다. 그리고 그 혜택은 결국 연구자에게 돌아간다.
나노 인프라의 또 다른 숙제는 R&D 지원이다. 첨단 연구설비를 갖춘 후 여러 사람이 연구에 활용하도록 하고 중소기업의 R&D를 지원하려면 그 장비를 운영하는 연구원이 상당한 수준에 올라 있어야 한다. 그런데 현 제도상 나노 인프라는 자체 R&D를 수행하지 못하도록 돼 있다. 장비 운영자의 기술력 향상뿐 아니라 장비를 최상의 상태로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방안이 없는 것이다.
선진국은 나노기술을 적용한 원천기술을 개발해 미래 세계를 주도하려고 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단기간의 성과에 급급하기보다는 장기적인 경쟁력 확보를 위해 기술 개발과 시설 투자에 임해야 한다. 나노 인프라도 미래를 준비하는 차원에서 산·학·연의 R&D를 지원하는 허브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스스로 능력을 배양해야 할 것이다.
◇정윤하 포항나노기술집적센터 yhjeong@poste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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