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전자 유럽 지·법인장들이 이 달 초 슬로바키아 생산공장에 총집결한다. 독일 월드컵을 앞두고 LCD TV 대책 수립 회의가 열리기 때문이다. 이 자리에서 삼성전자는 목표 판매량을 상향조정하는 한편, 부품 조달과 배송문제에 대해서도 심층적으로 논의할 방침이다. 작년 말부터 놓고 보면 올 목표를 네번째 갈아치우는 것이다.
◇유럽에서도 디지털 코리아=독일 월드컵을 앞두고 유럽 전역이 LCD TV로 들썩이고 있다. 유럽 남동부에 위치한 그리스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그리스는 GNP가 2만달러를 넘지만 인구 1100만에 전기전자제품 시장도 20억유로(약 2조4000억원)에 불과하다. TV만 하더라도 연간 판매량이 60만대로 우리나라의 4분의 1 수준이다. 하지만 최근 LCD TV 판매가 폭발적으로 늘어 연말에는 LCD TV가 전체 TV 시장의 50%에 이를 전망이다. 실제 삼성전자 아테네지점은 올 1분기 LCD TV 실적이 전년 동기에 비해 370%나 늘었고, 연말까지 7만대 판매를 목표로 세웠다. LG전자 아테네법인도 올해 5만대 판매가 목표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순위 변동도 예상되고 있다.
삼성전자 권순진 지점장은 “이제까지는 브라운관TV로 소니가 TV 시장에서 1위를 달렸지만, LCD TV가 시장의 중심이 되면서 국내 업체들이 약진하고 있다”며 “LCD TV가 그리스에서조차 한국 가전의 위상을 높이는 공신이 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LCD모니터와 PDP TV 시장에서 1위를 달리며 매년 80% 이상 성장하고 있는 LG전자 아테네법인 박희종 법인장도 “이 달 타임머신 기능이 내장된 LCD TV를 통해 기술력을 다시 한 번 입증하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이같은 힘을 바탕으로 LG전자는 그리스 가전 시장에서 2008년 2위, 2010년 1위에 오를 것”이라고 자신했다.
◇중국의 비상=하지만 중국의 추격은 곳곳에서 보이고 있다. 그리스 시내에 위치한 종합쇼핑몰 ‘더 몰(The Mall)’의 코쪼볼로스 매장에서는 중국 후나이 26인치 LCD TV를 800유로에 판매하고 있다. 소니와 LG전자 동일 인치 제품이 1000유로 정도임을 감안하면, 저렴한 가격이다.
7∼8월 기온이 최고 40도까지 올라가는 그리스에서 에어컨 시장의 65%를 점유하는 제품은 중국산이다. 아예 유통매장에서 중국 제품을 들여오기 위해 중국을 방문할 정도다. LG전자는 아예 중국산과 차별화한다는 방침아래 ‘아트쿨’ 위주의 고가 제품으로 주력을 정했다.
뿐만이 아니다. 2.1채널 홈시어터, 휴대형 라디오 등도 ‘UNITED’라는 브랜드 아래 각각 89유로, 39유로에 팔리고 있다. ‘UNITED’는 중국 내에서도 브랜드가 없는 제품을 총칭한 것이다.
LG전자 박희종 법인장은 “가격을 무기로 한 중국산 제품들의 추격이 무서울 정도”라며 “10년 전의 한국을 연상시킨다”고 혀를 내둘렀다.
◇로컬 브랜드의 파워=독일에 인접해 있는 그리스에서 백색가전은 보쉬지멘스그룹의 파워가 절대적이다. 현재 그리스 가전시장은 소니가 20%, 보쉬지멘스그룹이 16%, 필리스와 노키아가 각각 10%, 11%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보쉬지멘스는 최근 그리스에서 유일하게 공장을 보유하고 있는 핏소스(PITSOS)를 인수하며 힘이 더욱 강력해졌다. 세탁기, 냉장고, 전기오븐 등 코쪼볼로스 매장 어디서나 보쉬지멘스, 아에게, 밀레, 아리스톤의 제품들이 즐비하다.
그나마 LG전자 아테네법인이 그리스 전체 매출의 30%를 생활가전에서 올리고 있는 정도다. LG전자 아테네법인은 올해 빌트인가전 제품의 전략기지로 선정돼 6월경 제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삼성전자도 이 달 스마트오븐을 시작으로 주방가전을 본격화한다.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유럽시장에서 현지 로컬 브랜드를 제치고 선전할지 관심이 모아지는 대목이다.
아테네(그리스)=정은아기자@전자신문, eaj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