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방융합, 새로운 10년을 준비한다]제2부 새로운 규제의 틀을 만들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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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진입규제 대폭 완화해야

‘SK텔레콤이 위성DMB 사업에 진출한다. KT가 초고속 인터넷을 활용한 TV 사업(IPTV)에 나선다.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들이 인터넷전화(VoIP) 사업을 시작한다. 공중파 방송사들이 지상파DMB에 뛰어든다…’

통신·방송 사업자들이 소위 ‘융합서비스’라는 신시장을 두고 서로 영역을 넘본지 오래다. 이 가운데 어떤 사안(지상파DMB)은 별 논란없이 쉽게 해결되기도 했고, 어떤 일(위성DMB)은 아직도 진통이 여전하다. SO들의 VoIP 사업허가는 조만간 이뤄질 것으로 보이는 반면, 통신사업자들의 IPTV는 가능성 여부조차 점치기 어려울 정도로 소모적인 논쟁만 거듭하고 있다. 통신·방송 융합이라는 용어가 등장한지 몇해되지 않았지만 벌써부터 해묵은 느낌이 드는 이유는 그만큼 논란이 컸던데다, 상호 시장진입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공감대조차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통·방 융합시대 새로운 규제정책은 진입규제에서 출발한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마디로 방송·통신 사업자들이 전통적인 영역에서 벗어나 서로 상대방의 시장에 진입하려 할 경우 어떤 원칙과 기준을 따라야 할지 문제다.

진입규제에 관한한 우리가 각 산업 진영의 이해관계에 얽혀 원론적인 수준의 공방만 거듭하고 있는 것과 달리 해외에서는 이미 상식적인 선에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 상황이다. 세계 각국은 종전 통신과 방송서비스간의 영역을 폐지해 상호 진입규제를 완화하거나 폐지하는 추세다. 미국은 지난 1996년 새 통신법 제정을 통해 통신·방송·케이블TV·신규미디어 등의 모든 분야에서 진입규제를 철폐하는 흐름이다. 일본 또한 종래의 엄격한 법 체계를 개정, 양대 진영 사업자들 사이에 다양한 형태의 업무제휴·합병을 유도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이미 지난 2002년 EU지침(Directive)을 제정, 예외적으로 사업권을 허가할뿐 원칙적으로는 통신·방송망을 통한 모든 서비스에 한해 최소한의 진입규제를 권고했다. 영국의 경우 지난 2003년 개정 통신법으로 규제 최소화 정책을 견지해 방송 전송서비스에 한해 허가제를 철폐했다. 우리로 보면 지상파방송·SO·DMB 사업자들의 주요 업무를 상당부분 시장자율적으로 풀고 있는 셈이다.

한국을 비롯 대다수 국가가 준용하고 있는 OECD의 통신·방송 융합 규제원칙을 보면 더욱 시사하는 바가 크다. 대다수 회원국들은 통신·방송 융합서비스의 진입규제를 도입하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이들 선진국이 진입규제를 서둘러 완화한데는 무엇보다 소비자 편익 향상과 더불어 경쟁활성화를 통한 산업 경쟁력 강화를 겨냥한 목적이 있다.

만약 진입규제가 느슨해지고 통신·방송 산업간 인수합병이 활발해질 경우, 미디어 기업의 지배력 집중이라는 부작용은 어떻게 대처할까. 선진국의 공통된 견해는 시장 진입을 어렵게 한다해서 시장집중을 막는 효과적인 수단이 되지는 못한다는 사실이다. 진입규제는 새로 등장하는 신규 융합서비스를 수용할 수 없을 뿐더러 오히려 전통적인 시장구조를 고착화시키기 때문이다. 예상되는 부작용은 소비자 보호 및 공정경쟁 장치라는 사후 규제수단을 적절히 활용하는 것이 대세다.

현재 통방 융합정책 이슈 가운데 가장 큰 논란을 빚고 있는 IPTV에 대해 해외 각국의 시각은 어떨까. ‘인터넷을 통한 영상물 전송은 방송’이라고 규정한 나라는 현재 벨기에·캐나다·룩셈브르크·스페인·스웨덴 등 5개국에 불과하다. 이 가운데 캐나다는 방송사업으로 정의만 했을뿐 규제는 없다. 한마디로 소비자보호와 산업발전이라는 큰 흐름에 역행하지 않기 위해 사업자 허가제도 등 진입규제는 대폭 없애는 방향인 것이다.

이같은 흐름을 인식한 듯 정보통신부와 방송위원회도 최소한 진입규제에 대해서는 겉으로 ‘완화 내지 철폐’를 공언하고 있다. 정통부는 최근 광대융합사업법(가칭) 발표를 통해 ‘전송’과 ‘콘텐츠’로 2개 역무 분류체계를 제시, 진입규제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원칙을 밝혔다. 전송 부문에 대해서는 시장경쟁의 대원칙에 부합하는 쪽으로, 콘텐츠 부문의 경우 사회문화적 속성을 감안해 방송 규제를 적용하되 경쟁촉진 등 경제적 목적을 절충하는 방안을 주장했다.

