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단의 순간들]청풍 최진순 회장(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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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 생각하게 된 것이 바로 직접 사업을 해 보면 어떨까 하는 것이었다.

 그 때 내 나이 서른을 얼마 안 남긴 시점이었고, 옆에는 만삭의 아내가 있었다. 또 부친은 내가 독립하겠다는 것에 반대가 심했고, 내 수중에는 사업을 시작할 수 있는 경제적 여건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였다.

 고민을 하던 끝에, 가업을 돕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던 나는 독립을 결심하게 되었다. 그 때 내 나이 27세였고, 나는 만삭의 아내를 이끌고 이웃집에서 1만원을 빌려 집을 나왔다. 오로지 혼자의 힘으로 그동안 연구한 새로운 기술들을 활용해 섬유업으로 꼭 대성하고 말겠다는 강인한 결심과 함께 나에게는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는 것은 나에게 희열 그 자체였다. 물론 내 수중에는 이웃집에서 빌린 1만원 정도의 돈 밖에 없었지만, 섬유 기술과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 하나는 가득했다.

  공장 용지를 알아보기 위해 발이 부르트도록 열심히 다녔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많은 이야기를 귀담아 들었다. 그리고 그 당시 ‘기저귀’ 옷감으로 유명했던 경기도 불암리 근처에 터를 잡기로 결정했다. 내가 처음으로 독자적인 사업을 하게 된 ‘임성직물’을 하나씩 만들어 가기 시작했다.

 집을 구할 돈조차 없었던 나는 당시 육군 대위가 소유했던 버려진 땅의 일부를 1년 후 보상하겠다는 약속과 함께 외상으로 임차했다.

 또 주위 가게에서 시멘트와 못 등을 차후에 보상하겠다는 약속과 함께 외상으로 구입했다. 손수 모래로 벽돌을 만들고, 집의 벽을 만들고 판초 우의로 지붕을 만들고 해서, 살 수 있는 집을 마련하였다. 쌀 한 말과 연탄 일부를 가지고 살 수 있는 환경은 그럭저럭 마련하였다.

 그리고, 공장을 짓기 시작했는데, 사실 나는 그때 당시 거지라는 소리까지 들으면서 공장을 지었다. 하지만 그래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었고,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에 두려움이나 부끄러움은 전혀 없었다.

 공장은 지어졌는데 섬유 공장에 필요한 기계를 구입할 수 있는 돈이 전혀 없었다. 첫째 딸 출산 때문에 친정에 가 있던 아내의 폐물을 팔아 20만원의 돈을 마련하였다. 아내에게는 정말 지금 생각해도 너무나도 미안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아내는 이해해줬고, 나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마련된 20만원의 돈으로 나는 충청도 유구 지역으로 내려가 공장에 설치할 기계를 찾아 헤매었다. 이 중 한 공장 주변에 10여대의 기계가 그냥 놓여 있는 것을 발견했는데, 순간 내 눈에 번쩍하고 광명 같은 것이 비추는 것 같았다.

 공장 사장을 바로 찾아가서 섬유업을 시작하고 싶다는 이야기와 함께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눈 끝에, 어느 정도의 돈과 이 외에는 외상으로 기계를 빌려 공장 부지가 지어져 있는 불암리로 올라왔다.

 전기 시설이 전혀 없었던지라, 내가 직접 손수 발동기를 이용해 전기를 만들고, 공장 기계를 가동했다. 이 때 전기와 관련된 것들을 개발하다 보니, 재미를 느껴 향후 새로운 전자 사업을 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chungpung@chungpung.com

  ⑤홀로서기

(사진) 직물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최진순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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