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제작 프로세스상 단순 ‘구색 맞추기’ 쯤으로 간주돼온 게임음악의 비중이 눈에 띄게 높아지고 있다. 게임의 청각적 효과를 높이는 사운드가 게임의 기본 완성도를 평가하는 핵심 잣대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관련 기술, 전문 인력 등 해당 인프라는 크게 낙후돼 게임음악의 해외 의존도가 갈수록 높아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어 대책 마련이 요구된다.
전문가들은 “시나리오, 그래픽, 프로그래밍 등과 함께 음악이 게임의 4대 요소 기술임에도 불구, 우리나라는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면서 “게임산업 진흥 차원에서 게임음악에 대한 정부 차원의 육성 대책이 하루빨리 수립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래픽이나 네트워크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일 지 몰라도 적어도 게임음악 만큼은 아직도 ‘삼류’ 수준에 불과합니다.” ‘종주국’으로 불릴만큼 온라인게임은 이미 세계 최고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게임음악은 아직도 ‘걸음마 단계’에 머무르고 있다. 기술이 낙후돼 있다 보니, 자연히 100억원 안팍이 소요되는 대작 게임의 경우 타이틀곡이나 주요 배경음악(BGM)을 주로 수입(?)에 의존하는 실정이다.
최근 세련된 고퀄리티 배경음악(BGM)으로 주목받고 있는 IMC게임즈의 ‘그라나도 에스파다’의 경우 상당수 BGM을 일본에서 제작한 것이며, 웹젠의 ‘썬’ 역시 할리우드가 낳은 최고 블록버스터 ‘반지의 제왕’에서 음악을 맡았던 하워드 쇼의 작품이란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WOW’의 성공으로 고퀄리티 BGM과 사운드로 무장한 외산 온라인게임이 물밀듯이 쏟아지고 있다”면서 “자칫하다간 게임음악이 국산 게임의 업그레이드를 가로막는 장애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 개발사 인식 부족 심각
게임은 대표적인 ‘멀티미디어’이자 종합예술 분야로 꼽힌다. 그런만큼 비주얼한 그래픽과 함께 사운드의 비중이 갈수록 높아질 것이 자명하다. 그러나, 아직까지 국내 게임 개발사들의 게임음악에 대한 인식도는 취약하기 짝이없다. 무엇보다 게임 제작 프로세스상 기획 단계에서 BGM 등 게임음악에 대한 전반적인 기획이 이루어져야 함에도 초기 단계서 사운드에 대한 컨셉트를 정하고 진행하는 경우는 극히 드믈 정도다.
보통 개발 프로세스상 사운드는 마무리 단계에 구색 맞추기로 제작이 이루어지는게 일반적이다. 이러다보니, 전반적인 게임에 대한 이해도가 약한 상황에서 음악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제작 기간도 길어야 한달, 짧으면 단 몇 주만에 일사천리로 이루어질 정도로 열악한 상황이다.
자연히 사운드의 퀄리티를 떨어뜨려 결국 게임의 완성도에도 악재로 이어지는 빈곤의 악순환이 발생하고 있다. 특히 음악을 외부에서 제작하다보니, 커뮤니케이션 부족으로 인해 게임의 전반적인 분위기와 사운드가 충돌하는 사례도 빈발하고 있는 실정이다.
중소 온라인게임 개발사인 A사 사장은 “현재 그래픽이 전체 개발비나 개발기간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100이라고 보면 사운드는 현재 10에도 못미치는데 그만큼 이미지에 많은 자본과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보통”이라며 “유저들이 그래픽을 선택의 최고 요소로 생각하는 상황에서 사운드 부분에 투자를 높인다는 것은 그야말로 모험”이라고 잘라 말했다. 지난 10년간 국내 온라인게임 기술은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했음에도 사운드 기술은 큰 진전을 보지 못한 구조적인 원인을 함축적으로 표현하는 말이다.
