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 만났을 때 절정의 고수 ‘강도’는 이런 말을 남겼다. “아군에게 공격하면 안됩니다”라고. 헌데 몇 번의 연습을 통해 아군을 알아보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음을 깨달았다. 정신없이 쏟아지는 총탄과 미사일, 검광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본능만 남을 뿐이다. 아군과 적군을 구분하는 것조차 어렵다니…. 어떤 상황에서도 침착할 수 있는 고수의 길은 진정 멀고도 험난하기만 했다.
“좀 늘었는지 볼까요?”
강도(여전히 적응 안되는 아이디) 사부의 첫 인사는 실력 테스트였다. 막바지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어느 날, 강남의 모 PC방에서 만난 그는 실력이 얼마나 늘었는 지가 최대 관심사였다. 제자라고 부르기엔 뭣 하지만 자신이 누구에게 가르침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 기쁜 모양이었다.
연인을 만나는 것처럼 다소 흥분된 얼굴의 고수를 보니, 역시 게임을 좋아하는 마니아임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설마 남자 취향은 아니겠지비….).“연습을 좀 하긴 했는데 제가 좀 바쁜 사람이라서요. 하하. 귀엽게 봐 주세용. 아하하하…”
떨리는 목소리를 감출 길이 없었다. 어쩌면 이렇게 야박하게 군단 말인가. 그냥 시험 따위는 하지 않고 넘어가길 바랬지만 고수의 자세는 단호했다. 지난 30년 동안 지겹게 치뤘던 시험의 공포가 다시금 느껴졌다. 저항할 수 없는 압박을 느끼며 서버에 접속하고 태도를 바르게 했다. 심장 박동을 늦추며 긴장을 풀었다.
게임에는 여러 명의 유저들이 날아 다니고 있었다. 몸놀림을 보니 컨트롤에 익숙하다 못해 자신의 신체처럼 움직이는 듯 했다. 순간 식은 땀이 흘렀으나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다. 부스터를 작동시키며 맵을 누비기 시작했다.
“지난 번에 비하면 많이 좋아졌습니다. 오늘은 맵 대탐험을 해보죠.”
말없이 플레이를 지켜보던 사부는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머릿속에는 ‘대체 내가 왜 이러고 있어야 하나’하는 자괴감이 스쳐 지나갔다.
사부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서버에 접속해 방을 만들었다. 가장 많이 활용되는 맵을 골라 여러 가지 전략을 알려주기 시작했다. 그는 우선 장거리 공격에 적합한 장소를 설명했다. 모든 맵에는 높은 위치에서 상대 메카닉을 저격할 수 있는 특정한 위치가 존재하는데 여기를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만 공격도 방어도 가능하다는 것. 만약 자신이 공격한다면 어디가 최적의 위치인지 알아야 하며 상대 진영으로 진입할 때도 이를 염두에 두고 있어야 피할 수 있다고 말했다. 확실히 그가 알려준 장소는 오묘하기 짝이 없었다. 부스터를 이용해도 레벨업이 되지 않으면 올라가기 힘든 위치에 간신히 발만 디딜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한번 올라가 보라는 설명에 겨우 기어 올라갔다. 천장에서 밑을 내려다 보는 광경이 시야에 펼쳐졌다.“이런 곳이 있다니. 느닷없이 망치로 맞는 듯한 충격이 바로 여기서 날라오는 공격이었군.”
하나의 깨달음을 얻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반대로 이를 피하는 장소도 알려줬다. 몸을 숨기면서 상대 진영으로 진입하는 요령까지 덩달아 배웠다.
“그리고 혼전이 벌어지는 장소도 거의 정해져 있어요. 맵 구조가 대부분 대칭으로 짜여져 있지요? 바로 여기를 선점하는 편이 이기죠.”
시부는 하나하나 맵을 짚어 가며 자세하게 설명했다. 다른 맵도 마찬가지라며 여러 가지를 보여줬다. 공간이 필드로 구성돼 막힘이 없는 장소도 기본적으로는 큰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전투 체계가 원거리와 중거리, 근접거리로 분류되는게 ‘엑스틸’이다. 실력의 차이는 특히 원거리와 근접에서 많이 난다.
“검의 사용은 오히려 유용합니다. 가까이 붙으면 어떤 무기도 맞질 않아요. 칼싸움에도 익숙해져야 합니다.”
“검은 앞에서 휘두르면 무조건 맞는게 아닌가요?”
“아닙니다. 칼도 록온이 나타나는 순간에만 타격을 줘요.”그때 갑자기 미야모토 무사시처럼 양손에 검을 쥔 적이 나타났다. 이름도 모르는 유저가 갑자기 덤벼든 것이다. 우리의 초보 로보트는 조준도 하지 못하고 단숨에 파괴되고 말았다. 복수심에 불타 다시 출격했으나 실력의 차이가 너무 컸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기체 레벨의 차이였다. 부스터와 각종 장비가 압도적으로 월등한 상대를 이기기란 불가능했다. 유령이라는 이름의 유저는 정말 유령처럼 앞뒤에서 번쩍거리며 괴롭혔다. 그때 고수가 키보드와 마우스를 가로챘다.
이글거리는 눈빛을 보니 평소 알고 지내던 라이벌이거나 아이템 사기를 당한 것처럼 보였다. 이유는 중요하지 않았다. 얕보는 눈치가 확연했던 유령은 갑자기 달라진 움직임에 당황하는 움직임이 역력했다. 몇 방 맞더니 도망치기에 급급했다. 강도는 끝까지 쫓아가 다시는 덤비지 않도록 엄청난 공격을 퍼부었다. ㅍㅎㅎㅎ 통쾌한 순간이었다.
“자 이제부터 근접공격인 검에 대해서 설명할께요.”
자신의 화려한 실력에 만족한 고수는 검 쓰는 요령을 알려줬다. 검에도 공격이 가능한 거리가 있어 무조건 휘두르면 허점만 보인다고 했다. 그래서 연속기를 활용함에도 거리를 잘 파악해 순간적으로 부스터를 발동시켜 달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화면 전환이 매우 빨라 익숙해지기 어렵지만 그래도 요령을 알고나니 감이 오기 시작했다. 검에 재미가 붙으니 계속해서 이것만 사용하게 됐다. 중독성이 매우 강했다.
“계속 실전을 통해 연습을 하세요. 지든 이기든 상관하지 말고 도전하는 정신이 중요합니다. 패배는 성공의 어머니입니다. 기억하세요.”
<김성진기자 hara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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