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게이오 대학의 DMC 프로젝트

  장맛비가 줄기차게 쏟아 지던 지난주 일본을 방문했다. 문화관광부와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직원, 서강대 교수 등과 함께 일본 콘텐츠 기술(CT)의 현황과 협력 가능성을 모색하기 위해서였다.

 첫날 방문지는 일본 명문 사학 게이오 대학였다. 도쿄 중심가에 위치한 이 대학의 디지털미디어센터(DMC)에 들어서자 30대 후반의 젊은 교수가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았다. ‘안녕하세요’라는 정확한 한국어를 구사하는 이 젊은 교수는 한국인이었다. 수줍은 듯한 말투로 김정훈 교수가 설명을 시작하면서 우리 일행은 모두 패닉 상태에 빠졌다. 김 교수가 내놓은 게이오 대학의 DMC 프로젝트는 말 그대로 아연실색하게 만드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게이오 대학은 일본 문부과학성으로부터 연간 100억원 정도씩 5년간 약 500억원을 제공받는다. 디지털 콘텐츠의 총체적인 육성 체계를 만들고 5년동안 실제로 시행해서 일정 정도의 결과물을 내놓는 것이 연구 목적이다. 대학이 중심이 되는 콘텐츠 분야의 연구 과제에 정부가 500억원을 선뜻 내줬다는 점이 무엇보다도 부러웠다.

 1시간여 동안 계속된 김 교수의 설명을 들으면서 처음 부러움은 두려움으로 바뀌었다. DMC 프로젝트에는 콘텐츠 산업 육성을 위한 정책에서부터 기술 개발, 인력 양성, 비즈니스 모델 개발, 산·학·연 컨소시엄 구성 및 기술의 상품화 등 콘텐츠 육성을 위한 알파에서 오메가까지 모든 것이 포함돼 있었다. 물론 사업 꼭지를 하나씩 뜯어 보면 뭐 그리 새롭다고 할 것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이 정도 내용의 프로젝트를 추진하려면 문화부·교육인적자원부·산업자원부·정보통신부 등이 모두 나서야 가능하다.

 질의응답이 이어지면서 자연스럽게 부처의 업무 중복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콘텐츠 산업을 두고 문화부와 정통부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상황이 제시되고 일본 상황을 물었다. 김 교수는 일본도 상황은 비슷하다고 했다. 총무성·경제산업성·문부과학성 등이 CT 분야에서 첨예하게 대립한다고 했다. 다만 내각이 이들 3개 부처의 업무를 조정하며 매년 5월에 이와 관련된 백서를 내놓는다. 그 백서에는 분야별로 어떤 부처가 어디까지 일을 해야 하는지를 명확히 구분해 적시한다.

 “설령 내각이 정해도 그 걸 일선 부처에서 지키지 않으면 허사가 아니냐”는 질문이 이어졌다. 고개를 갸웃거리던 김 교수는 이내 대답을 찾았다. “일본은 한국과 달리 내각 책임제인데다가 룰과 매뉴얼이 정해지면 그대로 지키는 국민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방문을 마치고 신주쿠(新宿)를 한 바퀴 돌았다. 이른바 유흥가에는 우리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다양한 성 관련 서비스와 상품을 파는 가게가 즐비했다. 언뜻 보아서는 탈법과 불법의 온상처럼 느껴졌다. 일본 유학 경험이 있는 한 교수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일본은 일단 법으로 정해지면 절대로 그 선을 넘지 않습니다. 만의 하나 정해진 매뉴얼을 어기면 그 이상의 불이익을 당하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파친코나 슬롯이 일본 내에서는 그렇게 큰 문제가 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일본 파친코나 슬롯머신 업계 사람들이 정해진 룰을 지키면서 장사를 하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성인 오락실처럼 사행성 게임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비화되지 않습니다.” 우리 게임산업의 사행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는 매뉴얼을 그대로 지키는 일본의 관행에서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하긴 일리가 있는 말이다. 일본의 파친코가 한국으로 넘어와 사행성 게임이 된 것처럼 매뉴얼과 룰을 지키지 않으면 게이오 대학의 DMC 프로젝트는 한국에서 제대로 시행되지 않을 것 같다.

 디지털문화부·이창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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