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만 크게 커졌을 뿐 이를 지탱할 허리가 너무 취약하다.’ 게임산업의 양극화가 위험수위를 향해 치닫고 있다. 일부 메이저 퍼블리셔와 대형 개발사들이 자본력을 무기로 몸집을 불리면서 중소·중견 개발사들이 점차 설땅을 잃고 있는 것.
이러다간 게임업계가 몇몇 대형 퍼블리셔 위주로 전면 재편되고 중소 개발사들은 모두 하청업체(스튜디오)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전문가들은 “2010년까지 우리 게임산업이 세계 3강에 진입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이같은 불균형적 산업구조를 개선하는데 힘을 모아야 한다”고 경고한다.
“FW(포워드)와 DF(수비)만 가지고는 선진 축구를 할 수가 없다?” 현재 국내 게임산업을 보면 미드필더가 취약한 동양 축구의 전형을 보는 것 같다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미드필더란 공수를 조율하는 축구의 핵심 포지션. 선진 축구로 갈수록 미드필더진의 역할이 상당히 중요하다.
산업도 마찬가지. 90년대말 IMF 이후 수 많은 중견기업들이 몰락한 IT산업이 일부 대기업 주도의 양극화가 급진전, 산업의 불균형적 성장과 이로인한 대외 경쟁력 악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게임산업 역시 일부 메이저업체가 막강 자본력을 바탕으로 시장과 장악하며 공룡화하면서 미드필더 역할을 해온 중견기업들이 총체적 위기국면을 맞고 있다.
# 중소 개발사 설땅이 없다
중견 상장 IT기업인 A사. 엔터테인먼트사업 진출의 일환으로 온라인게임사업에 뛰어든 이 회사는 최근 퍼블리셔를 애타게 찾고 있다. 당초 10∼20억원이면 개발에서 자체 서비스까지 가능할 것으로 판단했지만, 최근 몇몇 메이저업체 간의 마케팅 전쟁이 벌어지면서 추가 비용부담을 감당하기 어려워 자체 서비스를 포기한 것.
이 회사 사장은 “게임시장이 이 정도로 부담스러운줄 알았다면 아예 시작도 안했을 것”이라며 “요즘 게임시장에선 여유 자본이 최소한 300∼400억원은 돼야 명함을 내밀 정도”라고 혀를 내두른다.
요즘 국내 대부분의 중소 개발사들의 상황이 A사와 비슷하다. 매출이 100∼200억원에 달하는 중견 개발사들까지 비록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몇몇 대형 퍼블리셔와 개발사들의 공격적인 배팅으로 기를 못펴고 있다. 게임시장에서 몇몇 메이저업체의 영향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주요 게임업체 매출 구조를 보면 더욱 확연히 드러난다. 엔씨소프트·넥슨·NHN·CJ인터넷·네오위즈 등 일부 대형업체들의 올 매출목표만 봐도 무려 1조원이 넘는다. 이는 2년전 국내 온라인게임업계 전체 매출을 웃도는 것이다. 업계에선 이들 빅5의 비중이 전체 게임산업의 60%에 육박하며, 상위 10대업체가 전체의 70%를 훨씬 넘을 것으로 추정한다.
반면 그동안 게임산업의 튼실한 허리 역할을 해왔던 중소·중견기업들의 입지는 크게 좁아져 단순 개발전문업체로 전락하고 있다.
서비스를 포기하고 전문 개발사로 돌아선 B사의 사장은 “현재와 같은 시장구도 속에서는 개발비와 마케팅 비용 부담을 견뎌내고 선발업체들과 경쟁한다는 것은 무모한 도전”이라며 “자존심이 상하지만, 메이저 퍼블리셔에 줄을 설 수밖에 없는 것이 많은 개발사들의 현실”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같은 상황은 비단 온라인게임은 물론 모바일도 비슷하다. 컴투스, 게임빌, 넥슨모바일 등 일부 자본력과 맨파워를 갖춘 기업과 후발 중소 개발사와의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는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는 양상이다.
# 성숙기 진입의 후유증(?)
상황이 이렇게 된데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게임 개발 및 마케팅 비용의 가파른 상승이 주 원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제작비와 유통 비용의 단위가 달라지면서 막강 자본력을 갖춘 대기업 및 일부 메이저급 퍼블리셔들과 상대적으로 자본력이 달리는 중소·중견 기업과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는 얘기.
실제 이미 정통 MMORPG의 경우 제작비가 100억원대를 넘어선지 오래이며, 마케팅 비용만도 왠만하면 40∼50억원대에 이른다. 왠만한 상장기업까지 두손두발 다 들정도다. 이에 따라 많은 개발사들이 경쟁적으로 캐주얼게임쪽으로 방향을 틀면서 개발 및 마케팅 비용도 천정부지로 치솟아 캐주얼 시장에서도 양극화 현상이 또다시 재연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또한 국내 게임 시장이 점차 고도 성장기를 지나 성숙기로 진입하고 있는데 따른 ‘예고된 후유증’이란 견해도 만만치않다. IMF 이후 국내 온라인 게임시장이 연평균 30%대의 초고속 성장을 거듭한 끝에 이젠 성숙기로 진입, 기술력과 자본력 차이에 의해 시장 구도가 완전 재편되고 있다는 의미다.
중앙대학교 위정현교수는 “성숙기에는 가격 경쟁이 심해져 승자와 패자가 명확해지고, 진입장벽이 높아지는 것이 특징”이라며 최근 우리 게임산업에 이런 현상이 본격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게임산업협회 임원재국장도 “게임산업이 짧은 시간에 성숙기로 진입, 구조적 성숙의 시간이 부족한데다 자본이 큰 이익을 만들어 낼 기회가 많은 경제 논리, 그리고 게임 업종 특유의 진입 장벽과 중소 개발사의 역량 부족 등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같다”고 분석했다.
# 산업 기반 붕괴 우려
세계 게임시장이 국경과 플랫폼을 초월한 무한경쟁시대로 진입하고 있다는 점에서 국내 메이저기업들의 이같은 대형화는 일견 자연스런 현상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게임업계의 이같은 양극화 현상이 더욱 노골화한다면, 향후 다양한 게임 개발이 불가능해 우리나라가 미국·일본과 함께 세계 3대 게임강국으로 올라서는데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온라인게임 개발사인 부룩소의 김광수 사장은 “중소 규모 개발사의 입지가 자꾸 좁아지면 대형 블록버스터게임만 양산되고 신선한 아이디어에 바탕을 둔 실험적 게임 개발이 어려워질 것”이라며 “이는 우리 게임산업 전체의 아이디어 풀이 줄어드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위정현 교수도 “리스크 테이킹을 하는 도전적인 게임 개발이 안되고 현상 유지적인 게임 개발이 주류를 이뤄 게임 개발이 다양성이 줄어들어 결국 게임 산업이 전체적으로 활력을 잃고 그 기반이 흔들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산업의 양극화에 따른 전문 인력의 편중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많다. 시장이 성숙기에 들어서면 신규 수요 창출뿐 아니라 공급 조절을 통한 채산성 유지가 중요해져 결국 이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대기업과 메이저업체들이 공급 조절을 위해 기술인력을 독점할 것이란 의미이다.
이미 이같은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해 몇몇 대형 업체로 고급인력이 쏠려 중소·중견 개발사들의 인력난이 심각한 상황이다. 건국대학교 이철규교수는 “전문 인력 양성의 선순환과 중소 개발사의 지속적인 육성 시스템이 시급히 구축되지 않는다면 결국 우리 게임산업이 국제 경쟁에서 밀려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중배기자 jble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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