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흡혈귀가 있다. 형사다. 그것도 비리형사다. 자신이 수갑을 채워야 할 암흑가의 두목들에게 가라오케 술 접대를 받고 뒷돈을 받는 비리 형사다. 그런 그가 어느 날 국제특급우편물 DHL 배달 차량과 시비가 붙어 말싸움을 하고 있던 중, 차량 안에서 흘러나온 모기에게 목을 물린다. 그 모기는 보통 모기가 아니다. 국제우편물 속에 묻어서 루마니아에서 날아온 모기다. 그때부터 비리 형사 나도열은 흡혈형사 나도열이 된다.
이 작품의 영화적 설정은 성공한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히어로 영화에서 베껴온 것이다.‘스파이더 맨’이나 ‘배트맨’ ‘슈퍼맨’의 설정을 이것저것 짬뽕한 뒤에, 한국식 양념으로 마늘과 생강 좀 넣고 반찬으로 김치를 내 놓은 것이다.
장면 전환 등 연출 기법까지 헐리우드 블록버스터를 흉내 내고 있다. 그래서 30억원 안팎의 비교적 저렴한 제작비로 만든 영화지만 흐름은 웅장하다. 제작진에서는 이 영화를 시리즈물로 만들 계획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흥행에 성공하지 못한 영화가 속편이 나올 수는 없다.
물론 흥행 전망은 밝다. 왜냐하면 팀 버튼의 ‘배트맨’처럼 존재에 대한 사유라든가 혹은 ‘스파이더 맨’의 정체성 찾기 같은 고뇌 대신, 웃음이 장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뇌관은 김수로다.
그를 위한 영화인 이 작품의 재미는, 나도열의 캐릭터에서 온다. 그는 본질적으로는 선하다. 비록 암흑가 세력에게 접대도 받고 뒷돈도 조금 받지만 본성 자체가 악한 사람은 아니다. 그와 단짝인 강형사(천호진 분)를 최대한 선한 인물로 설정함으로써 나도열의 어두침침한 분위기를 희석시켰다.
관객들이 나도열을 미워할 수 없게 만들어 감정이입이 가능해야 흥행에 성공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나도열이 특별한 능력을 지닌 슈퍼맨으로 변신하기 위해서는 성적 흥분을 해야 한다는 설정은, 흡혈귀 영화가 갖고 있는 성적 본능을 선정적으로 변용한 것이다.
다른 사람의 피를 빠는 흡혈귀는, 성적 본능의 숨겨진 변용이다. 흡혈귀의 날카로운 송곳니는 남성 성기의 상징이고, 그것이 박히는 하얀 목덜미는 여성성을 드러내고 있다. 여성 흡혈귀를 본 적이 있는가? 대부분의 흡혈귀가 남성인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그런데 아무리 흡혈귀 본능을 갖고 있다고 해도 성적으로 흥분을 해야만 초인적 힘을 가질 수 있다는 설정이 웃음을 준다. 관객들이 재미있게 반응하는 것은 거의 대부분 이러한 성적 설정 때문일 것이다.
계급적 문제를 성적 문제로 치환해서 보수적인 부르조아 사회를 공격하는 의미를 갖기도 했던 흡혈귀 영화가 선정적이며 오락적인 영웅담으로 재탄생되었다.
성적으로 흥분해야 초인적 힘을 갖는다는 선정적 설정은 분명히 말초적 감각을 자극하는 오락 영화고 상업 영화이지만, 더구나 짜임새 없는 연출까지 흐름의 맥을 끊어 놓기도 하지만, 흡혈귀 소재를 한국식으로 변용한 새로움은 있다.
나도열이 애초에는 비리 형사였다는 설정은 재미있는 발상이다. 그래서 무조건적인 영웅담과 차별화를 가질 수 있다. 악의 화신으로 여성적 매력을 갖는 탁문수(손병호 분)를 설정한 것이나, 나도열이 자신의 정체성을 상담하는 주변 인물로 비오 신부(오광록 분)을 배치한 것도 적절한 선택이었다.
내면적 깊이가 모자라는 김수로의 외형적 연기를 손병호 오광록 천호진 등 일급 조연들이 뒷받침을 해주면서 메꿔 주는 것도 이 영화의 흥행을 낙관하는 이유이다. 그러나 제대로 된 시리즈물이 되려면, 선정적 소재를 자극하는 웃음보다는 역시 정체성 탐구를 시도해야 한다.
악의 화신인 탁문수도 흡혈귀의 초능력을 갖게 되어서 선악 대결로 펼쳐지는 것이 속편의 시나리오라면, 이 시리즈물은 전형적 헐리우드 히어로 공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영화 평론가 - 인하대 겸임교수 s2jazz@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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