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심으로 돌아가자

새 그릇에 새 물을 담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 그릇 뿐 아니라 거기에 담을 물이 좋아야 하기 때문이다. 또 그릇이 좋다고 해서 이것저것 다 담을 수 도 없는 노릇이다. 쓰임새와 크기를 고려치 않으면 넘치거나 부족해 제몫을 못하게 되고 그 그릇도 오래 보전 할 수 없기때문이다. 그래서 그 그릇을 짓는 사람도 그 그릇을 고르는 사람도 다 따로있다 하지 않던가.



새 시스템을 만드는 일이 그렇게 녹록한 일이라 할 수 없다. 창조성과 상호작용 그리고 보완관계를 고려해야 하고 더 나아가서는 상승효과도 이끌어내야 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따라서 새 시스템이란 창조적 혁신이란 의미와 진배없다. 중요한 것은 상호작용과 보완관계를 어떻게 설정하고 운용할 것인가 하는 점인데, 그 것은 기득권층의 자리 지키기나 제몫 챙기기 만큼은 철저히 배제돼야 한다는 점이다. 만의 하나라도 그렇게 만들어지지 않으면 그 것은 상호·보완 관계를 빙자한 어용 시스템이며 창조적 혁신을 덧칠한 시스템이라고 밖에 할 수없다.



최근 게임물등급위원회 구성 및 심의를 둘러싼 논란도 조금 들여다보면 창조적 시스템과 거리가 먼 구태를 답습하려는 데서 나온 잡음이라고 생각한다. 포장만 다르게 했을 뿐 영상물등급위원회의 그 것과 같고 어찌보면 예전의 그것으로 회귀했다고 생각이 들 정도이니 그럴 만도 하다.



특히 안타까운 것은 업계로부터 끊임없이 분란을 일으켜 온 이중 심의문제가 또다시 간과되고 있다는 점이다. 일례로 아케이드 게임에 대한 기술심의를 별도의 기구에서 처리하겠다는 것인데, 그 것은 다름아닌 구태나 다를바 없다.

게임등위는 세계 3대게임 강국 진입이란 거창한 구호 못지않게 다원화하고 있는 여론을 반영하고 민간 차원의 자율 심의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차원에서 만들어지는 단체다. 명실공한 민간기구는 아니지만 그 뜻이 내포돼 있다고 봐야 한다.

 

그렇다면 영등위의 채색은 이번 기회에 완전히 지워 버려야 한다. 상호작용과 보완관계는 다소 부족하더라도 창조성과 혁신적 기반은 반드시 세워져야 옳다. 의견을 수렴한다는 미명아래 이쪽저쪽 의견을 수용하다 보면 용의 눈은 커녕 뱀의 눈조차 그리기 쉽지 않다.

 

지금 우리가 유념해야 할 것은 초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혹시라도 그 것에 반하게 된다면 차라리 눈을 감아 버리거나 외면해 버리는 용단이 필요하다. 그 것은 다름아닌 용도를 잘못써서 그릇을 깨는 우를 범할 수 있고 크기를 측정하지 못해 넘치거나 담지 못하는 실수를 저지를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늦지않았다. 더 고민해야 한다.

 

시기적으로도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정국이 그렇고 경제가 그렇다. 게임산업을 보면 풍전등화의 모습이다. 이럴 때 일수록 더 심사숙고해야 한다. 문화와 산업을 잘 아우르는 좋은 물을 새 그릇에 담아야 한다. 처음부터 상처를 덧칠해 흉물스럽게 가져갈 수는 없는 일 아닌가.

<편집국장 inm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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