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방융합, 새로운 10년을 준비한다]제3부:사전규제를 사후규제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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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트리플플레이서비스(TPS)’가 현실로 다가옴에 따라 통신사업자의 결합상품 규제에 대한 기준이나 틀이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사진은 지난 2004년 KT가 출시한 홈엔스카이 상품으로, 하나의 셋톱박스에서 초고속인터넷·무선랜·위성방송을 모두 이용할 수 있다. KT 직원이 이를 시연하고 있다.
관련 통계자료 다운로드 KT와 하나로텔레콤의 결합상품 비교

(1)결합상품에 대한 규제

수평적 규제 정책은 규제완화를 의미한다. 규제완화의 중심에는 당연히 시장지배적 사업자가 있다. 수직적 규제에서 수평적 규제 정책으로 전환한다는 것은 지배적 사업자에 대한 사전 규제를 사후 규제로 바꾼다는 의미다. 사후규제는 최근 수평적 규제 정책 변화에 맞춰 경쟁을 활성화하고 소비자 권익을 보호하는 측면에서 주목받고 있다. 나아가 공정거래법에 준하는 사후 규제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이번호부터는 사전규제를 사후 규제로 바꾸는 방안에 대해 살펴본다.

 

<1> 결합상품에 대한 규제

정통부는 올해 업무계획을 밝히면서 보다 전향적인 입장을 밝혔다. 중기적으로 수평적 규제정책으로 전환을 추진하면서 시장지배사업자에게 결합상품을 허용하겠다는 대원칙을 밝힌 것이다. 특히 상용화를 앞두고 있는 와이브로 서비스는 ‘특화요금제’ 도입을 허가한다는 입장도 함께 밝혀, 와이브로와 기존 서비스간 결합상품 출현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결합상품, 요금할인에 달려있다=결합상품은 두 개 또는 그 이상 상품을 묶어(번들링) 보다 싼 가격으로 판매하는 것을 의미한다. KT의 유선전화와 이동통신 서비스를 묶은 ‘원폰’을 비롯, 하나로텔레콤의 시내전화와 초고속인터넷간 결합상품, 파워콤이 조만간 출시할 데이콤의 인터넷전화(VoIP)와 파워콤의 초고속인터넷 서비스를 묶은 상품 등이 예다. 예를 든 세 경우는 묶음이라는 점에서는 모두 공통점을 가지지만, 시장지배적 사업자인 KT는 하나로텔레콤이나 파워콤 결합상품에 비해 큰 차이가 있다.

두 상품을 묶었음에도 KT의 결합상품은 다른 사업자의 달리 요금할인 혜택을 소비자에게 제공할 수 없다. 결합상품을 제공할 수 없도록 법적으로 제한된 ‘지배적사업자’이기 때문이다. 정통부의 시장 지배사업자의 결합상품 허용은 별다른 혜택이 없이 물리적으로 결합돼 있는 ‘무늬만’ 결합상품에 요금할인을 ‘어느 정도’ 인정하겠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독점과 공정 경쟁=시장 지배적사업자에 대한 결합상품 금지는 독점 심화로 공정경쟁을 저해한다는 논리가 핵심 근거로 뒷받침된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IBM이 1930년대 계산기와 펀치카드를 결합판매한 사례, 1960년대 저장용 디스크와 메모리 결합상품을 출시한 사례 등에 대해 법무부가 반경쟁적 행위로 제소한 사건이 있었다. 공정경쟁을 저해했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이는 추후 보완관계가 강한 상품을 결합하면 경쟁기업의 퇴출이 나타나면서 독점기업의 이윤이 증대되지 않거나 오히려 감소한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당시 상황에 대한 새로운 평가가 나온 것이다.

KISDI 관계자는 “결합상품이 반드시 독점력을 강화하고, 초과이윤을 창출시켜 시장을 잠식한다는 논리는 맞지 않다”며 “결합상품 규제에 대한 판단 기준은 단순히 법적 근거를 잣대로 들이대기 이전에 상품결합 행위의 동기에 대해 우선 검토할 필요도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IT 영역은 기술발전, R&D 투자에 대한 사회적 파급효과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융합시대 반영할 때=결합상품 규제 완화에 대한 주장은 통·방 융합 시대에 맞춰 ‘트리플플레이서비스(TPS)’ ‘쿼드러플플레이서비스(QPS)’ 출현이 현실로 다가왔다는 조건 변화도 한 몫 한다.

최근 정부로부터 VoIP 사업을 허가받은 KCT는 ‘케이블방송+초고속인터넷서비스+전화’ 등 3가지 서비스를 결합한 상품 출시가 가능해졌다. 상황이 이러한데 시장 지배적사업자라는 이유만으로 결합상품을 사전 규제한다면 이는 오히려 지배적사업자에 대한 역차별로 시장 활성화를 어렵게 만들고, 궁극적으로 소비자 혜택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것. 여기에 다양한 대체 서비스가 등장하면서 개인당 혹은 가구당 통신비용 부담이 커지고 있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작용한다. 결합상품으로 인한 가격할인, 이를 통한 소비자 혜택 강화 등의 필요성도 분명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배적 전이 등 부작용보다는 오히려 소비자 후생에 반한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는 “소비자 편익 측면에서 결합상품은 완화될 필요가 있다”며 “지배력 전이가 예상되는 심각한 경우에만 사후 규제만으로도 충분히 제재를 가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소박스> 일본의 결합상품 규제 정책

일본 역시 시장 지배사업자에 대한 결합상품에 대한 논란은 한국 만큼이나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하지만 일본 전기통신사업법( 및 시행령)에는 업무개선명령(제29조)과 금지행위(제30조)에 관한 규정은 있지만 우리나라의 전기통신사업법과 같이 결합판매를 규제하는 규정은 없다. 후발주자들의 이견과 논란에도 정부가 나름대로 명확한 기준을 제시했다. 다만, 간접적으로 결합판매에 대해 규제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는 규정을 만들어 놓았다.

