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칼럼]한 총리와 부처이기주의

헌정 사상 첫 여성 총리인 한명숙 국무총리의 등장은 시작부터 좀 색달랐다. 취임식부터 종전과는 여러 모로 다른 고정관념 깨기를 시도한 것이다. 참석자들에게 서열과 관계 없이 자리에 앉아 편안한 자세로 취임사를 듣도록 했다. 부동자세로 총리 말을 경청하던 이전 취임식을 생각하면 파격이라 할 만도 했다.

 취임 일성도 일단 신선한 느낌을 준다. 국정 상황에 대한 시각을 거론하던 전임자들과는 대조적으로 공직자의 기본 자세를 얘기했기 때문이다. 그는 ‘무엇보다 부처 장악력이라는 개념을 버리자’고 강조했다. 공무원 사회에서 생각해보면 얼핏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이다. 참여정부의 국정시스템은 ‘분권’을 표방하고 있다. 또 “얼굴 마담이 되지 않겠다”는 각오를 밝힐 정도로 한 총리 자신이 걸어가야 할 길을 명확히 비친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물론 취임사를 자세히 뜯어보면 한 총리가 왜 이런 말을 먼저 했는지 이해가 된다. “부처 장악력이 의심스럽다”는 세간의 평을 의식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렇더라도 그의 말대로 자신의 장점인 ‘카리스마’와 ‘리더십’만을 강조하면 의미 전달이 확실한데 굳이 ‘부처 장악 개념 버리기’를 강조한 이유는 무엇일까.

 한 총리 취임 전후 사정이 그 뜻을 짐작하게 한다. 노무현 대통령 임기가 2년도 채 남지 않은 후반기다. 이제 국정과제를 마무리할 단계다. 다음달 지방선거에 이어 내년에는 대선이 있다. 하반기 차기 대권을 놓고 여야 간 경쟁과 다툼이 본격화될 것은 뻔하다. 여기에 개헌론까지 맞물릴 전망이어서 조용함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당연히 레임덕이 우려되는 것이다. 대선 때마다 부각되는 게 부처 조직개편론이다. 이와 관련해 생존 논리를 앞세운 부처 이기주의가 팽배할 수밖에 없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부처 간 조화를 바탕으로 한 내각운영에 나서겠다는 것을 말하려는 듯 싶다.

 ‘부처 장악 개념 버리기’에 대한 한 총리의 설명도 이를 암시한다. “내 이익, 우리 부처의 이익을 움켜쥐고 놓지 않으려는 그런 ‘장악’을, ‘부처 이기주의’를 놓아버리자는 것입니다. 내 이익, 내 부처의 이익을 먼저 챙기고 거기에 얽매인다면, ‘국민의 평안과 행복’은 안중에 없게 됩니다.”

 최근 부처 간 상황을 보면 갈등의 골이 깊다. 총리가 나서지 않고는 안 될 만큼 너무 꼬여 있다. 인터넷TV(IPTV) 문제가 대표적이다. 상용 기술은 확보됐지만 부처 간 주도권 다툼으로 서비스가 지연되고 있다. 디지털 콘텐츠 분야도 영역다툼 함정에 빠졌다. 융·복합화로 탄생하는 새로운 IT분야는 거의 똑같다. 중요한 것은 단순한 부처 이기주의에 그치지 않는다는 데 상황의 심각성이 있다. 부처 이기주의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문제는 심각하다. 서로 아웅거리다 보면 정책은 중복과 소모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IT분야는 미래 먹거리 산업이기에 교통정리가 더 절실하다. 이전처럼 점검만 해서는 꼬인 문제를 풀 수가 없다. 그 이상의 리더십과 능력을 발휘해야 한다.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이라는 총리가 할 일이 이것뿐이겠는가. 그러나 어떤 국정 과제도 정부 부처 간 유기적인 협조체계가 밑바탕이 되지 않으면 해결하기 어렵다. 아무리 훌륭한 지도자라 할지라도 거대 공직사회의 힘을 빌리지 않고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국민이 한명숙 총리에게 기대를 거는 것도 한편으로는 부처 이기주의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확고하리라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진정으로 부처 이기주의 해결의지를 갖고 있다면 지금 당장 통신방송융합추진위원회 문제부터 들여다보기 바란다.

◆윤원창 수석논설위원 wcyoo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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