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첫 우주인 배출사업 또 연기됐나
정부가 범국민 과학기술 축제로 추진하는 ‘한국 첫 우주인 배출 사업’이 러시아 뜻대로 휘둘리고 있다. 애초 2007년 4월로 조율했던 한국 우주인의 소유스(러시아 유인 우주선) 탑승 시기가 러시아 측의 요구로 무려 1년이나 늦춰졌고, 우리 정부는 이에 맞춰 우주인 선발·훈련 계획을 조정했다.
정부가 23일 제14회 과학기술 관계장관 회의에서 새로 확정(?)한 2008년 4월도 아직 ‘예정’일 뿐이다. 러시아 연방우주청의 필요에 따라 얼마든지 더 늦춰질 수 있는 상황이다.
만약 2008년 4월에 우리나라에서 제시한 소유스 탑승 및 국제우주정거장(ISS) 체류 비용보다 더 높은 가격을 내겠다는 ‘우주 관광객’이라도 나타나면 한국 첫 우주인 탄생은 좀 더 기다려야 할 수도 있다. 실제로 러시아 연방우주청은 2001년 4월, 소유스를 타고 ISS에 다녀오는 우주여행 상품을 선보였다.
이에 따라 우주인 배출 사업에 대한 외교적·정책적 전략 보완과 대응책이 필요할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에 밀리고=2003년 2월 1일, 미국 우주왕복선 컬럼비아호가 지구로 돌아오다가 공중에서 폭발했다. 이후 소유스가 ISS로 가는 거의 유일한 교통 수단이 됐다. 그래서 미국은 소유스가 필요해졌다.
내년 4월, 미국은 ISS에 체류하고 있는 자국 우주인을 교대시킬 계획이라며 러시아에 소유스 탑승을 요구했다. 이에 러시아 연방우주청은 “ISS 기본협정에 따라 회원국(미국) 탑승 요청에 우선권을 줄 의무가 있다”며 우리 우주인의 탑승 시기를 조정해줄 것을 요청했다. 우리나라가 뒤로 물러났다.
◇말레이시아에도 밀려나=갑작스런 미국의 소유스 탑승 요청으로 우리 정부는 내년 10월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나 말레이시아가 버티고 있었다.
지난 2003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말레이시아를 방문했을 때 러시아산 수호이 전투기를 비롯한 9억달러 상당의 교류 협상의 일환으로 이미 우주인 배출 프로젝트를 시작했던 것. 이를 바탕으로 삼아 이미 4명의 말레이시아 우주인 후보를 선발, 4월에 러시아에서 우주비행 훈련에 돌입할 예정이다.
러시아 측이 정부 예산 60억원과 민간 자본 유치 150억원 정도의 돈보따리를 마련한 한국의 요구(2007년 10월 탑승)를 들어줄리 만무한 상황인 것이다.
◇전망과 과제=정부는 “우주인 배출 사업의 과학기술적·경제적·산업적 기대 효과가 크다”고 설명한다.
구체적으로 우주인 배출을 위한 선발·훈련·우주 비행·우주 과학실험 등을 통해 유인 우주 기술을 확보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 또 지상에서 수행할 수 없는 우주 과학실험을 통해 정보기술(IT)·생명공학기술(BT) 등 첨단 기술 능력을 높일 수 있다고 강조한다.
한국 첫 우주인을 배출함으로써 과학기술에 대한 국민적 이해와 자긍심을 높이고, 청소년의 이공계 진출을 활성화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는 부수적 효과도 기대했다.
정부는 특히 첫 우주인을 배출함으로써 △세계 10번째 우주 과학실험국으로 진입하고 △세계 11위 경제 규모에 걸맞은 우주 기술 강국 기반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베트남·몽골·아프가니스탄 등에서도 이미 우주인이 나왔다는 배경 설명도 잊지 않는다.
과학기술계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우리 우주 기술은 그간의 노력에 힘입어 자력으로 인공위성을 만들어 발사하고 운용하는 수준에 이르렀다”며 “아직 우주인을 배출하지 못했지만 ‘세계에서 몇 번째로 달성’하겠다는 성급한 사업 추진이 낭패를 부를 수도 있다”고 충고했다.
이은용기자@전자신문, ey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