# 유사 외주 전문업체만 양산
개발사들의 인식이 낮고 개발비에서 차지하는 사운드의 비중이 턱없이 부족하다보니, 대부분의 개발사들이 외주 전문업체에 의존한다. 문제는 이들 외주 업체들이 게임만을 전문으로 하는 곳이 아니라, 영화·드라마·애니메이션·음반 등 다양한 음악을 커버함으로써 게임음악에 대한 노하우와 전문성이 축적되기 어려운 구조를 띠고 있다는 사실이다. 설상 가상 외주 의뢰 기간이 대부분 촉박하게 이루어져 애초부터 수준 높은 ‘작품’을 기대하기 어렵다는게 업계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예당온라인 문득기 개발관리본부장은 “외부 스튜디오의 경우 환경이나 장비가 열악하고 다른 분야를 동시에 소화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품질적으로는 문제가 없을 지 몰라도 게임음악의 전문성을 높이는데는 구조적으로 한계가 많다”고 강조했다. 중견 개발사의 한 관계자는 “전문성이 떨어지다보니 대작의 경우 국내보단 외국 유명 스튜디오에 맡기는 것이 업계의 일반적인 시스템”이라고 토로했다.
더욱이 게임 개발사가 급증하고 모바일·콘솔·아케이드 등 다양한 게임 플랫폼의 신작 개발이 늘어나면서 최근 게임음악을 비즈니스로 하는 외주 업체가 우후죽순 늘고 있다. 자체작인 사운드팀을 운영하는 것보다 외주에 맡기는 것이 비용 대비 효과가 크다는 근시안적인 발상 때문이다.
음악 전문 스튜디오를 운용하는 B사 사장은 “게임만으로 수익이 된다면, 게임음악 전문업체가 더 많이 생겨 전문성이 더욱 높아지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면서 “게임음악의 외주가 전문성을 떨어트리는 것이 아니라, 개발사들의 음악에 대한 이해부족과 이로인한 투입 예산 부족이 더 큰 문제”라고 꼬집었다.
# 전문 교육기관 태부족
현재 국내에는 각급 학교나 사설 전문기관에 이르기까지 게임 전문 인력 양성 기관은 많다. 하지만, 게임음악 관련 전문 양성기관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게임산업이 지난 몇년간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며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자리매김했지만, 게임음악만큼은 아직 전문적인 학과 조차 없을 정도로 열악한 실정이다.
물론 최근 몇년간 전문대와 음악대학에서 학과를 개설하고 있는 실정이지만, 대부분 독자적인 과목이 아닌 멀티미디어학과에 포함되어 있거나, 교양 과목으로 소개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게임음악 전문 업체인 디딤엔터테인먼트의 한익문 PD는 “현재 몇몇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지만, 관련 교재도 충분치 않을 뿐더러 실제적으로 체험할 기회가 적어 효율적인 교육이 이루어 지지 않고 있다”며 독자적인 게임음악 전문가 양성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기존 대중음악계 종사자들의 게임음악에 대한 경시 풍조도 게임음악의 전문성과 고도화를 가로막는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모바일 음악을 전문으로 하는 C사의 한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게임음악 기술이 진일보하려면, 순수 음악이나 대중 음악계의 고급 인력들이 게임쪽으로 대거 유입돼야 하지만, 게임을 단지 ‘애들 장난’으로 보는 풍조가 만연돼있어 그들을 유인하기 쉽지 않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결국 음악이 게임산업의 핵심 요소기술로서 전문성을 높이고,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문제는 산업의 인프라에 해당하는 만큼 정부의 정책적 배려만이 이 문제의 실마리를 푸는데 선결과제라는게 업계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게임이 ‘원소스 멀티유즈’(OSMU)의 핵심 툴로 부상, 머지않아 게임음악도 OST 등 하나의 산업이자 독자 시장으로 자생할만한 가능성이 충분하다”면서 “범 정부 차원에서 대한민국 게임산업의 질적 향상과 부가가치 확대를 위해서라도 게임음악에 대한 인식전환과 총체적 지원책을 만들때가 됐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중배기자@전자신문 모승현기자@전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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