‘29조 업무개선명령’과 ‘제30조 금지행위 등’에 △전기통신사업자가 특정한 자에 대해 부당한 차별적 취급을 행하고 있는 때(제1항 제2호) △전기통신사업자가 제공하는 전기통신 역무 요금, 기타 제공조건이 타전기통신사업자와의 사이에 부당한 경쟁을 초래하고, 기타 사회적, 경제적 사정에 비추어 현저하게 부적합하여 이용자의 이익을 저해하고 있는 때(제1항 제5호) △타 전기통신사업자의 전기통신설비와의 접속업무와 관련해서 알게 된 당해 타전기통신사업자 및 그 이용자에 관한 정보를 당해 업무용으로 제공하는 목적 이외의 목적을 위해 이용 또는 제공하는 것(제3항 제1호) 등의 조항을 만들었다.

일본전신전화주식회사에관한법률(NTT법)에도 결합판매를 직접 규제하는 규정은 없다. 다만, NTT동일본과 NTT서일본에 대해서는 지역 전화시장에서 독점성을 인정해 업무범위를 지역통신서비스로 한정해 왔으며, 지난 2001년 전기통신사업법과 NTT법 개정에 따라 총무대신의 인가를 받아 업무범위를 확대할 수 있도록 했다. 이 법에서 NTT는 자체 공정경쟁 확보를 위한 조치로서 7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주목할 것은 KDDI 등 경쟁사에서 NTT법에 결합상품 금지를 분명히 할 것을 요구한 건의에 대해 총무성이 밝힌 입장이다. 총무성은 “결합판매를 규제하는 명확한 법적 근거를 마련해 일률적으로 규정하는 대신, 개별적인 사례를 갖고 시장에 미치는 영향, NTT가 공정경쟁 확보를 위해 마련한 조치 등을 고려해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일본 총무성은 NTT에 대한 결합판매 규제는 사후적이며, NTT의 결합판매가 공정경쟁을 저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 우선적으로 NTT가 해당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도록 삼가고, 이를 어길 경우 적정한 규제를 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기고-결합상품 규제 전향적으로 완화해야

:허태열 KT 경영연구소장 yooty@kt.co.kr

통신시장의 최근한 흐름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 하나는 통신과 방송의 융합이다. 통신망에서 통신서비스, 방송망에서 방송서비스를 제공하던 전통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하나의 망에서 두 서비스를 모두 제공할 수 있게 되면서 통신과 방송을 결합한 다양한 서비스의 출시는 불가피해 보인다. 이미 케이블TV 사업자들은 가입자를 대상으로 초고속인터넷서비스를 결합해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고 있으며, 인터넷전화 사업권까지 확보하면서 트리플플레이 서비스까지 지원할 것으로 예상된다. 통신사업자들도 통신망 기반 방송서비스가 기술적으로 가능하다. 기존 통신서비스와 결합할 경우 소비자에게 매력적인 상품이 될 것이다.

이같은 변화는 소비자에게는 매우 반길 일이다. 그러나 이런 혜택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통신과 방송, 양대 사업자간 경쟁이 활성화되고 이를 통해 더욱 다양하고 매력적인 상품이 출시돼야 한다. 현재 제도적 환경에서는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는게 아쉬운 것이다. 예를 들어 방송시장에서는 결합상품 규제가 거의 없지만 통신시장에서는 엄격한 규제가 적용되고 있다. 구체적인 기준도 마련되어 있지 않아, 과연 통신사업자가 공정한 시장경쟁환경에서 방송사업자들에 대응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규제 탓에 서로 다른 기술·산업간에 활발한 경쟁이 유발되지 않아 결국 산업이 퇴보하는 결과를 낳았던 전례는 적지 않다. 미국의 초고속인터넷 시장에서 시내전화사업자의 전화망에만 엄격한 망 개방 의무를 적용함으로써 케이블모뎀과 xDSL간 경쟁이 일어나지 않았다. 이는 미국이 브로드밴드 보급율에서 뒤쳐지는 현실로 돌아왔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나라 통방융합시장에서 이런 상황이 재연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고 본다.

따라서 통신시장에서 결합상품 규제는 전향적으로 완화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첫째, 결합상품에 대한 허가기준을 가이드라인을 통해 구체화하고 둘째, 망에 대한 동등한 접속과 약탈적 요금 설정 방지 등 원칙을 준수하면 제반 규제를 풀어야 한다. 특히 이용약관의 사전인가 대상서비스에 대해서도 조기에 결합상품을 허용, 그 혜택을 다수 소비자에게 돌아가도록 배려해야 한다. 통신사업자가 다양한 통방융합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보다 적극적인 유인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뜻이다. 통방융합은 이제 피해갈 수 없는 대세이며, 그 구체적인 실현은 결국 결합서비스로 나타날 것이라는 점에서 규제환경의 정비가 시급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