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6 독일월드컵’이 이탈리아의 우승으로 끝이 났다. 우리를 뜨겁게 달군 ‘독일월드컵’ 열기는 사실 이보다 앞선 우리나라의 16강 토너먼트 진출 실패와 함께 사그러진 감이 없지 않다. 축제를 더 즐기고 싶은 대다수 국민에겐 정말 서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우리의 16강 진출 실패를 진심으로 아쉬워하고 있을 주체 중 하나는 방송중계권을 가지고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있는 지상파방송 3사다.
KBS·MBC·SBS는 같은 시각에 똑같은 월드컵 경기를 중계했다. 한두 해 겪은 일이 아니라 새삼스럽지도 않다. 저녁뉴스 시간에도 절반 이상을 월드컵 소식으로 채우는 등 분위기를 한껏 띄워놓은 3사는 예선리그 경기 중계로만 610억원의 광고수입을 올렸다.
그뿐만 아니라 향후 지상파방송사의 사업영역 확장을 염두에 두고 디지털전송대역을 이용한 멀티모드서비스(MMS) 시험방송도 감행했다. 하지만 MMS 시험방송을 강행했던 지상파방송사들은 뉴미디어업계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혔을 뿐 아니라 사전에 기술적 검증을 소홀히 한 결과 화질열화현상 등을 초래, 시청자의 불만과 저항에 직면해야만 했다. 급기야 방송위원회가 시험방송 축소 결정을 내리는 것으로 ‘MMS 논란’은 일단락됐지만 지상파방송사들은 오히려 방송위를 비난하며 MMS 본방송을 준비중이다.
지상파방송사들이 MMS 방송을 주장하는 근거는 전파자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시청자에게 디지털 무료 서비스를 확충해준다는 점이다. 6㎒에서 HD채널 하나만 내보내는 것보다 SD채널까지 끼워보내는 게 적극적인 활용이자 디지털 무료 서비스란 설명인 셈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케이블TV와 위성방송 등 뉴미디어에서 계열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를 통해 재미를 봐온 지상파방송사들이 콘텐츠 유통창구를 늘려 광고수입을 확충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임을 누구나 알 수 있다.
뉴미디어 업계는 지상파의 MMS 도입 시도에 대해 지상파의 6㎒는 그들 소유가 아니며, 지상파의 독과점 폐해가 심화될 수 있고 지상파 본연의 역할 수행 등을 들어 우려하고 있다.
첫째, 공익적 공공재인 전파자원을 적극 활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이를 지상파방송사가 마치 자기 것인 양 활용하는 것은 결코 용납돼서는 안 된다. 지상파 디지털방송을 위해 허용한 6㎒는 완전한 HD채널과 그에 따른 부가서비스(데이터방송 등)를 위한 것이며 이를 이용해 채널을 더 늘려도 된다는 생각은 지상파만의 큰 착각이다.
둘째, 지상파의 독과점은 뉴미디어 콘텐츠 시장을 포함한 전체 방송콘텐츠 시장에서 날로 심화되고 있으며 그에 따른 피해도 커지고 있다. 케이블TV 시장의 예를 들어보자. 케이블TV가 성장했다고는 하지만 정작 케이블TV 콘텐츠 시장에서 지상파계열 채널들이 전체 채널 순이익의 80% 이상을 가져가고 있는 게 현실이다. 또 위성방송, 인터넷 VOD, DMB 등 모든 신규 방송매체를 지상파콘텐츠가 장악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MMS가 해외에서 허용되고 있으니 빨리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은 국내 미디어 시장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설득력 없는 외침이다.
셋째, 지상파방송사는 본연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이번 월드컵 중계에서 보여준 것처럼 돈 되는 콘텐츠라면 동시에 편성해 국민의 시청권을 무시하다가 갑자기 국민을 위한다며 채널 확대를 시도하고 있다. 광고 시장을 탐내는 속마음을 숨기고 무료 디지털방송 활성화를 내세우는 고압적 논리는 유료방송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과 같다. 지상파와 뉴미디어는 각자 역할에 충실해 균형발전을 이뤄야 한다.
MMS는 지상파방송의 새 채널 허용이나 다름없다. 그것도 최대 5∼6개의 새 채널을 확보하는 것이다. 경인지역 지상파방송사 하나를 설립하는데도 여러 가지 까다로운 절차나 잣대가 존재한다. 왜 유독 기존 중앙 지상파방송사들은 예외적으로 적용받지 않아도 된다는 것인가. 방송위원회의 지상파방송 중심의 정책논의 구조와 지상파방송사들의 탐욕은 이제 여기서 그쳐야 한다. ‘전파’는 지상파만의 것이 아니다.
정하웅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KCTA)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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