정통부 이기주 통방융합기획단장은 “급속한 혁신과 변화의 환경에서 규제정책이 특정한 서비스를 차별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신규 융합서비스에 대해 진입규제와 같은 사전규제는 최소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방송위 또한 각론은 다르지만, 종전 까다로운 허가제도는 상당부분 등록·신고와 같은 완화 추세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방송위 정순경 단장은 “이제 융합환경 아래에서 방송산업에도 시장원리를 도입하는 것이 불가피한 상황”이라며 “다만 전면적인 구조개편에 앞서 과도기적인 정책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방송위도 네트워크·플랫폼·콘텐츠 등 3개 역무 분류체계를 내세우면서 네트워크 사업자에 한해서만 허가제도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전문가들은 적어도 신규 통신·방송 융합시장에서는 진입규제를 전면 완화해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세계 각국이 기존 통신과 방송서비스간의 영역을 폐지해 각 분야로 진입규제를 완화하는 것 또한 이미 오래전에 성과가 검증됐기 때문이다. 미국·일본·유럽 등지에서 통신·방송 사업자들이 각각 다양한 형태의 사업제휴나 인수합병을 추진하면서 활발한 시장경쟁을 촉발하고 있는 것이다. 조은기교수(성공회대 신방학)는 “제휴와 합병에 의해 사업자들이 원활하게 진입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소비자들에게 일체화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각 사업자들 또한 지속적인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동력이 됐다”고 평가했다.

진입규제가 완화되고 인수합병이 활발해질 경우 미디어 공룡기업의 등장이라는 우려도 나오지만, 이를 진입규제로 막아서는 오히려 부작용만 더 커진다는 뜻이다. 조 교수는 “높은 진입장벽으로 강한 시장지배력을 갖춰왔던 선발 사업자가 진입장벽이 낮은 신규 시장에 진출할 때 공정경쟁 환경을 위한 차별적인 사후규제를 적용하면 된다”고 강조했다.

◆기고: 유효경쟁 위한 통·방 융합정책 마련 시급

-조은기 성공회대 신방과 교수 ekcho@skhu.ac.kr

통신·방송 융합 논의에서 진입 규제 이슈는 언제나 핵심이었다. 용어 자체가 과거 수십년간 서로 별개 영역에 존재했던 통신·방송 산업이 서로 상대방 시장에 진입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데다, 전통적인 인·허가 제도 개선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기존 통신이나 방송 서비스와 비교할 때 현재 ‘융합’이라는 흐름은 근본적으로 차이점이 있다. 지금 서비스마다 네트워크 및 사업 유형을 정의하는 기존 인·허가 제도로는 더는 융합시장을 수용할 수 없다는 다급함이 터져나오고 있는 것이다. 근래 들어 콘텐츠·플랫폼·네트워크로 시장을 새로 분류하고 층위별로 규제 원칙을 달리해야 한다는 수평적 규제나 서비스 층위별 규제 모델이 자주 언급되는 까닭은 현 수직적 규제와 이에 따른 인·허가 제도의 한계 탓이다.

 앞으로 통·방 환경은 서비스 유형별이나 지역적 시장 모두에서 수평적 규제로 일관된 체계를 갖춰야 한다는 데 이견이 없다. 그러나 이는 원론일뿐이다. 당장 필요한 것은 수직적으로 고착화돼왔던 통·방시장을 좀더 경쟁 친화적인 수평적 시장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가에 대한 대안이다. 통·방 융합 정책은 모든 것을 갈아엎고 새판을 짤 수 있는 성격이 아니라는 데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예컨대 전환기 통·방 융합 정책은 불가피하게도 도시의 리모델링 정책과 닮은 면이 적지 않다. 리모델링을 통해 경쟁 환경이라는 새로운 도시로 전환할 수 있는 체질개선이 요구된다는 뜻이다.

 이 같은 점에서 현재 융합 정책 목표는 더욱 장기적인 구도에서 유효경쟁 환경을 기대할 수 있는 시장구조를 조성하는 데 둬야 한다. 진입 규제정책 역시 현실적으로 경쟁이 유발될 수 있고, 유지될 수 있는지에 대한 관점을 견지해야 한다. 시장 구조가 경쟁 제한으로 왜곡되면 아무리 정교한 사후 규제 수단으로도 바로 잡을 수 없다는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전환기 통·방 융합 정책, 일차적으로 진입 규제 완화는 모든 것을 만족시킬 수 있는 형태로 제시되기 어렵다.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이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최소한 얻는 것과 잃는 것이 무엇인지는 분명 짚고 넘어가야 한다. 통·방 융합 시장 전체를 아우르는 지향도가 제시돼야 하고, 비록 완전하지는 않으나 이같은 지향점 아래에서 논의를 전개하는 것이 현재의 소모적인 논쟁을 피하는 현명한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