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으론 금지돼 있지만 시장에선 여전히 보조금이 판치고...
국내 휴대폰 시장에는 `공공연한 비밀`이 있다. 보조금이다. 법으론 보조금이 금지돼 있지만 시장에선 여전히 보조금이 판치고 있다. 이동통신사들도 고객 유치에 가장 유용한 마케팅 도구가 보조금이라고 `비공식적`으로 시인할 정도다.
지난 2003년 정보통신부는 보조금이 시장 과열을 일으키고 과소비를 조장한다며 3년간 금지했다. 그래도 시장엔 보조금이 나돌았다. 한순간도 보조금이 없었던 시기는 없었다. 단속의 정도에 따라 강약을 조절했을 뿐이다.
◇보조금을 둘러싼 논쟁 요즘 휴대폰 보조금을 둘러싸고 말들이 많다. 이번달 임시국회에서 휴대폰 보조금에 대한 법안 처리를 앞두고 갖가지 의견이 난무하고 있다. 보조금과 관련된 주장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정통부가 제시한 2년 이상 가입자에게만 보조금을 주는 방식. 국회의원들이 주장하는 2년 이상은 물론 2년 미만 가입자에게 의무 사용기간을 정해 보조금을 주는 방식. 그것도 아니면 시민단체의 주장처럼 보조금 금지법 자체를 일몰 시켜 완전히 자유화하는 방식이 있다.
정통부는 당장 보조금을 허용하면 이통사들 사이에 고객 유치전이 벌어져 시장이 과열된다고 우려한다. 소비자들도 보조금을 받으면 우선은 좋지만 결국엔 요금으로 내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래서 내놓은 방법이 규제를 연장하되 2년 이상 가입자에겐 그간 기여를 인정해 보조금을 주자는 것이다. 정통부 의견을 따랐을 때 의도한 결과를 가져올지는 의문이다. 2년 이상 가입자에게만 보조금을 허용한다고 해서 이통사들 사이의 가입자 뺏기가 사라지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합법적인 보조금`으로 가입자 유치 경쟁에 들어갈 여지가 크다. 2년 미만 가입자에게 뿌려지는 보조금을 막을 수 있을지도 논란이 되고 있다. 보조금을 완전히 금지하고 있는 지금도 거리에선 공짜 휴대폰이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고객이 수익 기반인 이통사들이 정통부안이 통과됐다고 돌연 `법대로`로 영업하길 기대하긴 어렵다.
결국 정통부안은 보조금 과열을 원천적으로 막기엔 역부족인 셈이다.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 소속 의원들의 안은 정통부안과 다소 다르다. 정통부와 별도의 법안을 제출한 류근찬 의원, 이종걸 의원은 2년 이상 가입자에게 보조금을 주고 2년이 안되도 기간약정을 조건으로 혜택을 주자고 주장한다. 김영선 의원은 아예 2년 이상을 없애고 의무 사용기간만 두자고 말한다. 국회의원들의 대안도 결과는 정통부안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김 의원의 법안으로 가면 이통사들이 기간 약정 고객 잡기에 몰두해 보조금 경쟁이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 류 의원과 이 의원의 법안에선 이통사들은 2년 이상된 타사 고객을 빼오려고 보조금을 뿌리고, 2년 미만인 가입자도 약정 기간의 매력에 보조금을 대량으로 지급할 것으로 예상된다. 역시 보조금 전쟁을 피하긴 어려운 것이다. 시민단체 주장대로 완전 허용을 해도 상황은 비슷하다.
이통사들은 아무런 룰도 없이 피튀기는 보조금 전쟁을 벌이게 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거론한 시나리오들의 결론은 하나다. 어떤 경우에도 보조금 과열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쯤되면 이통통신 시장이 과열되고 각종 문제가 발생하는 건 단지 보조금 때문이 아니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보조금을 금지해도, 2년 이상 가입자만 허용해도, 2년 미만 가입자도 의무 사용기간을 조건으로 허용해도 여전히 문제가 발생한다면 원인은 보조금이 아니라 이통사들이라고 할 수 있다. 겉으론 소비자를 위한다면서 결국 이통사간의 출혈경쟁이 모든 문제의 원인은 아닐까.
◇ 이통사들의 주장의 겉과 속 보조금과 맞물려 입장이 서로 다른 이통사들은 한결 같이 소비자를 들먹인다. 보조금 규제를 원하는 KTF와 LG텔레콤은 이통사들은 자신들의 과당 경쟁이 결국 소비자들에게 피해를 줄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는다. 포화 상태인 이통 시장에서 보조금을 허용하면 엄청난 돈이 마케팅 비용으로 들어가고 기술 개발과 서비스 향상 대신 소모전이 벌어지고 요금 인상으로 이어져 고객들이 피해를 본다는 논리다. 그렇지만 KTF와 LG텔레콤의 걱정은 사실 SK텔레콤이다. 보조금이 풀리면 시장 지배적 사업자인 SK텔레콤에 끌려 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국 시장을 SK텔레콤에 내줄까봐 보조금 규제를 외치고 있다.
보조금 허용을 주장하는 SK텔레콤은 휴대폰을 싸게 살 수 있는게 소비자들에게 유리하다고 강조한다. 정통부안에 대해서는 2년 이상 가입자에게만 보조금을 허용하면 자사에 기여한 고객들보다 타사 고객들이 혜택을 받는다며 문제를 제기한다. SK텔레콤의 진짜 의도는 보조금이 허용되면 막강한 자금력을 동원해 시장을 좌지우지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있다. SK텔레콤은 정부가 시장점유율을 문제삼을 것으로 우려해 50% 선을 유지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거꾸로 말하면 자신이 원하기만 하면 시장 점유율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시장 점유율을 높이지 않고 우량 가입자만 데려 가는 방법도 있다. SK텔레콤의 불량 가입자를 정리하고 경쟁사 우량 고객을 보조금을 미끼로 빼 올 수 있는 것이다. 지난 몇달간 벌어진 치열한 보조금 논쟁은 한가지 아쉬움을 불러 일으킨다. 핵심 이슈는 이통사들간의 과열경쟁 해소인데 그간의 논쟁은 너무 보조금 문제에만 집중돼 있었다는 점이다. 이통 시장의 과열 경쟁을 해소하는 방식은 보조금 허용 여부가 아니라 이통사들이 시장의 룰을 잘 지키는지 감시하는 데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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