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한민국 국가대표 야구선수들이 ‘제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참가해 세계 4강이라는 위업을 달성하고 금의환향했다. 6승 1패라는 가장 좋은 성적임에도 불구하고, 또 대만·일본·미국을 연파하면서 특히 숙적 일본을 두 번이나 이기고도 4강에서 분루를 삼킨 것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아쉬운 대목이다.
이번 WBC에서는 야구 변방국이었던 우리나라의 저력을 세계 만방에 알린 것이 가장 큰 수확이겠지만 불공정한 규칙의 폐단을 직접 경험한 것도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난 3월 6일, 정보통신부는 케이블방송사업자가 모여 만든 한국케이블텔레콤(KCT)의 인터넷전화 역무 신청을 승인했다. 이는 방송사업자의 통신서비스 진출을 뜻하며 그동안 높아만 보였던 산업간 진입장벽을 허물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즉, 케이블방송사업자는 기존 ‘인터넷+방송’을 묶어 제공해오던 차에 ‘인터넷전화’ 서비스까지 제공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짚어봐야 할 점이 있다.
미국·일본·EU 등 선진국은 융합을 뜻하는 ‘컨버전스’의 조류 속에 치열한 기술경쟁을 벌이며 통·방융합의 추세를 정책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IPTV 등 융합서비스 관련 법령을 신규 제정해 통신·방송 양방의 진입장벽을 제거하고 있다.
정작 TPS(초고속인터넷+전화+방송)의 발빠른 보급으로 IT강국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야 하는 우리나라는 관련 법·제도 및 규제기관 이원화 문제로 오히려 정보통신 강국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시대 흐름에 역행하고 있다.
이번 KCT 허가로 케이블방송사업자는 유선 TPS를 제공할 환경을 갖췄지만 유선통신사업자는 TPS 제공에 법적·제도적 역차별을 받을 처지에 놓인 것이다.
케이블방송사업자는 방송을 무기로 초고속인터넷 시장 점유율을 높여가고 있는데, 방송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는 통신사업자는 전화라는 ‘고유영역’까지 침범당할 위협에 노출됐다.
따라서 방송산업에서 통신산업을 넘나들듯이 반대의 상황에도 문턱을 낮추는 것이 진정한 통·방융합의 시작일 것이다.
통·방융합 서비스를 케이블방송사업자만 제공하고 지금의 컨버전스 서비스의 토대를 만든 KT·하나로텔레콤 등 유선통신사업자는 제공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 한 쪽에만 유리한 규칙이 적용되는 이상한 대회를 개최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정부는 방송사업자에 ‘인터넷전화’라는 통신서비스를 허가해 통신산업의 장벽을 허물면서 통신·방송사업자 간 TPS 사업환경이 불공정하지는 않은지 정책적 차별에 심사숙고해야 한다. 또 통신·방송 융합서비스에 대한 통합규제 및 규제완화로 국민에 다양한 통·방 융합 서비스를 제공토록 해야 한다.
정부가 정책을 펴나가면서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가치는 소비자 후생 증진 및 국부 창출이며, 이는 사업자가 펼치는 유효경쟁에 의해 발생함은 새삼 말할 필요가 없는 경제원리다. 이를 위해서는 공정한 경쟁 규칙이 전제돼야 하는 것이다.
자신의 문은 굳게 닫고 상대방의 문을 무리하게 열고자 하는 것은 해당산업 당사자의 경쟁력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직접적인 수혜자인 국민에게도 피해로 돌아가는 일이다.
불공정한 조 편성과 편파 판정은 경기의 질을 떨어뜨리는 것은 물론이고 선수들과 관중으로 하여금 등을 돌리게 한다.
이번 WBC 주최측으로서 무리수를 뒀지만 결국은 많은 것을 잃고 자기네 안방에서 남의 잔치를 지켜봐야만 했던 미국과, 지금의 정부 모습이 겹쳐지는 것은 왜일까.
◆이재륜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 상근부회장 jrlee@kto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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